해양안전 특별행정심판

군함 경기함, 화물선 베트남남투 충돌사건

핵심 요약

요지

해난심판법 제38조의 규정에 의하여 심판청구한 사건임.관여조사관 Q

주문

이 충돌사건은 제한된 시정하에서 안전속력 및 항로 항법을 이행하지 않은 경기함측의 운항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나, 화물선 베트남남투의 레이다에 의한 탐색 및 경계 소홀도 그 일인이 되었다.

이유

1. 사 실

선 명경기함 베트남남투 선 적 항대한민국 사이곤(SAIGON) 선박소유자대한민국 해군 J 총 톤 수 -5,709톤 60 기관종류, 마력 -디이젤기관 5,700마력 수심인 A 지정해난관계인B 직 명함 장 도선사 면허종류 - 도선사 사고일시1989년 5월 28일 10시 06분 사고장소북위 37도 21분 24초, 동경 126도 31분 54초

해군 구축함 경기함은 작전임무 수행차 1989년 5월 28일 09시 25분 인천항 E-4묘지를 출항, 진침로 200도로 항진하면서 속력을 약 5노트, 10노트(A/E1/3, A/E 2/3)로 점진적으로 증속하다가 같은날 09시 41분 약 15노트(A/E 3/3 : ALL ENG. STANDARD)의 속력으로 인천항 수로를 빠져 나가고 있었다.경기함 함장 지정해난관계인 해군대령 B는 시정이 제한되고 어선들이 항로상에 산재하여 조업중에 있었으므로 같은날 09시 45분 함교 전탐실간 협수로 연안항에 요원을 배치토록 지시하고 침로를 진침로 190도로 조정하였고, 같은날 09시 52분 저시정 연안항해 요원 배치를 지시함과 동시에 항해등을 점등하고 무중신호를 취명토록 한 후 다시 침로를 진침로 205도로 조정하였다.그리고 같은날 10시 00분 팔미도 등대로부터 진방위 083도 거리 약 1.4마일 지점에서 전방에 항행 장애물을 피하고 또 출항 항로인 서수도로 진입하기 위하여 진침로 260도로 변침하면서 속력 약 10노트(A/E 2/3)로 감속 항진하다가 항로를 따라 입항 중이던 화물선 베트남남투를 지근거리에서 확인하고 같은날 10시 03분에 기관정지 기관역전(ALL ENG. BACK 3/3)지시를 하고 극우전타를 명하였으나 선수가 약 20도 우회두된 상태에서 같은날 10시 06분 북위 37도 21분 24초, 동경 126도 31분 54초 위치에서 경기함 좌현 중앙 선교부위와 화물선 베트남남투의 선수가 경기함 선수에서 베트남남투 선미간에 이르는 교각이 약 60도 각도로 가볍게 충돌되었다.이때 베트남남투의 선수는 진방위 약 4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사고당시 기상은 초속 4미터 정도의 남서풍이 불고 해상은 잔잔하였으나 시계는 농무로 인하여 약 300미터 내외로 제한되고 있었다.그리고 충돌위치 부근에는 약 0.9노트의 북동류(창조류)가 흐르고 있었다.화물선 베트남남투는 베트남 국적의 총톤수 5,709톤 60, 디이젤기관 출력 4,252킬로와트 짜리 1기를 거치한 강조 화물선으로 베트남인 선장 C 이하 선원 38명이 승선 운항중에 있었으며, 선령이 19년된 노후 선박이다.화물선 베트남남투는 1989년 5월 18일 17시 30분경 사이곤항에서 타피오카 (TAPIO-CA) 4,753톤을 선적하고 전부 4.6미터, 후부 6.8미터의 흘수상태로 출항 인천으로 향하였다.선장 C는 예정 항로를 따라 전속으로 속항하여 같은달 28일 08시 00분경에 인천항 동수도 입구인 장안서 북방 약 2마일 해상에 도착하여 인천항 도선사 수심인 A를 승선시켰다.화물선 베트남남투에 승선한 도선사 A는 안개로 시정이 제한되어 있었으나 이미 선수에 저시정 항해요원 3명이 배치되어 있었고, 또 항로상에 통항 선박도 별로 없었으므로 약 11노트의 전속으로 수로를 따라 입항하고 있었다.그리고 같은날 09시 15분경 북장자서 남서방 약 2마일 해상을 통과할 무렵 레이다로 확인한 바 팔미도 부근해상에 많은 소형 선박들이 포착되고 있었으므로 기관을 항내 전속으로 바꾸어 약 9노트의 속력으로 항진하다가 같은날 09시 41분경 교행하는 예인선이 있었으므로 잠시 정선하였다가 같은날 09시 46분경 다시 미속으로 속항하고 있었다.도선사 A는 레이다를 3마일 거리로 탐색 관측하면서 항진하다가 같은날 09시 53분경 팔미도 남남동단 거리 약 0.8마일 해상에서 진침로 035도로 변침 하면서 속력을 약 5노트 극미속으로 감속 조치하였다.그후 기관정지와 극미속을 교대로 반복 사용하면서 약 3노트의 속력을 유지하여 B-2묘박지로 향하던 중인 같은날 09시 55분경 선수우현 5도 거리 약 2.3마일에서 다른 어선군과 함께 군함 경기함을 탐지하였다.그러나 이 당시는 군함인지 어선인지 식별이 거의 불가능하였다.같은날 10시 00분경에는 선수우현 20도 거리 약 0.8마일로 접근되어 빠른 교행선으로 판단되었으나 최소접근거리(CPA)가 우측 0.5마일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항진하고 있을 때인 같은날 10시 03분경 군함경기함이 우변침하여 침로선상을 횡단하는 것을 인지하고 충돌의 위험을 느낌과 동시에 기관정지 전속 역전 명령을 지시하였다.그러나 후진타력이 발생하기전인 같은날 10시 06분, 후진기관 사용으로 선수가 약 5도 정도 우회두된 상태(진방위 040도를 가리킴)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충돌되었다.충돌후 두 선박은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접촉된 상태에서 경기함의 전진타력과 화물선 베트남남투의 우회두성 타력으로 베트남남투의 선수부위가 경기함 좌현측 선미 구조물에 스치면서 지나가 완전 분리되었다.이 충돌로 경기함 좌현측 함교부위가 길이 5미터 × 높이 5미터 정도로 굴곡 손상 되었으나 침수개소는 없었다.그리고 화물선 베트남남투는 정선수 현장부위가 3미터 범위로 굴곡 손상되면서 수면상 약 2미터되는 정선수재 부위외판이 직경 0.2미터 범위로 파공되었으나 침수개소는 없었다.경기함과 화물선 베트남남투는 상호 자선의 손상개소를 각자의 부담으로 수리할 것을 합의 서명하였다.

2. 원 인이 충돌사건은 해난심판법 제2조제1항제1호 규정에 해당된다.

가. 충돌의 원인충돌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시정을 제외한 조류, 풍향, 풍속, 해상상태 등의 자연적인 조건은 항행 및 충돌에 영향을 줄만한 요소는 없었으나 인천항 진입로인 팔미도 부근 및 인천항 수로에 많은 소형어선들이 조업중에 있었으므로 항행에 주의를 요하는 상황이였다고 판단된다.즉 충돌위치 부근에는 약 0.9노트의 북동류가 흐르고 있었고 많은 소형어선들이 군(群)을 이루어 조업하고 있었을 뿐 해상은 풍파없이 잔잔하였다.그러나 시정은 안개로 인하여 약 300미터 내외로 제한되어 인천항을 출입항 하는 모든 선박은 제한된 시정하에서 항법을 철저히 이행하여야만 될 상황이였다.이러한 여건하에서 작전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인천항을 출항한 경기함은 항내에서 조업중인 소형 어선군(群)으로 인하여 인천항 우측수로를 따라 항행하지 못하였다.즉 E-4묘지에서 출항하여 진침로 200도-190도-205도 등의 침로를 따라 항로좌측으로 항행하여 동수도와 서수도로 분리되는 팔미도 남방 통항분리대 부근까지 접근한 후 출항선 항로인 서수도로 진입하기 위하여 진침로 205도에서 260도로 극우변침하여 입항선 항로인 동수도에서 나와 인천항으로 진입하는 화물선 베트남남투의 항로를 횡단하는 순간에, 그리고 동수도를 따라 입항 중이던 화물선 베트남남투는 예정항로를 따라 팔미도 남남동 0.8해리를 지나면서 진침로 035도로 변침한 후 경기함 및 어선군을 선수우현 5도거리 약 2.3마일에서 접촉하였지만, 군함인지 어선인지 식별을 하지 못한채 선수우현 20도 거리 0.8마일에서 다시 확인후 빠른 교행선으로 최소 접근거리(CPA)가 약 0.5마일될 것으로 판단하고 속항하다가 경기함이 변침하여 선수를 횡단하는 순간에 기관정지외 아무런 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충돌에 이르게 되었다.즉 두 선박은 다같이 레이다만으로 상대선을 탐지하였으나 다른 항행선박 및 어선들과 동시에 탐지한 관계로 혼동되어 상대선의 침로, 속력 등 행동분석을 철저히 하지 못하였다.즉 다른 선박을 레이다로 접촉한 후 근접한 상태가 되고 있는지 또 충돌의 위험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고 또 안전속력을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항로 좌측을 따라 항진하다가 무모하게 입항선 항로를 횡단한 경기함의 운항부주의가 이 충돌 발생의 원인이 되었다.(해상충돌예방규칙 제19조(b)(d)항, 개항질서법 제12조 및 제13조3항 규정 위반)그리고 레이다상에 나타난 군함 경기함과 어선들의 영상이 구별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이를 식별하지 못하므로써 군함 경기함이 통항분리대인 서수도 입구로 진입 할 것을 예측하지 못하였음은 물론 막연히 우현대 우현측으로 항과하는 선박으로만 판단하고 충돌의 위험성 여부를 계속 관찰하지 못한 화물선 베트남남투의 운항과실도 이 건 발생의 일인이 되었다.

나. 경기함측 행위경기함장 지정해난관계인 B가 해난조사 및 심판에 참여하지 않아 출항시부터 충돌에 이를때까지 경기함이 어떤 항정으로 어떤의도를 가지고 기동하였는지 정확히 판단하기는 곤란하다.그러나 제출된 “해난자료” 및 항해일지 사본에 나타난 제반사항을 분석하여 보건데,(1) 경기함은 출항시부터 입항선이 항행해야 하는 수로좌측으로 항행한 것이 인정된다.즉 E-4묘지에서 출항하여 진침로 200도-195도-205도로 항행하다가 팔미도 부근해역에서 서수도 입구로 진입하기 위하여 진침로 260도로 변침한 것을 볼 때 좌측항행한 것이 분명하다.해난을 피하기 위한 경우와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개항질서법 제12조 항로규정 및 제15조 항법규정 제3항에 따라 항로 우측을 항행하면서 출항하였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2) 사고일시인 1989년 5월 28일 10시 06분경에 시정이 약 300미터 내외로 제한되었고, 그전부터 시정은 이와 비슷한 것이 인정된다.즉 경기함에서는 출항후 20분이 지난 같은날 09시 45분에 함교-전탐실(CIC)간 협수로 연안 항해요원을, 같은날 09시 52분에 저시정연안 항해요원을 배치하고 제한된 시정에 있어서의 경계태세에 임하고 항행한 것은 확실하다.그러나 항행시 양현 기관을 전진 1/3에서 3/3까지(ALL ENG. AHEAD 1/3- STANDARD 3/3) (속력으로는 약5노트에서 15노트 정도) 사용한 점은 군함의 특성으로 보아 안전속력이 다소 달라질 수 있다고 인정은 되지만 시정이 300미터 내외인 제한된 시정하에서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 제19조(b)항과 해상교통안전법 제27조제2항 규정에 규정된 안전속력에 적합한 것인가 하는 점은 문제가 있다고 인정된다.

(3) 우수한 장비와 잘 훈련된 전탐요원을 확보하고 있는 군함에서, 물론 팔미도 부근해역에 많은 어선들과 입출항하는 선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입항하는 5000톤급 상선과 조업내지 이동중인 어선을 혼동하여 탐지하였을리도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실제로 입항하는 선박의 항로를 횡단하는 변침을 시도하여 이 충돌사건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레이다에 의한 탐색, 분석과정에서 소홀함이 인정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기함 측의 모든 운항과실, 즉 경기함을 지휘한 지정해난관계인 B의 운항에 관한 직무상 과실이 이 충돌발생의 원인이 되었다.

다. 베트남남투측 행위(1) 충돌위치, 충돌각도, 손상정도 등을 살펴볼 때 베트남남투의 항로유지 및 안전속력유지 등은 정상적이었다고 인정된다.

(2) 레이다만을 의존하는 무중항해에서 레이다 탐색에 소홀하여 구축함급 선박을 거리 2.3마일에서 초인하고 어선 및 다른 소형선박과 식별하지 못하였을뿐아니라 다시 5분후에 확인하여 우현대 우현으로 항과하는 선박으로 판단한 것은 레이다에 탐지된 물체에 대한 작도 기타 체계적인 관측을 하지 못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물론 당시 상황으로 보아 이동내지 조업중인 많은 소형어선과 함께 경기함을 포착하였을시 식별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좀더 정확한 작도(PLOTTIN-G), 체계적인 관측을 하였더라면 구축함급과 어선은 충분히 구별하였을 것이고 또 큰 선박은 팔미도 부근의 통항분리대에서 출항로인 서수도 진입을 시도할 것이라는점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더욱이 베트남남투를 도선한 수심인 A는 누구보다도 인천항 수로상황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인천항을 출입항하는 선박의 행동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동 수심인의 레이다에 의한 탐색, 체계적인 분석 및 경계소홀도 이 충돌사건 발생의 일인이 되었다고 판단된다.지정해난관계인 B의 행위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제3항 규정에 의거 권고함이 타당하나 동인은 본 사건으로 인하여 해군에서 이미 직위해제되어 징계조치를 당하였을 뿐 아니라 권고의 효과도 없으므로 굳이 권고하지 않는다.수심인 A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제2항 규정에 의거 동법 제6조제1항제3호의 규정을 적용 견책함이 타당하나 장기간 해운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참작하여 굳이 징계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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