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요지이 사건은 인천지방해난심판원 조사관 R, 수심인 A, 지정해난관계인 F, 동 지정해난관계인 J유조선주식회사(대표 E)등이 인해심재결 제1991-001호의 재결에 불복하여 해난심판법 제58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2심을 청구한 것입니다.관여조사관 Q
이 사건은 인천지방해난심판원 조사관 R, 수심인 A, 지정해난관계인 F, 동 지정해난관계인 J유조선주식회사(대표 E)등이 인해심재결 제1991-001호의 재결에 불복하여 해난심판법 제58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2심을 청구한 것입니다.관여조사관 Q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6459"></img><span style="display:none;"> 선 명코리아써니힐호코리아호프호대동호해성호 선 적 항여수시여수시인천직할시인천직할시 선박소유자J유조선(주)J유조선(주)HD 총 톤 수16,813톤12,644.30톤21톤37.82톤 기관종류,출력디이젤기관8,613키로와트디이젤기관6,714키로와트디이젤기관350마력디이젤기관350마력 수 심 인ABCD 직 명선 장선 장선 장선 장 면허종류1급항해사1급항해사6급항해사소형선박</span><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6461"></img><span style="display:none;"> 조종사 지정해난관계인J유조선(주) F, G 사고일시1990년 7월 15일 09시 45분경 사고장소북위 37도 28분 30초, 동경 126도 35분 30초(인천항 제1항로상)</span>가.
유조선 코리아, 써니힐호 및 코리아, 호프호 소유자(J유조선주식회사)의 내력이 충돌사건의 사고선박 소유자인 지정해난관계인 J유조선주식회사(대표 E)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7-3 삼환까뮤빌딩 6층에 본사를 둔 내항 유류운송 업체로서 소유선박은 이 충돌사건을 일으킨 양선박외에 LPG선 5척 (15,587총톤)을 소유 운항하고, 부산, 여수, 인천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이 회사는 1943년에 설립된 유조선회사로서 1968년에 K정유의 계열사가 되어 (자본금 9억8천만원)주로 K정유의 유류 제품과 액화가스를 국내항간에 운송하는 업체이다.
선박의 운항관리의면을 살펴보면 이 회사는 선원 취업규칙외에 선원복무규정, 항해지침, 유조선 안전관리규정 운항일반지침등을 정비하고, 해무안전점검표와 안전기술정보지(사내지)를 발간하고, 소화훈련 본선 안전회의 등을 개최하여, 선원안전 교육을 실시하는 등 내항유조선업체로써 선박운항의 안전관리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 코리아써니힐호 및 코리아호프호의 내력 성능 검사관계 및 운항상태(1) 코리아써니힐호코리아 써니힐호(이하 써니힐이라 한다)는 1976년 4월 일본 M조선소에서 진수된총톤수 16,818톤, 출력 8,618킬로와트인 디젤발동기(150rpm) 1기를 거치한 선미선루형 강조유조선으로, 전장 171.02미터, 너비 25.40미터, 깊이 14.35미터, 하기만재흘수 10.71미터이며 화물구획은 2개의 발라스트 탱크(ballast tank)와 2개의 스롭 탱크(slop tank)를 포함 15개의 탱크로 구획되어 재화중량은 29,786톤이고 선수로부터 선교까지의 길이는 116미터이고 항해속력은 만재시 13.4노트(135rpm) 발라스트시 14.8노트(135rpm)이고, 항행구역은 국내항해에 한정된 연해구역인 한국선급의 입급선이다.이 배는 1986년 12월에 한국선급의 정기검사를 받아 1990년 12월까지 유효한 정기검사증을 보유하고 1989년에 3회의 임시검사와 1회의 중간검사를 받았고 1990년 11월에 중간검사지정을 받고 있어서 선급검사관계는 정상이다.이 배에는 2대의 레이다와 자동충돌예방보조장치(ARPA)가 설비되어 있다.자동충돌예방보조장치(Automatic Radar-Plotting Aids, ARPA)는 레이다로 탐지한 각종 물표의 방위, 거리, 속력, 침로, 최근접점(CPA)의 거리 및 도달시간 등의 정보를 자동적으로 산출 표시하여 항행선의 충돌예방에 도움을 주는 항해보조전자기기로서 1983년 해상인명안전협약(SCLAS 1983)에 의하여 10,000총톤 이상의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선박에 설치할 것을 강제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 5월 27일 개정된 선박설비규칙(교통부령제855호)에 의하여 10,000톤 이상의 유조선은 내항선의 경우에도 설치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이 배의 해상시운전성적표와 항내조선속력표에 의한 기관회전수 대 속력을 보면 다음표와 같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6463"></img><span style="display:none;"> 구 분기관사용 전 진후 진RPM속력(노트)RPM속력(노트)극미속미 속반 속전 속405060854.45.56.69.4405060854.45.56.69.4</span> (2) 코리아 호프호코리아 호프호(이하 호프호라한다)는 1954년 11월 독일 함브르그의 N조선소에서 진수된 총톤수 12,644.30, 출력 6,714킬로와트인 디젤발동기(115 rpm)1기를 거치한 3도형(三島型)강조유조선으로, 전장 176.40미터, 너비 21.95미터, 깊이 11.97미터, 하기만재 흘수 9.51미터이고, 화물구획은 33개의 탱크로 구획되어 재화중량톤수는 18,990톤이고 항해속력은 만재시 12.5노트(93rpm)발라스트시 13.5노트(93rpm)이고, 항행구역은 국내항해에 한정된 연해구역인 한국선급의 입급선이다.이 배는 1987년 7월에 한국선급의 정기검사를 받아 1991년 7월까지 유효한 정기검사증을 보유하고 1989년 7월에, 제1종중간검사를, 1990년 7월 10일에 제2종 중간검사를 받았고, 선급검사관계는 이상이 없다.이 배에는 2대의 레이다가 설치되어 있으나 자동충돌예방보조장치는 설비되어 있지않다.
이 배에 대한 1989년 7월 15일의 제1종 중간검사시에 자동충돌예방보조장치의 설치에 대한 검사를 시행하였어야 하나 (사)한국선급 여수주재 검사원 F는 이 계기에 관한 법령의 모호성과 본인의 부주의로 인하여 이 계기 설치 여부를 검사하지 아니하였다.이 계기를 설치하지 아니한 것은 개정선박설비규칙(교통부령 제855호)에 위반되는 사항이나 이 계기를 설치하지 아니한 것과 이 충돌사건과의 인과관계 유무에 관하여서는 뒤의 원인판단에서 검토한다.이 배의 속력표(영치번호 6)에 따라 기관회전수 대 속력을 보면 다음표와 같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6465"></img><span style="display:none;"> 구 분기관사용전 진후 진rpm속 력만재시 조정속력rpm속 력만재시 조정속력극미속미 속반 속전 속455060806.47.08.510.46.086.658.089.88455053634.04.75.77.13.804.475.426.75</span> (3) 양선의 운항상태이 양선박은 계열기업의 모회사인 K정유(주)에 장기 용선되어 K정유의 P정유소로부터 S저유소까지 유류제품 운송에 종사하며 피스톤 운항을 하고 있다.써니,힐호는 항공연료유, 휘발유 및 벙커씨유 등을 운송하고 호프호는 벙커씨유를 운송한다.이 배들은 인천항 K정유 계류부표(4point mooring buoy)에 계류하여 양하작업을 함으로 인천항 조석시간에 맞추어 정조(slack tide)시에 한배가 이안(unmooring)하면 다른배가 접안(mooring)하는 방식으로 매월 6-7항차의 항해를 하고 있다.써니힐호 선장 수심인 A(이하 선장 A이라 한다)는 이 항로에 약 14년간 선장으로 조선지휘한 경험이 있고 호프호 선장 수심인 B(이하 선장 B이라 한다)는 이 항로에 약 20년간 선장으로 조선지휘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각각 써니힐과 호프호의 선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두 선박의 성능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K정유(주)의 년간해상운송량은 본사에서 작성하여 전국저유소의 수요변화에 따라 수급계획을 조정하고 매항차의 운송량은 2-3일전에 K정유 T공장에 통보하고 T공장에서는 본사의 해상운송계획에 따라 선적운송하며 여천에서 1개월 약 450척의 대소 선박이 유류제품을 선적하고 있다.K정유 T공장은 화물의 선적량이나 일기불순시의 선박의 출입항에 있어서 본선의 안전관계사항은 일체 본선 선장의 판단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여 본선운항의 안전에 관하여 대하주로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다. 인천항 항로사정과 항내교통관제인천항에는 제1항로와 제2항로가 설정되어 있고 제1항로는 가항폭 약 300미터로 남북방향으로 항내수로를 관통하여 인천항의 출입항로이고 제2항로는 갑문입구와 제1항로를 접속시켜 갑문에 입출거하는 선박의 항로이다. 제1항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 0.4마일 간격으로 묘박지가 지정되어 있어서 정박선이 묘박을 하는데 남북으로 흐르는 조류가 약3노트에 이르러 조석의 간만시마다 묘박선이 조류방향에 따라 선회하여 항로내로 침범하는 경우가 많고 선박출입이 폭주하여 항로내 항행에 지장을 주는일이 빈발한다.S지방해운항만청은 “인천항 항만관제통신운영규정”을 고시(해운항만청고시 제89-15호)하여 항만관제통신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고 있고 그 운영은 부두과 통신계에서 통신사가 통신을 위주로 운영하고 있는바 이 항만통신실을 속칭 인천항만관제실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현 기구는 첫째 항내선박교통관제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아니하고 둘째 선박교통관제를 수행하기 위한 관제실이 갖추어져 있지 아니하고 셋째 선박교통관제를 행할 능력이 있는 전문요원이 전무한 상태이므로 인천항 출입항선의 교통관제는 불가능하여 항행안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S지방해운항만청은 인천항 갑문안전통항규칙(인천지방해운항만청공고 제14조 1986.9.1)을 제정하고 시정이 0.5마일 이하일 때 갑문의 통항을 제한하고 있을뿐이다.이 충돌사건 발생당시 충돌해역근방의 정박선 상황을 보면 묘지(A-4, A-5, E-1)에 북으로부터 남주호(총톤 1,795톤) 미첼(총톤 4,843톤) 및 선명미상의 소형선박이 선수를 남으로 향하여 묘박중이었다.라.
K정유(주) S저유소와 계류부표의 계류방법K정유(주) S저유소는 월미도 북단에 위치하여 32기의 저유탱크에 휘발유 벙커씨유, 등유류 146,016㎘와 윤활유 16,454㎘ 및 LPG6,600톤의 저장능력을 갖추고 경인지역에 유류를 공급하고 있으며 30,000DWT급 탱커가 계류, 하역할 수 있는 계류부표(4 point mooring buoy)와 6,000DWT급 탱커가 접안할 수 있는 돌핀(dolphin)시설을 갖추고 계류부표에서는 유류를 양륙하고 돌핀에서는 주로 LPG를 양륙하고 있다.S저유소는 10여종의 유류를 저장 수급하므로 당시의 유류 종별 수급사정에 따라 써니힐호와 호프호의 이 접안일정을 수립하여 선박소유자인 J유조선(주) 인천사무소를 통하여 각 선박에 통고한다.인천저유소의 계류부표는 4점계류방식으로 본선을 4개의 부표에 계류하고 중앙에 하역바지(hose barge)를 설치하고 있는 바 이 위치는 암초인 서두암등대로부터 진방위 13도 거리 약 500미터 지정에 위치하여 계류위치의 수심은 15미터이상이 되나 500미터 남방에 암초와 천소지대(수심7-8미터)가 있어서 대형선이 이 접안작업을 하기 위하여서는 고도의 숙력이 필요하고 조류는 최강시 3노트이상이 되어 정조시(Slack tide)이외에는 이 접안작업이 매우 위험한 곳이다.이곳에는 조류의 유향, 유속등을 나타내는 계기는 설치되어 있지 아니하고 이 접안작업은 선장의 목측과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
마. 사고당시의 기상과 항내선박의 동정 및 예선 대동호, 예선 해성호의 동정사고발생당시(7월 15일 09시 45분경)인천항내는 남동풍이 초속 2미터로 파도는 없고 짙은안개가 끼어 시정이 500미터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 날 안개는 05시 20분경부터 끼어 시계가 1,000미터로 제한되었고 09시 07분경부터 12시 30분까지 시정이 500미터, 12시 30분이후 시정 1,000미터, 15시경 시정 3킬로로 안개가 걷히었다.이날 아침 써니힐과 호프호는 짙은 안개속에서도 이 접안 작업을 강행하였으나 호프호와 같은 묘박지(C-1)에 정박중인 U상선(주)소유 유조선 범건호(총톤수 13,159톤.선장 김상덕)는 08시와 09시 50분에 유공 돌핀에 접안 작업을 시도하다 농무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중단하고 그날 오후에 접안하였다.예선 대동호와 예선 해성호는 이 충돌사건발생직전에 계류부표에서 이안하여 항로에 진입중인 써니힐호의 선수 전방을 횡단 진행하여 이 사건 발생에 일인을 제공한 배들이므로 이들의 동정을 살펴본다.대동호는 길이 18.77미터의 강조 예선이고 해성호는 길이 18미터의 강조 예선으로 인천항내에서 예인업에 종사하고 있다.대동호 선장 수심인 C(이하 선장 C이라 한다)는 사건 당일 아침 08시경 연안부두에서 100톤급 하역용부선을 예인하여 A-5묘지에 정박 하역중인 원목선 미첼(총톤 4,843톤)의 좌현에 계류시킨후 다시 V목재(주)저목장으로부터 하역용 부선을 예인하기 위하여 대성목재 저목장으로 가던중 부선 2척을 선미에 예인하고 있는 해성호를 만나 해성호 선수에 예인삭을 걸어 해성호와 함께 부선을 예인하였다.이 예인선열은 대동호를 선두로 해성호와 그뒤에 하역용부선 2척을 병열로 예인하여 그 길이는 약 120미터이었다.대동호 선장 C는 자신의 예인선열의 선두에서 09시 35분경 K정유 남측계류부표와 서두암 사이를 약7노트의 속력으로 진행하면서 써니힐호가 계류삭을 풀고 출항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써니힐호가 항로에 따라 남진할 것임을 알았으나 자선이 그 배의 진로를 먼저 횡단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미첼의 선미를 목표로 (차침로 265도) 그대로 항진하였다.09시 40분경 대동호가 미첼의 선미 후방을 지날무렵 부선을 미첼 우현에 계류키 위하여 감속 항진하면서 선장 C는 써니힐호가 피예인 부선의 후미를 항과한 것을 확인 하고 부선을 미첼의 우현에 계류하였다.
바. 충돌경위(1) 코리아 써니힐호써니힐호는 K정유 T공장 부두에서 휘발유 및 벙커씨유 등 28,825㎘를 적재하고 1990년 7월 14일 09시 25분경 인천항에 입항, K정유 인천정유소 계류부표에 계류하고 7월 15일 06시 15분경 화물의 양륙을 완료하였다. 이 배는 같은날 07시 10분경 양하 호스를 철거하고 선수흘수 2.85미터 선미흘수 5.85미터인 상태로 출항준비를 갖추었다.이 배의 선장 수심인 A(이하 선장 A이라 한다)는 짙은 안개로 시계가 약 500미터로 제한되어 있으나 계류부표의 계류삭을 벗겨줄 라인 보트(line boat)의 작업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으므로 정조시에 이안과 접안 작업을 시행하는 통상의 관행대로 출항할 것을 결심하고 09시 25분경 전선원 출항부서 배치와 기관사용 준비를 명하였다.선장 A는 2척의 예선을 수배하여 우현선수에 예선 서연호를 우현 선미에 예선제6대양호를 배치하고 선수 북북동 방향인 자세에서 09시 35분 선수계류삭을 벗기고 예선 서연호로 하여금 전속으로 밀게하고 6대양호는 약하게 밀게하여 선수방향이 정서를 향할무렵 선미에 잡고있는 마지막 계류삭을 벗기고 좌선회하며 출항하였다.선장 A는 이어 예선 6대양호를 이탈시키고 기관을 사용하며 서연호로 하여금 계속 밀게하여 09시 37분경 선수가 출항침로인 진침로 202도(이하 침로는 진침로임)에 정침될 무렵 예선 서연호를 이탈시키고 09시 37분 30초경 항내전속으로 증속하며 항로우측 한계선 외측 근방으로 남진하기 시작하였다.이 때 2대의 레이다를 작동하여 항로상황을 관측하였으나 자동충돌예방보조장치는 작동시키지 아니하였다.진침로 202도로 정침 남진하기 시작한 후 09시 39분경 선장 A는 안개속에서 자선의 전방항로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횡단하는 예인선열(전기 예선 대동호와 해성호 및 병열부선 2척, 길이 약 120미터)을 발견하고 기관을 정지하였다.써니힐호는 기관정지하였으나 전진타력으로 전진중 예인선열이 전방항로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선장 A는 09시 40분경 좌전타(타각 20도)하여 예인선열을 비껴 침로가 182도로 정침된 상태에서 09시 40분 30초경 기관을 다시 전속전진으로 증속하였다.선장 A는 농무중 출항직후의 급한 조선상황이 지난 09시 41분경 호프호에서 호출중인 VHF 무선전화가 연결되어 호프호가 이미 갑문앞을 통과한 것을 알게 되었고, 호프호와 서트 좌현대 좌현으로 항과하기로 약속하고 전방을 살피니 자선 우측에 정박선(미첼호)이 자선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정박선을 통과한 후에 원침로(202도)로 복귀할 생각으로 그대로 (침로 182도)항주하였다.이 배의 2등항해사 W는 본선이 선미계류삭을 풀어내고 출항하자 09시 38분경 곧 선교에 올라와 레이다 관측을 시작하였다.2항사 W는 선수전방 0.7마일 거리에 이동물표를 확인하고 선장에게 보고하였다.
이 때가 09시 41분경으로 선장 A가 VHF로 호프호와 통화한 시각이었고, 2항사의 보고를 받은 선장은 “그것이 호프호야, 좌현대좌현으로 통과하기로 했어” 라고 답하고 3항사에게 “바지 지나갔지” 라고 물었다. 레이다상에 바지의 영상은 나타나지 아니하였다.이 때의 써니힐의 선수방위는 182도고 속력은 5.26노트였다.2항사 W는 선수의 호프호가 0.4마일거리로 접근하자 09시 42분 40초경 선장에게 0.4마일로 접근중이므로 극우전타하여야 하겠다고 보고하였다.선장 A는 우현측 정박선을 충분히 지난후에 극우전타 하겠다는 생각으로 속항하다 09시 43분 30초경 선수우현 10도 거리 약 0.3마일로 접근하는 호프호를 육안으로 확인하자 충돌위험을 직감하고 기관미속으로 감속하고 곧이어 09시 44분경 기관정지 - 전속후진과 극우전타를 명하였다.그러나 써니힐호는 전진타력을 멈추지 못하고 서서히 우회두 하는중 선수방위 190도를 지날 무렵인 09시 45분 K가스 돌핀 남측 등부표로부터 진방위 270도 거리 400미터인 북위 37도 28분 30초, 동경 126도 35분 30초 해상에서 약 4.4노트의 전진타력으로 호프호 좌현수부에 충돌하였다.
이 위치는 제1항로 중앙에서 약간 서쪽에 비껴진 위치이고 충돌자세는 써니힐의 선수부가 호프호의 좌현선수로부터 약 42미터되는 외판에 약 60도의 교각으로 충돌하였다.
(2) 코리아호프호호프호는 K정유 T공장 부두에서 벙커씨유 16,470.4㎘를 적재하고 출항하여 1990년 7월 11일 15시 30분경 선수흘수 8.48미터 선미흘수 8.84미터인 상태로 인천항에 입항하여 C-1묘지에 우현묘를 투하하고 묘쇄 6샤클을 신출하고 정박 대기하고 있었다.선장 수심인 B(이하 선장 B이라 한다)는0 7월 15일 08시 50분경 짙은 안개로 시계가 극히 제한된 상태에서 써니힐의 이안여부를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별도 연락이 없으므로 써니힐이 예정대로 이안할 것으로 생각하고 자선도 예정대로 접안하기로 결심하여 양묘시작 08시 59분경 양묘를 완료하였다.
양묘후 이 배는 조류(남류)의 영향으로 남향한 선수를 우선회하여 항로에 진입하고 09시 08분경 예정 침로인 진침로 020도(이하 진침로)로 정침하고 미속으로 항진하였다.같은날 09시 05분경 항해사들이 사용하는 제1번 레이다의 고압계통이 소손되어 작동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므로 선장 B는 제2번 레이다에 의존하여 조선지휘할 수 밖에 없었고 선교에 있는 2등항해사나 3등항해사는 레이다의 지속적 관찰을 할 수 없어서 선장의 조선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선장 B는 이날 인천항 전류 시각이 10시 39분이므로 10시경에 K정유 계류부표에 도착할 수 있도록 기관미속과 극미속등으로 속력을 조정하면서 항로를 따라 진침로 020도로 북상하고 자주 선위측정은 하지 아니하였다.09시 37분경 침로대로 진행하면 K정유 가스돌핀과 최근접거리(CPA) 0.15마일 정도된다는 3항사의 보고를 받은 선장 B는 가스돌핀의 북측 천소지대에 너무 가깝게 진입할 것을 우려하여 좌전타를 명하였고 곧이어 09시 37분 30초경 속력이 다소 빠른듯하여 (당시속력 약 6.3노트)기관을 잠시 정지하고 곧 극미속으로 전진하였다.
선장 B는 09시 40분경에는 선위가 항로 좌측에 편위되었으리라 생각하고 키를 15도 우전타하였으나 정확한 선위측정은 하지 아니하였다.2항사 W는 X와 함께 제1레이다를 수리하느라 전방파수나 선위측정등 선장을 보좌하지 못하였다.선장 B는 북상하면서 VHF로 써니힐을 호출하였으나 응답이 없다가 09시 41분경 써니힐과 통화가 되어 자선이 갑문앞을 지나고 있음을 알리고 서로 좌현대 좌현으로 항과하기로 약속하고 레이다로 항로전방을 살폈으나 써니힐이 있을 위치에 4-5개의 물표가 나타나 있어서 어느 영상이 써니힐인지 확인하지 아니하고 항로좌측경계선까지 편위되어 있는 자선의 위치도 확인하지 아니한채 자선의 속도 조절과 침로 유지에만 주의하였다.이 때에는 충돌 4분전으로 호프호는 제1항로 좌측 경계선 근방을 북상하며, 당로우측에서 출항중인 써니힐호와 충돌각도로 접근중이었음에도 선장 B는 써니힐호의 위치도 파악하지 못한채 상대선이 좌현대좌현으로 항과할 것으로 생각하고 항진하였다.이 때 2등항해사는 레이다를 수리중이었고 3등항해사는 써니힐호의 위치확인에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호프호는 우전타로 서서히 우회두하며 미속전진하던중 09시 43분경 선장 B는 선수좌현 약 5도 방향에서 써니힐호를 육안으로 확인하였으나 상대선이 좌현대좌현으로 항과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그대로 항진하다 써니힐호가 선수좌현 전방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자 충돌위험을 느끼고 극우전타를 명하였으나 09시 45분경 극미속전진(약5.3노트)속력으로 우회두하는중 선수방위 약70도일 때 전기한바와같이 써니힐호와 충돌하였다.
(3) 양 선박의 시각별 속력 및 항주거리써니힐호와 호프호의 충돌시까지의 시각별 속력과 조선상황은 다음과 같다. 코리아써니힐호 조선 상황표<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6467"></img><span style="display:none;">시각기관사용조타등선수방향대수속력유속항주시간(분-초)대수항정0937경 예선이탈240도 37:30전속전진극좌전타230도3.0000.9312-100.14842(274.87)38경( 〃 ) 202도 </span><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6469"></img><span style="display:none;">39:40정 지 5.2200.902 0-350.04892(90.60)40:15전속전진키좌현20도〃4.8440.8930-450.06316(356.76)41:00( 〃 ) 194도5.2610.8822-000.19263(116.97)43:00( 〃 ) 182도6.2970.8510-350.06235(115.47)43:35미속전진 〃6.5290.8440-150.02712(50.23)43:50정지 및전속후진극우전타〃6.4900.8411-000.09076(168.08)44:50(전속후진)( 〃 )190도4.4010.8260-100.00611(11.32)45:00( 〃 )( 〃 )180도0.0000.8230-50(-)0.00574(-10.64) </span> * 항정의( )안은 미터임 코리아 호프호 조선 상황표<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6471"></img><span style="display:none;">시각기관사용조타등선수방향대수속력유속항주시간(분-초)대수항정0859: 20미속전진회두시작209도1.8821.382 1-250.08694(161.01)0900: 45정 지 2.4351.377 0-350.02298(42.57) 01 : 20미속후진 2.2931.363 3-100.07890(146.13)04 : 30정 지 015도0.6971.332 0-150.00276(5.11)04 : 45반속전진정 침020도0.6271.330 2-050.04592(85.04)06 : 50미속전진 〃2.0181.310 5-450.28860(534.49)12 : 35반속전진 〃4.0051.246 8-000.68313(1,265.16)20 : 35미속전진 〃6.2421.150 3-10 0.33232(615.45)23 : 45극미속전진 〃6.3511.112 1-550.20205(374.19)25 : 40정 지 〃6.2291.087 1-300.14629(270.92)27 : 10극미속전진 〃5.4041.066 2-450.25137(465.54)29 : 55반속전진 〃5.5651.031 2-350.25137(466.47)32 : 30미속전진 〃6.1350.997 4-450.49360(914.15)37 : 15극미속전진좌전타〃6.3350.997 0-150.02638(48.86)37 : 30정 지 000도6.3290.931 2-300.23304(431.59)40 : 00극미속전진 〃4.9470.896 </span><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6473"></img><span style="display:none;">41 : 00( 〃 )키우현150도〃5.0600.8821-000.08339(154.44) 2-000.17150(317.62)43 : 00( 〃 )극우전타030도5.2300.851 1-50 0.16227(300.52)44 : 50( 〃 )( 〃 )070도5.3910.826 0-100.01258(23.30)45 : 00정 지 090도3.6670.823 0-150.01509(27.94) </span> * 항정의 ( )안의 미터임.
사. 양 선박의 손상정도이 충돌사고로 인하여 코리아 써니힐호는 구형선수부(선저로부터 1.7미터-5.6미터)가 폭 3미터 범위에 걸쳐 굴곡 되었고 선저로부터 6.6미터의 선수재(stem)가 세로 0.3미터×가로 0.9미터 크기로 파공 되었으며 선저로부터 14.5미터 높이의 선수 좌현 외판이 세로 4미터×가로 3미터 범위로 긁히는 등 비교적 경미한 손상을 입었으나 코리아 호프호는 좌현측 외판이 길이 27.5미터×높이 약 6미터(Fr. No. 123-157사이, 수면상 3미터 수면하 3미터) 범위로 파공 되었으며 좌현 윙 브리지(Wing Bridge)가 대파되고 좌현 구명정 데비드(Davit)가 파손되었다.
아. 유탁 오염상황이 사고로 코리아 호프호의 좌현 제2번 탱크로부터 제5번 탱크가 전기한 바와 같이 파공 됨에 따라 총 1,026.929㎘가 해상유출 되었으며 유출된 벙커C유는 조류를 타고 인근해역으로 확산되어 인천항 항만시설과 월미도, 작약도, 범섬, 영종도, 용유도 및 무의도의 해안 70.9킬로미터를 오염시켰으며 오염면적은 238,300평방미터에 이른다.
2. 원 인이 충돌사건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그 원인을 살펴본다.
가. 사고발생원인(1) 이 충돌사건은 시계가 약 500미터로 극히 제한된 가운데에 코리아 써니힐호가 계류부표에서 이안 출항하고 코리아 호프호가 동 계류부표에 계류하고자 접근 항진 하다가 발생하였는 바 충돌지점은 항로 중앙에서 약간 서쪽에 편위되어 있다.
(2) 써니힐호의 출항 후 충돌에 이르기까지의 동향을 보면 마지막 계류삭을 풀고 좌선회하며 09시 37분 경 출항하여 예정침로인 202도로 정침 전속 전진하다 09시 39분 경 전방항로를 횡단하는 예인선열을 발견하고 기관정지하고, 09시 40분 경 좌전타하여 침로 182도로 예인선열을 비껴간 때인 09시 40분 30초경 기관을 전속 전진으로 증속하였고 09시 41분경 호프호와 VHF로 통화하여 좌현대 좌현으로 항과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때의 위치를 충돌위치로부터 역산하여 보면 써니힐호는 제1항로의 서측 경계선의 약 80미터 밖에서(서측) 항로내에 들어오는 자세이었다.이 시각에 써니힐호 2등항해사는 레이다 관측으로 0.7마일 전방에 이동물표를 포착하여 보고하고 선장은 그것이 북상중인 호프호이며 좌현대 좌현으로 항과하기로 약속하였음을 확인하고 있다.09시 42분 40초경 선장 A는 호프호가 0.4마일로 접근하였다는 보고를 받았고 약 50초간 그대로 속항하였다.
이때 써니힐호의 속력은 6.2노트였다.선장 A는 09시 43분 30초경 0.3마일 전방에 접근한 호프호를 육안으로 확인하자 기관정지 - 전속후진 - 극우전타하였으나 09시 45분 경 호프호와 충돌하였다.
(3) 코리아 호프호는 발묘 후 우선회하여 09시 08분경 북상 침로인 020도로 정침하고 미속항진(6.65노트)하여 10시경에 K정유 계류부표에 도달하도록 속력을 조정 항진하였다.호프호가 북상 초기에 취한 항로는 제1항로 우측을 북상하는 정상 항로이었음에도 계류부표 남방의 서두말 천소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계류부표에 접근할 목적으로 09시 37분경 좌전타하여 3분간 항주하므로써 호프호는 항로 좌측경계선 밖에까지 편위되었고, 이때에도 선장 B는 자선의 정확한 선위를 측정하지 아니한 채 막연하게 선위가 좌편위 되었으리라는 생각으로 우전타 항진하였고 09시 41분에 VHF로 써니힐호 선장과 통화되어 서로 좌현대 좌현으로 항과하자고 합의하였으나 레이다상 선수전방에 4-5개의 물표가 나타나 어느 것이 써니힐호인지 식별하지 못한 채 우전타 속항하였다.이때 호프호는 자선 항로의 좌측 경계선(제1항로 서측 경계선) 근방에서 우전타함으로써 제1항로 서측 경계선 근방에서 예선열을 피하고 남하중인 써니힐호와 충돌각도를 이루게 되었으나 선장 B는 자선의 태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써니힐의 동향도 파악하지 못한 채 항진하다가 09시 43분 선수좌현 5도 방향 지근거리에 접근한 써니힐호를 육안으로 확인하고도 좌현대 좌현으로 항과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극우전타 하였으나 09시 45분경 충돌하였다.
(4) 이상과 같은 충돌전의 양 선박의 동향을 보면 이 충돌사건의 근본요인은 짙은 안개속에서 이 접안 작업을 강행하면서 양선 선장이 부주의한 운항을 한 점에 있다 하겠으나, 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보면, 호프호측이 정상항로를 북상하다 09시 37분 좌전타하므로써 항로의 서쪽(자선의 좌측항로) 경계선밖에까지 편위되었고 이를 교정하고자 09시 40분경 우전타하므로써 항로 서쪽(자선의 우측항로) 경계선 부근에서 예인선열을 피하면서 남하하는 써니힐호와 충돌 태세를 이루었음에도 이를 파악하지 못한 채 만연하게 북상하다 09시 43분 지근거리에 접근한 써니힐호를 육안으로 확인하고도 전속후진을 하지 아니하고 극우전타만 취한 선장 B의 농무 중의 부주의한 운항이 이 충돌의 주인을 이루고 있고, 써니힐호측이 항로 서쪽(자선의 우측항로)에서 전방의 예인선열을 좌전타로 피하였으면 곧 우전타하여 윈침로(202도)로 복귀하고 속력을 극미속으로 감속하며 전방에서 접근하는 호프호와의 충돌태세를 벗어나게 하던가, 09시 42분 40초경 호프호와 0.4마일로 접근하였다는 2등항해사의 보고를 받은 즉시 전속후진의 피항조치를 취하였으면 충돌을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선장 A는 자신의 경험과 기량만을 믿고 항진하다 약 1분 후 호프호가 0.3마일로 지근거리에 접근하였음을 육안으로 확인하고서야 전속후진과 극우전타를 명하였으나 이것은 이미 전속후진 시기를 놓친 조치로서 선장 A의 농무 중의 부주의한 운항도 이 충돌의 중요한 일인을 구성하고 있다.
(5) 항로의 우측을 항행할 것을 명하고 있는 개항질서법(제15조 제3항)규정은 양 선박이 시계내에 있거나 제한된 시계속에 있거나를 묻지 아니하고 적용되는 규정으로 특히 인천항 제1항로와 같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가항폭이 300미터에 불과하고 항로 양측에 묘박지를 지정하여 정박선이 묘박하는 항로에서는 항로 우측 항행이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프호는 09시 37분경 정상항로에서 좌전타하여 09시 40분경 항로 좌측(항로 서쪽)경계선 밖까지 편위하여 항로 좌측을 항진함으로써 위법한 항행을 하였고 이를 교정하고자 우전타함으로써 항로 우측 경계선(항로 서쪽) 근방에서 남하하는 써니힐과 충돌각도를 이루었고, 호프호선장 B는 자선의 정확한 위치도 써니힐호와의 이러한 충돌태세도 파악하지 못한 채 상대선이 좌현대 좌현으로 피항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항진을 계속하였는바 호프호 선장 B의 이러한 부주의한 운항이 이 충돌의 주인을 이루었다고 판단한다.써니힐호는 예정항로(202도)로 정침 직후 예인선열을 피하고자 좌전타하였으면 곧 원침로로 복귀하고 전방에서 접근중인 호프호와의 충돌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감속운항 하였어야 함에도 선장 A는 자신의 경험과 기량만을 믿고 전속으로 증속하여 감속시기를 놓친 채 속항함으로써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후에야 전속후진을 하였는바 써니힐호 선장 A의 이러한 경솔한 운항도 이 충돌의 일인을 이루고 있다.
(6) 예선 대동호 선장 C는 예선 해성호와 하역용 부선 2척(길이 약 120미터)을 예인하면서 계류부표에서 이안하여 출항중인 써니힐호의 선수전방을 횡단함으로써 항로 우측 경계선을 따라 남진하던 써니힐호로 하여금 좌전타 피항을 불가피하게 하였고(우현에는 미첼로 하역중이라 우전타 불능) 써니힐호의 이 좌전타 피항조치는 결국 북진 중 우전타 항진하는 호프호와 충돌침로를 이루게 하였으므로 이 충돌의 간접적 요인을 조성하였다.
(7) 자동충돌 예방보조장치의 존부와 이 충돌사건과의 관계 유무를 살펴본다.써니힐호에는 자동충돌 예방보조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호프호에는 설치되어 있지 아니하였다.써니힐호는 계류부표에서 이선 출항하면서 2대의 레이다를 작동하였으나 자동충돌 예방보조장치는 작동시키지 아니하였다. 그 이유는 레이다 정보에 의하여서도 자선의 위치와 상대선의 동향 및 주위상황의 판단 등 조선에 필요한 정보자료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을뿐더러 계류부표의 이안, 접안 등 급한 조선지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레이다나 자동충돌 예방보조장치에 의존하는 것보다 육안으로 확인하고 조선지휘 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었다.한편 호프호는 이 계기가 설비되어 있지 아니하여 2대의 레이다를 작동하다 그 중 1대가 고장되어 1대의 레이다에 의존하여 항진하였다.출항 당시에 사용한 호프호의 해도(수로국 발행NO. 0.309)를 살펴보면 C-1묘지의 출항위치, 09시 37분 좌전타 위치(이 좌전타로 인하여 항로 좌측경계선 밖에 편위되었으므로 중요한 위치임) 09시 41분 우전타 한 위치 등 이 충돌사건을 야기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위치가 기재되어 있지 아니하고 써니힐호의 위치파악 노력도 하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호프호의 선장과 항해사가 이 사고 당시 자선의 선위파악에 등한하였음을 뜻하는 것으로 무중에 레이다 1대에 의존하여 항행하는 선장으로서 매우 태만하고 부주의한 항행을 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아무리 유용한 항해 계기가 설치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선장과 항해사가 태만하고 부주의하면 소용이 없음은 당연하다.이상과 같이 이 사건에 있어서 양 선박은 자동충돌 예방보조장치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호프호는 레이다 관측조차 태만히 한 부주의한 항해를 하였고 또한 이 충돌사건은 양 선박의 선장의 해기과실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이므로 이 충돌사건과 자동충돌 예방보조장치의 설치여부와는 인과관계가 없다.(8) K정유(주) T공장이나 S저유소는 악천 후 또는 안개등의 기상요인으로 용선 사용중인 선박의 운항이 저해되는 때 하주로서 운항을 강재하는 사례는 없었다.
J유조선주식회사는 선주로서 일기불순일때에 선장에게 이 접안을 강재하는 등 본선의 안전운항을 저해하는 간섭이나 지시를 하는 일은 없었다.이 충돌사건은 양선 선장의 운항상의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하주인 K정유(주) 나 선주인 J유조선(주)은 이 충돌사건과 관계가 있다.
나. 해난관계인의 행위(1) 수심인 B수심인 B는 짙은 안개로 인하여 시계가 500미터로 극히 제한된 가운데에 계류부표에 접안하고자 항진하면서 항로 우측에 따라 항진하였어야 함에도 항로좌측 경계선 밖에까지 나가 항진하였고, 무중항해이므로 자선의 정확한 선위를 자주 측정하여 자선의 태세나 상대선(써니힐호)의 동향을 파악하였어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아니하여 태만한 항행을 하였고, 자선의 항로 좌측 편위를 알고 이를 교정하고자 우전타함으로써 약 0.7마일 전방에서 항진하는 써니힐호와 충돌태세가 되었음에도 이를 알지 못하고 만연한 항진을 계속하다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 09시 43분에 육안으로 상대선을 발견하고도 즉시 기관전속후진 등 적극적인 피항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극우전타 하였을 뿐이었다.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농무 중에 수심인 B의 이러한 태만하고 부주의한 조선은 이 충돌사건의 주된 원인을 이루었으며 이것은 수심인 B의 중대한 직무상 과실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동인의 행위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에 의거 동법 제6조 제1항 제2호를 적용하여 동인의 1급항해사 업무를 20월 정지한다.
(2) 수심인 A수심인 A는 짙은 안개로 시계가 극히 제한된 가운데 계류부표에서 이안하고 항로 우측 경계선 근방에서 출항 침로로 정침하였을 때 자선 앞을 횡단하는 예인선열을 피항하였으면 곧 원침로로 회귀하여 전방 0.7마일 거리에서 접근하는 호프호의 동향 살펴 감속운항 하였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우측 정박선(미첼호)을 충분히 지난후에 우전타하여 호프호를 피항하겠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전속전진을 하였고 양선이 접근하여 이미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 09시 43분경에 호프호를 육안으로 확인한 후에야 기관정지-전속후진을 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기관후진 시기가 늦어 결국 호프호와 충돌하였다.수심인 A의 이러한 안이한 판단과 기관의 과대한 사용(전속전진 - 정지 - 전속후진 등)은 이 충돌사건의 일인을 이루었고 이것은 수심인 A의 직무상 과실이다.
따라서 동인의 행위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에 의거 동법 제6조 제1항 제2호를 적용하여 동인의 1급항해사 업무를 10월 정지한다.
(3) 수심인 C, 동 D수심인 C는 예선 대동호 선장으로 예인선열을 선도하면서, 계류부표에서 이안, 출항하여 남진항로로 정침중인 대형 유조선을 발견하였으면 항로상의 항행선이 항과한 후 항로를 횡단하도록 예인하였어야 함에도 자선이 먼저 횡단할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으로, 항행중인 대형선의 항로전방을 횡단함으로써 써니힐호의 진로를 방해하였고, 이 방해가 이 충돌사건의 간접적요인으로 작용하였으므로 이러한 수심인 C의 행위는 예인선 선장으로서 직무상 과실이라 하겠다.
따라서 동인의 행위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에 의거 제6조 제1항 제2호를 적용하여 동인의 6급항해사 업무를 1월 정지한다. 수심인 D는 예선 해성호 선장으로 이 예인선열의 제2번 예선으로 예인에 종사 하였으나 이 예인선열의 운항 지휘권을 제1번 예인선인 대동호 선장 C가 장악하고 있었다고 보고 이는 예인선열 일체의 원칙에도 합치되므로 수심인 D는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
(4) 지정해난관계인 J유조선주식회사이 충돌사건의 선박소유자인 J유조선주식회사는 평소에 유조선의 안전관리에 상당한 주의를 하였다고 볼 수 있는 바 코리아 호프호에 자동충돌 예방보조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아니하였던 것은 사실이나 이 충돌사건은 오로지 양 선박의 선장의 해기과실에 기인한 것이므로 자동충돌 예방보조장치의 설치여부와 이 사건과는 인과관계가 없으므로 지정해난관계인 J유조선(주)는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
(5) 지정해난관계인 F동인은 (사)한국선급소속 여수주재 검사원으로 코리아 호프호의 1989년도 중간검사시에 자동충돌 예방보조장치의 설치 여부도 검사하였어야 하나, 동인의 개정선박 설비규칙에 대한 이해부족과 부주의로 이를 검사하지 아니한 것은 검사원으로서 태만이라 하겠으나 자동충돌 예방보조장치의 설치여부와 이 충돌사건과는 인과관계가 없으므로 동인의 과실을 물어 권고할 필요는 없다.
(6) 지정해난관게인 G동인은 K정유 S저유소 부소장으로 이 충돌사건과 관계가 없다.
(7) 이 충돌사건을 계기로 인천항 항로사정, 정박선사정, K정유 계류부표 위치 및 인천항 항로관제상황 등을 살펴볼 때 대형 유조선이 유류를 만재하고 인천항 최북단 율도의 경인에너지 돌핀까지 빈번하게 왕래할 수 밖에 없고 묘박지는 외항선으로 폭주하므로 S지방해운항만청은 현재의 “인천항 항만관제통신운영규정”에 의한 출입항선의 통신만 수신하는 형식적 항만관제 통신방식을 조속히 폐지하고 실질적인 항내 선박 교통관제 제도를 마련하여 인천항 “항내교통을 통제”함으로써 인천항내의 대형 충돌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할 것이므로 해난심판법 제5조의 2에 의거 S지방해운항만청에 개선사항을 통보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이 충돌사건은 농무로 시계가 극히 제한된 상태에서, 코리아 호프호측이 부표 계류차 북진하면서 농무중임에도 정확한 선위측정을 게을리 한채 항진하여 항로좌측 경계선까지 편위되어 항주한 과실 및 이편위를 교정하고자 우전타 항진하여 항로우측에서 출항중인 써니힐호와 충돌침로를 이루고 접근하면서도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만연하게 상대선이 좌현대 좌현으로 항과할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으로 항진한 과실 및 그로 인하여 급박한 충돌위험상황이 되었음에도 기관후진 시기를 놓치고 극우전타한 조선상의 과실과, 코리아 써니힐호측이 출항침로로 정침한 직후 전방항로를 횡단하는 예인선열과 마주쳐 이를 좌전타로 피항함으로써 선수전방에서 접근중인 코리아호프호와 충돌 침로를 이루게 되었음에도 충돌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우현정박선을 항과한 후 회피동작을 취한다는 안이한 판단으로 항진함으로써 기관 후진시기를 놓친 조선상의 과실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다.수심인 B의 1급항해사 업무를 20월 정지한다.수심인 A의 1급항해사 업무를 10월 정지한다.수심인 C의 6급항해사 업무를 1월 정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