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요지중해심 재결 제92-6호에 불복한 수심인 A가 해난심판법 제74조의 규정에 의거 제기한 소에 대하여 해난원인판단 부분에 대하여는 각하하고 징계부분은 취소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해난심판법 제77조의 규정에 의거 심판을 재개한 것임.관여조사관 Q
중해심 재결 제92-6호에 불복한 수심인 A가 해난심판법 제74조의 규정에 의거 제기한 소에 대하여 해난원인판단 부분에 대하여는 각하하고 징계부분은 취소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해난심판법 제77조의 규정에 의거 심판을 재개한 것임.관여조사관 Q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7707"></img><span style="display:none;"> 선 명101태룡호제9남성호 선 적 항충무시부산직할시 선박소유자J해운(주)D외 1인 총 톤 수998톤520.30톤 기관종류, 출력디젤 1,600마력디젤 800마력 용 도화물선유조선 수 심 인A B 직 명선 장 선 장 면허종류3급항해사4급항해사 지정해난관계인J해운(주)위 대표자 CD 사고일시1991년 5월 4일 21시 20분경 사고장소북위 34도 33분 10초, 동경 127도 45분 00초(금오수도내)</span> 제9남성호는 총톤수 520.30톤, 디젤기관 800마력, 선령 약 28년의 강조의 연해구역을 운항하는 유조선으로 1991년 5월 24일 17시 50분경 고유황 함유 방카씨유 900.3K/L를 적재하고 광양항(구삼일항) K정유 부두앞 K-Y 10번 묘지를 출발 군산항으로 향하였다.
수심인 선장 B의 조선지휘로 광양항을 출항한 이 선박은 짙은 안개로 시정이 200-300미터 정도까지 제한된 가운데 평균속력 약 6.9노트의 속력을 유지한 채 여수해만과 돌산도 동안을 경유하여 같은 날 20시 50분경으로 추정될 무렵 돌산도 동남단의 거마각 등대를 우현 약 1마일 거리로 통과하면서(수심인 B는 이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 나침로 254도로 우변침하여 대횡간도와 소횡간도 사이의 좁은 수로를 진입 하였다.이 무렵에도 시정은 여전히 300미터 이내로 제한된 상태였으나 수심인 선장 B는 감속이나 무중신호, 경계강화등 시계제한에 따른 제반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6.9노트에 달하는 반속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레이다에만 의지한 채 속항하여 같은 날 21시 07분경 소횡간도를 좌현 약 0.2마일 거리로 통과하면서 나침로 236도로 변침(진침로 230도 상응침로, 수심인 B는 이때 나침로 260도를 중심으로 수시로 침로를 조정해 주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음) 금오수도 서측 수로를 향한바 이 무렵 선수방향 2마일 조금 넘는 거리에서 접근해 오는 상대선 101태룡호를 레이다로 초인함과 동시 상대선에서 취명하는 무중신호도 들었으며 또한 이때 거의 마주치는 관계로 접근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정확한 선위확인이나 감속 또는 침로조정등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함이 없이 그대로 진행한바 잠시후 이 선박은 소두리도 우현측에 근접한 위치로 정횡하게 되어 있어 곧 우전하여 수로우측선을 따라 진행하도록 침로를 우현측으로 조정해 주어야 될 상황이었는데도 침로를 조정해 주지 않아 동향조류의 영향으로 우현측 소우리도에 근접하지 못하고 크게 떨어져 결과적으로 수로좌측변에 치우치고 있었음에도 변침을 단행하지 아니하고 침로와 속력(대수속력 6.9노트 내외의 반속)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가 충돌 1분여전으로 추정될 무렵인 21시 19분경 소두리도 남방 약 0.35마일 거리를 통과할 무렵 선수 약간 우현측 300미터 내외의 거리에 상대선의 장등이 시야에 들어오자 황급히 극좌전타로 피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선수방위가 약 15도 정도 좌회두 되고 있을 때 갑자기 상대선의 홍등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때야 수심인 선장 B는 상대선이 우전중에 있음을 감지하고 다시 극우전타로 반전함과 동시 기관을 정지 시킨데 이어 전속역전을 걸었으나 역전타력이나 회두타력이 발생 되기도 전에 진술한 바와 같이 충돌되었다.5월 24일 21시 20분경 금오수도 북단으로부터 약 0.2마일 거리인 북위 34도 33분 10초, 동경 127도 45분 00초 위치에서 101태룡호 선수방위가 095도 내외로 향한 상태에서 선수우현묘가 제9남성호 우현 선교부위에 양선 선수미선 교각 약 30도 각도로 충돌됨과 동시 101태룡호의 구형선수재가 제9남성호의 우현측 3-4번 유조창 수면하 외판에 충돌되었다.한편 101태룡호(이하 “태룡호”라 한다)는 총톤수 998톤, 디젤기관 1,600마력, 선령 약 2년의 강조 모래채취 운반선으로 1991년 5월 23일 17시 00분경 선원 9명이 승선하고 광양항을 출항하여 다음날인 5월 24일 06시경 전라남도 시아바다 남부의 시하도 부근에 도착함과 동시 해저 모래를 채취, 적재하기 시작하여 같은 날 10시경 모래 약 1,500세제곱미터를 적재, 전부흘수 5.30미터 후부 흘수 6.00미터의 만재상태로 현지를 출발하여 광양항으로 향하였다.시아바다를 출발한 이 선박은 진도수도와 횡간수도를 경유하여 같은 날 16시 10분경 섭도등대를 좌현 0.5마일 거리로 통과한데 이어 18시 50분경 외나라도 남단에 위치한 곡두여를 좌현 0.8마일로 정횡으로 통과하여 금오수도 서쪽 입구를 향하여 진침로 045도로 변침 약 7토느의 항해속력으로 속항하였다.수심인 선장 A는 이 선박이 섭도등대를 통과하기 직전인 이날 16시경 승교하여 전당직자 2등항해사 E과 당직을 교대, 직접조선 지휘하기 시작하였다.수심인 선장 A는 짙은 안개로 시계가 300미터 내외로 제한되고 있어 약 5노트의 반속으로 감속하여 전기와 같이 곡두여를 경유, 같은 날 20시 40분경 045도에서 055도 금오도 북서단의 용두각을 우현 0.5마일로 정횡 되어지자 진침로 045도에서 055도로 우현 10도 변침하여 금오수도 서쪽 좁은 수로에 진입하면서 약 3.5노트의 미속으로 감속조치하고 선수부에 경계원 2명을 배치하였으나 긴급투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무중신호만 취명하기 시작하였다.이때 이와 같은 상태로 서행하면서 몇차례 소각도 우전으로 침로를 조정하여 20시 55분경에는 진침로 070도가 되었다.수심인 선장 A는 이후 가급적 수로우측에 따라 진행되도록 침로를 약간씩 소각도로 우현측으로 조정하면서 진행하고 있던중 이로부터 십수분이 경과된 같은 날 21시 08분경으로 추정될 무렵 금오도 북안의 송고지를 우현 약 0.21마일 거리로 항과하면서 선수 약간 좌현측 약 2.15마일 거리에서 접근해 오던 상대선 제9남성호를 레이다로 초인 하였으나 이때 자선은 수로 우측을 따라 진행하고 있었고 상대선은 횡간도 방향에서 소두리도를 우현에 두고 금오수도 서측 수로에 진입 하고자 향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대로 진행하더라도 좌현대 좌현으로 안전하게 교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선위만 좌편향 되지 않도록 우측으로 약간씩 조정해 주면서 레이다만 주시하고 있다가 충돌 약 1분여 전인 21시 19분경 선수 약간 좌현측 200-300미터 거리에 상대선의 장등과 홍등이 시야에 들어오게 되자 비로서 상대선이 침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즉시 극우전타하여 우회두 하고 있을 때 상대선의 홍등이 녹등으로 변하면서 더 빨리 좌회두하여 본선의 진로를 가로막은 상태가 되었다.이때 101태룡호는 충돌을 피하기 위한 긴급조치로 우회두 하던 것을 멈추고 극좌전타로 좌회두하려는 시도를 하였어야 함은 물론 전진타력을 완전히 멈추기 위한 긴급 투묘조치를 하지 못한 채 충돌에 이르게 되었다.충돌후 두 선박은 곧 분리되었고 101태룡호는 우현묘의 묘간이 절단되고 구형 선수재등에 약간의 손상이 있었고 유조선 제9남성호는 우현측 3번, 4번 유조창 수면하선측 외판이 길이 3.50미터 너비 약 2.00미터 범위로 굴곡 되었고 그 중심부에 길이 약 3.00미터 너비 약 0.40미터 정도로 파공되어 화물유가 유출되고 있어 신속하게 우현묘를 투묘한후 오일펜스를 설치하였으나 조류의 영향으로 주묘되고 있었고 또 풍파가 거세서 유화처리제 살포등 효과적인 방제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던중 이날 21시 50분경 상대선 태룡호가 본선 좌현에 접선하여 손상된 유조창의 화물유를 태룡호의 선수공창에 우선 적재하고 태룡호에 예인을 부탁하여 같은 날 21시경 금오수도 서측 절호도 남방 약 0.7마일 거리의 북위 34도 32분 53초, 동경 127도 42분 47초의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여 투묘하고 오일펜스를 설치한 다음 유화제를 뿌리는 등 자체 방제작업을 개시하면서 수심인 선장 B는 태룡호의 무선전화로 선주와 여수해양경찰서 등에 사고내용을 보고, 구조요청 한바 수심인 선장 B는 이러한 중대사고를 무려 2시간 가까이 지연시켜 보고하면서도 수심인 선장 A의 동의를 받아 사고장소를 월호도 남방의 현 묘박지로 정하고 사고시간을 이날 23시경으로 잘못 보고하였다.따라서 해경등 구조선의 출동마저 지연되어 다음날인 5월 25일 04시경 해경정이 현장에 도착하여 방제작업에 임하였고 같은 날 06시경 다른 유조선 서린호등이 현장에 도착되어 나머지 화물유를 전량 이적한 다음 현장에서 파공부를 응급 수리하고 다음날인 5월 26일 15시경 해경의 지시에 따라 현지를 출발하여 자력 항해로 여수항으로 향하였고 태룡호는 현지에서 계속 방제작업을 돕고 있다가 제9남성호보다 먼저 이날 09시경 해경의 지시에 따라 여수항으로 향하였다.이 사고로 인하여 제9남성호는 우현측 3번, 4번 유조창 수면하 선측 외판이 길이 3.50미터 너비 약 2.00미터 정도의 범위로 굴곡되고 그 중심부가 길이 약 3.00미터 너비 약 0.4미터 파공 되었으며 선교 우측 외판이 크게 굴곡 손상되었다.이에 화물유인 방카씨유 약 115K/L가 유출됨으로써 여천군 남면과 화정면 고흥군 전암면과 봉래면 해안과 부근 도서 일대의 어장시설과 자연자원을 크게 오염시켰다.사고당시 현지가상은 초속 10-12미터의 동남풍이 불고 파고 1.5-2.0미터의 다소 거친 날씨에 짙은 안개로 시정은 300미터 이내로 제한되고 있었으며 조류는 “순조”인 낙조중기로 1.5노트 내외의 동향조류가 흐르고 있었다.따라서 태룡호는 순조를, 제9남성호는 역조를 받고 있었다.
2. 원 인가. 사고발생원인이 충돌사고는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항 제1호의 규정에 해당되는 사건으로 그 원인을 살펴보건데이 충돌사건은 짙은 안개(시정 200-300미터)로 시계가 심히 제한되어 있는 좁은 수로내에서 유조선 제9남성호측이 해상교통안전법 제27조 제1항에 따른 안전한 속력을 유지하지 아니하고 과도한 속력으로 항진하다가 같은 법 제42조 제1항에 따른 무중신호를 취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같은 법 제13조에 따른 경계를 하지 않으므로써 제9남성호의 선장 B는 자선이 낙조기의 동향류에 의해 우측수로에서 좌측으로 압류되어 가는 사실을 모르고 이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박근상태로 접근되어진 상태에서 좌변침한 동인의 운항상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그리고 화물선 101태룡호측이 안전속력의 유지, 무중신호의 취명, 경계강화등 제한된 시정하에서의 항법을 이행한 것은 인정된다.
그러나 상대선이 정상 침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안전항해를 위하여 우변침 하던중 상대선이 더 빠르게 좌회두하여 본선의 진로를 가로막게 됨으로써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회두 타력을 멈추고 임기응변으로 좌변침 하던가 긴급투묘 등의 긴급조치를 취하여 전직타력을 완전히 멈추게 하는등 충분하고도 유효적절한 충돌 회피 동작을 취하지 못한 것도 이 충돌 발생의 일인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나. 해난관계인의 행위(1) 수심인 B의 행위수심인 B는 위험물인 방카씨유를 만재하고 야간에 시계마저 심히 제한되어 있는(시계 200-300미터)좁은 수로를 통항하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해상교통안전법 제27조(제한된 시계에 있어서는 선박의 항법) 제2항에 따른 자선의 침로를 유지함에 필요한 최소의 속력으로 감속하여야 함에도 6.9노트 내외의 속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충돌 10여분전 2마일 이상의 충분한 시간과 거리의 여유를 두고 상대선이 접근해 오고 있는 사실을 레이다로 확인함과 동시 상대선이 취명하는 무중신호까지 들었으면서도 해상교통안전법 제42조의 규정에 의한 무중신호를 취명하는 등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고 안일하게 침로와 속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방관하고 있었고 특히 이무렵 자선은 소두리도와 소횡간도 사이 좁은 수로로부터 금오수도 서측 수로로 진입 할 단계에 있었으므로 소두리도에 근접(수로우측연)하도록 진행하여 변침점을 벗어나기 전에 우전하여 주어야될 시점에 만연히 그대로 진행하다가 당시 약 1.5노트 유속의 동향조류에 의하여 좌현측으로 크게 편위되게 되었고 그 결과 금오수도 내에서 동향으로 항해하고 있는 상대선의 진로전방으로 압류되어지는 것을 방지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미 상대선이 300미터 내 시야에 들어와 우전하고 있었으므로 같이 우전해 주어야 될 최후의 결정적인 시점에서 반대로 무중항법에서 피하게 되어 있는 좌전타를 단행함으로써 충돌을 자초한 결과가 되었다.수심인 B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선박운항에 관한 중대한 과실로 선박의 손상은 물론 많은 양의 유류를 유출시켜 귀중한 자연자원과 해양을 오염시켰으므로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의 규정에 의거 동법 제6조 제1항 제2호를 적용하여 이 사람의 4급항해사 업무를 9월 정지한다.
(2) 수심인 A의 행위수심인 A는 약 1.5마일 거리에서 접근해 오고 있는 제9남성호를 레이다로 초인하였을 때, 두 선박이 좌현대 좌현으로 무난히 항과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감속과 동시에 소각도 우변침으로 수로 우측을 항행하면서 선수에 경계요원을 배치하는 등 무중항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것은 인정된다.그러나 수심인 A는 기관정지까지 하였다고 하나 그 타력이 즉시 정지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여 해상교통안전법 제27조 제6항의 규정에 따라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자선의 진행을 완전히 멈출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닻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지 않았으므로서 제9남성호가 좌변침하면서 자선의 진로를 가로막는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시 투묘하지 못하여 전진타력을 완전히 멈추게 하지 못하였고 또 우변침하고 있는 자선보다 더 빨리 좌변침하고 있는 상대선의 행위를 인지하고서도 임기응변으로 급좌전타하여 충돌을 피하기 위한 긴급조치를 하지 못하는 등 충돌 직전에 적극적인 회피 동작을 취하지 못하였는바, 이러한 위급시 긴급투묘, 긴급좌전타 조치를 취하지 못한 동 수심인의 행위도 이건 발생의 일인이 되었다고 판단된다.그러므로 동 수심인의 행위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제2항에 의거 동법 제6조제1항제2호를 적용하여 동인의 3급항해사 업무를 1월 정지한다.
(3) 지정해난관계인 D과 지정해난관계인 J해운주식회사의 행위두 지정해난관계인은 운항사업자로서의 선박안전관리와 운항감독을 태만히 한 점은 인정되나 동 지정해난관계인 행위는 이 건 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이 충돌사건은 짙은 안개로 시계가 제한되어 있는 좁은 수로내에서 유조선 제9남성호측이 안전속력을 준수하지 아니하고 경계를 소홀히 한 채 좌측통항을 한데다 박근상태에서 좌전타 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나, 화물선 101태룡호측이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 나머지 상대선이 계속 접근하고 있었음에도 완전히 멈추는등 충돌직전에 적극적인 회피 동작을 취하지 못한 것도 그 일인이 된다.수심인 B의 4급항해사 업무를 9월 정지한다.수심인 A의 3급항해사 업무를 1월 정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