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안전 특별행정심판

유조선 제1유일호, 화물선 동진호 충돌사건

핵심 요약

요지

수심인 A, 수심인 B, 수심인 C 등 해난관계인 전원과 제1심 관여조사관 전일배등 당사자 전원이 부해심 제1991-81호의 재결에 불복, 해난심판법 제58조의 규정에 의거 제2심을 청구함관여조사관 Q

이유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7021"></img><span style="display:none;"> 선 명동진호제1유일호 제9남성호 총 톤 수794.82톤1591.13톤520.30톤 기관종류, 출력디젤1,000마력 디젤1,800마력디젤 800마력 용 도화물선 유조선 유조선 선 적 항부산직할시 울산시부산직할시 진수년월1973. 8.1980. 12.1962. 12. 소 유 자J해운(주)K해운(주)D 수 심 인ABC 직 명선 장선 장선 장 면허종류3급항해사 3급항해사 4급항해사 사고일시1991년 4월 26일 22시 24분경 사고장소북위 35도 06분 16초, 동경 129도 04분 05초(부산 내항 동방파제 등대로부터 진방위 257도, 거리 약180미터의 지정항로내)</span> 동진호는 총톤수 794.82톤, 디젤기관 1000마력, 선령 약18년의 강조 연해구역취항 화물선으로 1991년 4월 26일 22시 05분경 일본국 시부시항으로 수송할 사료용 볏집 250톤을 2개의 화창과 약간의 갑판적 상태로 만재, 전부흘수 1.50미터, 후부흘수 3.80미터의 선미트림상태로 적재 하고 부산항 제4부두를 출항하였다.제4부두 제49번 선석안벽에 입항자세로 좌현 접안하고 있던 이 선박은 수심인 선장 A의 조선지휘로 부두를 후진으로 이안함과 동시 기관을 다양하게 사용, 180도 회두하여 극미속 전진으로 22시 12분경 4부두 남단을 우현 약50미터 거리로 통과하고 나서 다시 22시 14분경 지정항로인 제1항로 입구를 향하여 진침로 146도에 상응한 자침로 153도로 서서히 정침한바, 수심인 A는 이 무렵 극미속에서 약 4.5노트상당의 미속으로 증속하면서 선수우현 시계 2시방향인 영도구 봉래동소재 대선 조선소 앞에서 방파제입구 방향을 향하여 북동진 해오는 유조선 제9남성호의 좌현 홍등을 1마일 내외의 거리로 초인한데 이어 방파제 밖으로부터 지정항로인 제1항로를 따라 입항하고 있는 유조선 제1유일호의 홍등을 선수 약간 좌현측으로 초인하였으나 선수우현측의 제9남성호는 자선과는 아직 특별히 경계할만한 항법 관계에 있지 않고 선수좌현측의 입항선은 그 진행방향에서 항로우측연에 치우처 입항하고 있었으므로 자선이 항로 우측연을 따라 진행하면 전혀 위험관계가 없다고 판단되어 이 두 선박을 특별히 경계하지 아니하고 침로와 속력을 그대로 유지한채 속항하고 있다가 22시 21분경 지정항로인 제1항로 직항(直航)침로상에 이르게되자 진침로 127도에 맞추어 자침로 134도로 변침, 항로 우측연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이와같이 좌현측으로 약19도 변침하여 지정항로 출항 직항침로에 정침하고 나자 처음 시계 2시방향에 초인되었던 제9남성호는 변침직전, 일시 우현 정횡방향인 시계 3시방향에 보이다가 곧 우현정횡 후방으로 보이게 되었고 그 거리는 대략 300미터까지 접근되고 있었으나 특별히 위험한 관계로는 보이지 않았으며 방파제 밖에서 입항하고 있던 상대선 제1유일호는 여전히 선수약간 좌현 0.5마일 내외의 거리에서 그 홍등과 장등을 보이는 형태로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 수면상의 선체구조로 보아 만재상태의 유조선임을 직감할 수 있었으나 충분한 가항폭에 서로 상반되는 침로로 각각 우측연을 따라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이 선박과도 전혀 위험한 상황은 없다고 판단하고 특별한 경계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채 그대로 속항하고 있던중 잠시후인 22시 23분경 남방파제로부터 목측으로 250여미터에 이르고 있을때 선미우현측에서 따라오던 제9남성호가 갑자기 우현정횡 약40미터 거리로 접근하고 있어 당황한 나머지 (실제는 이때 제9남성호가 우현정횡 약간 후방, 가까운 거리에서 우전타함으로써 그 선미부가 킥(KICK)현상으로 좌편향되어 자선의 선수우현측에 나타나면서 이 제9남성호로 부터 주의환기 신호로 발광신호가 오자 동진호 선장 A가 당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충돌의 위험을 느끼고 폴(PORT)하고 조타수에게 소각도 좌전타를 명했다.

그러나 속력이 느렸던 탓인지 선수가 신속하게 좌회두되지 않아서 곧이어 하드폴(HARD PORT)하고 극좌전타를 명하자 선수가 좌회두되기 시작하여 급속히 돌고 있던중에 선수좌현측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입항선 제1유일호가 급속도로 접근되고 있는것을 비로소 발견하고 황급히 기관을 정지한데이어 전속역전을 걸었으나 회두타력이나 전진타력이 멈추기도전에 이날 22시 24분경 동방파제등대로부터 진방위 257도,거리 약180미터인 북위 35도 06분 16초, 동경 129도 04분 05초의 위치에서 본선 동진호 선수재 하단부가 상대선 제1유일호의 좌현 1번유조창 상단부에 양선 선수선미 교각 (동진호선미, 유일호 선수 방위교각) 약54도 각도로 충돌되었다.이와같이 충돌되자 충돌의 반동으로 본선 동진호는 우측으로 순간적으로 튕겼다가 다시 좌회두되었고 제1유일호는 우현측으로 약간 회두된채 상당한 거리에 진출된후 정지됨으로써 양선은 분리되었다.이후 본선 동진호는 상대선 제1유일호의 유조창이 손상되어 유류가 유출되고 있는 가운데 방제작업에 임하고 있는것을 보고 부근에 투묘하고 있다가 부산해운항만청으로부터 항로내에 있지 말고 방파제밖으로 이동하라는 통보를 받고 내항방파제외측 0-2 묘지로 이동하여 투묘, 대기하고 있다가 다음날 감천항 수리조선소에 상가시켰다.상가한후 손상부위를 조사한바 선수재 하단부가 지름 약2미터정도로 크게 파공되어 있었다.이에 화물선 동진호가 좁은 항로내에서 불시 대각도 좌변침하게 만들었던 제9남성호는 총톤수 520.30톤, 디젤기관 800마력, 선령 약28년의 강조, 연해구역취항 유조선으로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소재 대선조선소에서 입거수리를 마치고 1991년 4월 20일 16시경 출거하여 같은조선소앞 호안에 계류중인 서측 부선에 좌현묘를 3절정도 투하한 상태로 선미계류한채 나머지 수리작업을 완료하고 이 사고당일인 4월 26일 22시 10분경 양묘완료, 공선상태로 여수항을 향하여 출항하였다.수심인 선장 C의 조선지휘로 수리조선소를 출발한 이 선박은 양묘와 동시 극미속전진으로 출항침로를 향하여 정침한후 곧이어 22시 15분경 정속, 약5.7노트상당의 미속으로 증속하면서 지정항로진입 직전의 변침, 목표물인 계선부표 E-4를 향하였다.수심인 선장 C는 이무렵 선수좌현 25도내외되는 방향, 1500-1600여미터 거리에 4부두방면으로부터 출항하고 있는 화물선 동진호를 레이다와 육안으로 확인하였으나 이 선박에 대하여는 특별히 유의하지 않은채 침로와 속력을 그대로 유지하여 22시 20분경으로 추정될무렵 E-4 계선부표에 계류중인 대형선박을 좌현 가까운 거리로 통과하고 나서 내항방파제입구 안쪽으로 350미터까지 연하여 지정되어있는 가항폭 350미터의 제1항로입구 우측단을 향하여 거의 정동방으로 침로를 조정한바, 이와같이 침로를 조정하고나서 선수좌현측 4부두로부터 출항하고 있던 화물선 동진호는 선수좌현 약30도방향, 300여미터의 거리에 와 있었다.이때 동진호는 진침로 146도로 제1항로 출항직항 침로인 진침로 127도에의 변침점에 접어들고 있는 단계에 있었으므로 이 선박 제9남성호를 우현 정횡방향, 즉 시계 3시방향으로 보는 상태였고 여기서 동진호가 127도로 침로를 좌현으로 조정하게 되면 제9남성호를 우현정횡후 약19도 정도로 보게되어 있었는데 실제 상대선 동진호는 잠시후 22시 21분을 전후하여 진침로 127도(자침로 134도)로 변침, 제1항로 직항 출항침로를 정면으로 향하게 되었다.따라서 제1항로내의 침로로 향한 직후의 동진호측에서 보면 이 선박 제9남성호가 우현정횡후 20도내외 (정확히는 19도이나 선수 좌우진묘를 감안하면 20도 내외로 보임)로 보이게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무렵 이 두선박 다같이 정격(定格)미속이 정상 가속된 상황이었으므로 동진호는 4.5노트내외, 제9남성호는 5.7노트내외의 속력으로 양선 1.2노트상당의 속력차가 있었으므로 동진호측에서 보면 제9남성호가 자선을 추월하고 있다고 오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그러나 실제는 이 선박 제9남성호측에서 상대선 동진호의 우현등과 장등을 시인하고 있었으므로 양선은 병항(竝航)하는 상태(추월관계가 성립되려면 선미등만 볼 수 있는 상태)에 제9남성호 속력이 빠르고 양선침로교각, 약37도의 횡단하는 상태로 시시각각 그 간격이 좁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그런데도 수심인 제9남성호 선장 C는 상대선 동진호에 대하여는 특별히 유의하지 아니하고 제1항로입구 우측단에 자선이 먼저 진입하면 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침로와 속력을 그대로 유지하여 22시 23분 조금 미치지 못한 시각에 지정항로 내항측입구 우측단에 이르면서 지정항로 출항침로인 진침로 127도로 침로를 우현으로 37도상당 조정하였다.이와같이 제9남성호가 거의 정동방에서 진방위 127도에 맞추어 우변침함에 따라 선수는 우회두되고 선미는 좌현측으로 그만큼 편향(킥현상)되면서 변침하기전 자선의 선수좌현측에 보이던 상대선 동진호 선수부가 자선의 선미좌현, 40여미터이내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오게되었다.

이렇게되자 수심인 제9남성호 선장 C는 오히려 동진호측의 속력이 빨라 충돌의 위험이 있는것으로 착각하고 두차례 발광신호를 보내 주의환기신호를 하면서 이무렵 내항방파제입구를 통과하여 항내로 진입하고 있는 유조선 제1유일호를 선수좌현측으로 목격하였다.수심인 C는 곧이어 자선과 같이 출항하고 있던 동진호가 대각도 좌변침으로 자선을 완전히 비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대로 내항방파제 입구를 빠져나왔다.수심인 C는 방파제입구를 벗어나오면서 갑판상에 나와있던 선원들로부터 입항중이던 유조선과 출항선 동진호가 방파제안쪽에서 충돌되었다는 보고를 들었으나 인명피해가 없는 가벼운 사고로 단정하고 예정에 따라 그대로 출항하여 목적지 여수항까지 정상운항하였다.사고당시 부산항내 기상은 풍파가 거의 없는 평온하고 청명한 날씨에 달빛까지 있어 시정은 지극히 양호하였다.한편 제1유일호는 총톤수 1,591.13톤, 디젤기관 1800마력, 선령 약 10년의 강조, 연해구역취항 유조선으로 1991년 4월 26일 18시 26분경 방카-씨유 2,889.397킬로리터를 적재, 전부흘수 5.35미터, 후부흘수 5.85미터의 만재상태로 울산항 유공부두를 출항하여 부산항으로 향하였다.울산항을 출항한 이 선박은 평균속력 약9.6노트의 전속으로 정상운항 하여 같은날 21시 51분경 진침로 210도에서 오륙도등대를 우현 0.9마일 거리로 정횡 통과하여 서서히 우전, 부산외항 방파제 입구를 향하였다.수심인 선장 B는 이로부터 7분정도경과된 21시 58분경 부산항항계선 부근에 접근하면서 입항을 위한 기관사용준비와 동시 전원 부서배치를 명하고 곧이어 21시 59분경 8노트상당의 반속으로 감속하면서 제1지정항로입구 우현측에 설치된 2번부표를 우현 근접거리로 통과, 제1지정항로 직항 입항침로 진침로 307도로 정침하였다.수심인 B는 이때부터 레이다를 예의 주시해가면서 단계적으로 감속을 단행하여 22시 12분경 6번부표를 여전히 우현 가까운 거리로 통과하면서 4.5노트상당의 극미속으로 감속, 내항방파제입구로 향하였다.수심인 B는 이 6번부표와 방파제입구까지의 3분의 1정도에 진행하고 있을때 (22시 16분경) 거의 정선수 방향, 약1.2마일 거리에 상대선 동진호의 홍등을 초인하고 잠시동안 그 동정을 주시한바 상대선은 점차 자선의 선수좌현측으로 변화되면서 그 장등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따라서 수심인 B는 상대선이 출항하는 선박으로 대형화물선이 아니고 점차 항로우측으로 접어들고 있으므로 서로 정상적으로 항로우측을 통항하게되면 아무런 지장없이 좌현대 좌현으로 교행할 것으로 판단하고 이 선박에 대하여 특별히 경계하지 않은채 속항하여 22시 22분이 조금 경과되고 있다고 추정될 무렵 내항방파제의 동방파제끝으로부터 약80미터 거리을 유지한채 방파제입구를 통과, 내항안으로 진입하였다.

그런데 잠시후보니 선수좌현측에서 홍등과 장등만을 보이는 형태로 정상 출항하고 있던 상대선 동진호가 갑자기 좌전타한듯 홍등이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고 녹등과 장등만 보이면서 급속도로 자선쪽으로 접근되고 있는가운데 상대선 우현측에서 출항하고 있는 선박(제9남성호)이 목측되었다.그리하여 수심인 B는 황급히 기관을 정지한데이어 전속후진을 걸었으나 이날 22시 24분경 후진기관이 채 작동되기도전에 동방파제등대로부터 진방위 257도, 거리 약 180미터인 북위 35도 06분 16초, 동경 129도 04분 05초에서 전술한 바와같이 충돌되고 말았다.이 충돌로 이 선박 제1유일호의 좌현1번유조창 상단이 크게 파공됨과 동시 화물유인 방카씨유가 해상으로 쏟아저 나오고 있었다.이때 선수갑판상에는 입항준비차 1등항해사와 갑판장등 4명의 선원이 배치되어 있어 수심인 B는 이 좌현측1번유조창의 화물유를 우현3,4번유조창의 여유공간에 긴급 이송하도록 조치함과 동시 이불등으로 파공부위를 틀어막아 유류유출을 억제토록 하고 부산지방해운항만청에 사고개요를 보고한후 극미속전진으로 장소를 이동하기 시작하여 같은날 22시 30분경 동방파제등대로부터 진방위 288도, 거리 약600미터지점인 북위 35도 06분 22초, 동경 129도 03분 43초의 안전장소에 투묘하고 신속하게 오일펜스를 처 유출유의 해상확산을 방지토록 하였다.이무렵 해경정, 해운항만청 순찰선 그리고 해군함정등이 출동하여 방제작업에 합류한데이어 유공으로부터 유류바지를 보내와 우선 파공된 유조창의 유류부터 이 유류바지에 전재하기 시작하여 다음날인 4월 27일 11시경 전체 적재화물유를 모두 전재 완료하였다.이와같이 유류전재작업을 하는동안 해상에 유출되어 오일펜스안에 갇혀있던 유류는 해수와 같이 본선에 다시 흡입, 적재하였으므로 화물유전재완료와 동시 영도구 청학동소재 유공저유소앞 해상으로 전묘한 후 해상에서 수거한 유류를 전량 유공에 전송시켰다.이후 화주인 유공에서 처음 이 선박에 적재해 주었던 수량과 전체 회수량(해수혼입 유류는 정제후 검량)과 비교한바 총20,218리터가 부족하다고 통보에 왔다.

따라서 이 충돌로 인하여 약21톤의 유류가 유출되어 부산항내는 크게 오염되었다.그리고 본선 제1유일호는 좌현측 1번화창 상단부가 V자 형대로 길이 약2.0미터, 높이 약1.50미터정도 파공되어 있었다.

2. 원 인가. 사고발생원인(1) 부산항의 항로 여건등이 충돌사건 발생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하여는 먼저 부산북항(부산항이라한다)의 항로와 그 주변여건등과 선박 입출항 실태등을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부산항은 영도구 청학동과 남구 감만동 사이에 내항 방파제가 축조되어 있고 오륙도와 조도 사이에 외항방파제가 축조되어 있으며 이 외항방파제 밖으로 오륙도와 태종대 앞의 생도에 연하여 부산항 항계선이 지정되어 있어 통상 내항방파제 안쪽을 내항, 내항방파제로부터 항계선 사이를 외항이라 부르고 있다.그리고 내항방파제입구와 외항방파제입구 너비에 맞추어 가항폭 350미터의 부산항 입출항선박 항로가 지정되어 있다.

이 항로를 지정항로 또는 제1항로라 하고 그 길이는 항계선으로부터 외항방파제입구 양단과 내항방파제입구 양단을 직선으로 경유하여 내항 안쪽으로 350미터까지 연하여 있으며 이 제1항로 양측 가용수역은 모두 부산항에 입,출항하는 선박의 대기 묘박지 또는 검역묘지등으로 지정되어 있다.따라서 부산항에 입,출항하는 모든 선박은 이 지정항로를 따라 우측통항을 원칙으로 동시 교행하도록 되어 있으며(동시교행이 곤란한 초대형선의 경우는 도선사들이 승무하고 있으므로 상호 교행지점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고 있음)이 항로를 따라 부산항에 입항, 출항하는 선박은 소형은 100톤급으로부터 대형선은 6만톤에 달하는 초대형선까지 다양하며 연간 40,000여척, 하루평균 110척이상의 내,외항선박이 이 항로를 쌍방통행으로 동시 교행으로 입항, 또는 출항하고 있다 (나) 개괄적인 사고발생원인이 사건발생장소는 내항동방파제등대로부터 진방위 257도, 거리 약 180미터지점인 제1항로내로 이 장소는 입항선 제1유일호측에서 보면 항로우측연으로 3분의 1 이상 치우처있고 출항선 동진호측에서 보면 항로 좌측연으로 3분의 2이상 치우처있다.따라서 이 충돌사건은 내항 제4부두로부터 이 제1항로를 따라 정상 출항하고 있던 화물선 동진호측이 경계를 소홀히 한 나머지 자선의 우현 가까이 병항(竝航)하는 형태로 접근된 제3의 선박, 9남성호와 충돌의 위험이 있는것으로 판단하고 갑자기 극좌전타로 좁은항로에서 대각도 좌변침함로써 발생된 것이나, 같은 항로를 따라 상반되는 침로로 입항하고 있던 유조선 제1유일호측이 안전속력을 준수하지 않고 경계를 소홀히 한 탓으로 충돌회피를 위한 효과적인 피항협력동작을 취하지 못한 것도 일인이 된다.이에 같은항로를 따라 출항하고 있던 제9남성호측이 항로측면에서 대각선으로 항로내로 진입하면서 이미 항로내에 진입하여 출항하고 있는 출항선 동진호에 지나치게 접근하여 병항(竝航)한 것도 일인이 된다.다음에 각 해난관계인들의 구체적인 과실행위를 살펴본다.

나. 해난관계인의 구체적인 과실행위(1) 수심인 동진호 선장 A의 과실수심인 A는 내항 제4부두를 출항하면서 충돌 10여분전인 22시 14분을 전후하여 선수우현측인 시계 2시방향, 거리 1마일정도의 영도구 봉래동 방면에서 출항하고 있는 제9남성호를, 내항방파제밖으로부터 입항하고 있는 상대선 제1유일호를 선수 약간 좌현측, 1.5마일상당의 거리로 각각 레이다와 육안으로 초인(初認)하였으나 이 두선박은 모두 자선과는 특별히 위험한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그러나 이중 선수 좌현측으로부터 입항하고 있는 선박은 내항방파제입구 부근에서 교행하게 되더라도 항로항법에 따라 각각 우측통항을 하면 서로 150미터이상의 거리를 유지한채 자유롭게 교행할 수 있는 여건이므로 전혀 위험이 없다고 판단한데는 무리가 없었다 하겠다.그러나 선수우현측으로부터 출항하고 있던 선박은 자선과는 횡단관계로 같은 지점을 향하고 접근되고 있었으므로 특별한 주의와 경계를 할 필요가 있었다.그런데도 수심인 A는 이 선수 우현측의 출항선에 대하여도 별다른 위험이 없다고 판단, 특별한 주의와 경계를 기울이지 않은채 침로와 속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가 자선이 항로 직항출항 침로에 접어들기 위하여 좌현19도변침 (진침로 146도에서 127도로)함에 따라 우현정횡으로 보이던 상대선이 정횡 약간 후방(19도)으로 보이게 된 것을 추월선 관계로 오인하였고 잠시후 속력이 빠른 상대선이 자선의 우현정횡 전방에 이르러 자선과 항로 우측항계선 사이로 대각선으로 끼어들면서 상대선역시 항로 출항침로로 정침하기 위하여 우변침(37도내외)함에 따라 상대선의 선미부가 킥(Kick)현상으로 급격히 좌편향되면서 자선의 선수 우현측 30-40미터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나타남과 동시 상대선으로부터 두차례나 연이어 발광신호가 오자 이에 당황한 나머지 선수좌현측에서 입항하고 있던 유조선을 망각하고 좁은 항로에서 극좌전타를 단행한채 상당한 순간을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충돌에까지 이르게 한바, 이 때의 상황으로는 제9남성호의 속력이 자선보다 빨랐으므로 감속이나 기관정지 또는 15도내외의 소각도 좌변침만으로도 충분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설사 상황이 급박하여 일단 대각도 좌변침을 단행했더라도 어느정도 회두되고 있을 때 즉시 우전으로 반전시켜 대각도 좌회두를 막아주는 것이 상식에 가까운 운항술인데도 좁은 항로내에서 무려 54도이상 회두되도록 방치하고 있다가 뒤늦게 접근하는 상대선을 발견하고 이미 충돌단계에 접어든 연후에야 황급 히 기관을 정지한데이어 전속역전을 걸었으나 효과를 보지못해 충돌케 되었다.수심인 A의 이러한 조선행위는 경계소홀로 상황판단을 잘못한데 기인된 것으로 설사 이때 입항선이 없었다 하더라도 방파제부근의 좁은 항로내에서의 이러한 조선행위는 있을수 없는 것으로 하물며 만재상태의 유조선이 반대방향에서 입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목격하고서도 이러한 조치를 단행했다고 하는것은 납득할 수 없다.수심인 A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선박운항에 관한 직무상 과실이므로 해난심판법 제5조제2항의 규정에 의거, 제6조제1항제2호의 규정을 적용하여 이 사람의 3급항해사 업무를 6월 정지한다.이에 수심인 동진호 선장 A측은 이 충돌사건발생의 주된 원인이 입항선 제1유일호측이 개항질서법 제14조(사고당시는 제16조)의 규정에 정한바에 따라 방파제밖에서 대피했어야 되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는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타당성이 없는 주장이다.개항질서법 제14조의 규정에 의하면 “개항의 방파제입구 또는 입구 부근에서 출항하는 선박과 마주칠 우려가 있는 입항하는 동력선은 방파제 밖에서 출항하는 선박의 진로를 피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이 규정은 입항하는 선박, 출항하는 선박, 2척의 선박이 상단되는 침로로 방파제입구를 교행할 경우, 항법에 따라 서로 정상적으로 우측통항을 하더라도 선박이 너무 크거나 항로폭이 너무 좁아서 어느 한쪽이 다른쪽 선박의 진로를 피하지 않으면 접촉, 또는 충돌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입항하는 선박이 방파제밖에서 대피하라는 것이다.다시말하여 이 규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즉 선박의 대소에 불구하고 또한 항로의 여건이나 방파제 구조 여하에 불구하고 출항하는 선박이 있을때는 입항하는 선박은 무조건 방파제 밖에서 대피해야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동법 제14조의 규정중 “마주칠 우려” 가 있는 경우 “출항하는 선박의 진로” 를 피하라는데 유의해야 된다.위와같이 법 해석상으로도 입항선 제1유일호측에 대피의무를 과할 수 없다고 판단될뿐만 아니라 선박운항상의 이론적 측면에서도 이 사건의 경우 입항선 제1유일호는 총톤수 1,591톤에 그 너비 12.0미터, 출항선 동진호는 총톤수 795톤에 그 너비 9.30미터이고 항로폭과 방파제입구 너비는 350미터에 달한다.이러한 여건이므로 이 두선박이 서로 정상적으로 우측통항을 하게 되면 최소한 150미터이상의 충분한 거리를 유지한채 안전하고 자유롭게 교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그렇기 때문에 수심인 A 자신도 충돌 10여분전 반대방향에서 입항하고 있는 상대선을 발견하고서도 전혀 위험이 없다고 단정하고 특별히 경계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이에 설사 대피할 필요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내항방파제밖의 항로양측은 모두 묘박지로 지정되어 있거나 천소지대여서 안전하게 대피할 장소가 없을뿐만 아니라 지정된 항로내에 일단 진입하면 최소한의 속력을 유지해야 되는 선박의 특성때문에 사실상 긴급 대피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수심인 A가 이 충돌사건발생의 주된 원인을 제1유일호측 대피의무 위반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2) 수심인 제1유일호 선장 B의 과실수심인 B는 비록 최저속력인 극미속으로 감속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험물인 유류를 만재하고 야간에 좁은항로를 따라 입항하고 있었고 특히 당시는 도착목적지를 불과 1마일 미만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방파제입구를 향하면서 2척의 선박이 동시에 출항하고 있었으므로 기관정지와 극미속을 반복해서라도 겨우 타효만을 유지할 수 있을정도의 보다 안전한 속력으로 서행하면서 상호 완전 교행될때까지 주의를 집중해야 됨에도 평속 4.8노트(6번부표로부터 사고지점의 평균속력) 상당의 과도한 속력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경계마저 소홀히하여 진로 좌현측에서 출항하고 있던 두 선박의 동정을 조기에 파악하지 못하여 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기관 역전과 동시 투묘등으로 강한 전진타력을 잡지 못함으로써 충돌회피 내지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지 못한 과실이 있다.수심인 B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선박운항에 관한 직무상 과실로 이 사건 발생원인과 관련되므로 해난심판법 제5조제2항의 규정에 따라 제6조제1항제2호의 규정을 적용하여 이 사람의 3급항해사 업무를 4월 정지한다.수심인 B의 징계량을 정함에는 그 주의의무가 한층 더 강력히 요구되는 만재상태의 유조선 선장임을 감안한다.

(3) 수심인 제9남성호 C의 과실수심인 C는 이 충돌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중대한 원인을 제공한자로, 수심인 C 역시 출항한 잠시후부터 선수좌현측 4부두 방향으로부터 출항하고 있던 화물선 동진호를 충분한 시간과 거리의 여유를 두고 확인하고 이를 계속 주시하여 내항방파제 입구를 향하고 있었고 시시각각 이 동진호와는 횡단관계로 접근되고 있었으므로 보다 안전한 속력으로 서행하면서 그 접근상황을 예의 주시하여 위험한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적절히 대처했어야 됨에도 단순히 어느쪽에서나 항로에 먼저 진입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5.7노트이상의 과도한 속력을 유지한채 무리하게 항로에 진입함으로써 상대선 동진호로 하여금 좁은 항로에서 극좌전타 하게한바,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개항질서법상, 항로밖에서 항로내로 진입하는 선박은 미리 항로내에 진입하여 항행하고 있는 선박의 진로를 피해야 되도록 되어 있고(제13조제1항) 항로안에서는 나란히 항행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13조 제2항) 기히 지정항로 출항, 직항침로에 들어서 진행하고 있는 동진호를 향하여 그 선미 우현측으로부터 대각선으로 접근하면서 동진호와 같은 직항 침로를 잡기 위하여 우전타하여 지나치게 접근한 병항형태를 취함과 동시 급속히 발광신호까지 보내 상대선으로 하여금 당황하여 극좌전타하게 만든 것이다.수심인 C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개항질서법이나 해상교통예방규칙상의 항법에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이 사건발생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게하였으므로 해난심판법 제5제2항의 규정에 따라 제6조제1항제2호의 규정을 적용, 이 사람의 4급항해사 업무를 2월 정지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다만, 항해항법 적용과 방파제 입구 항법에 관한 재결 이유와 다른 소수의견이 있었다.

주문

이 충돌사건은 부산내항으로부터 지정항로인 제1항로를 따라 출항하고 있던 화물선 동진호측이 갑자기 극좌전타로 대각도 좌회두함으로써 발생된 것이나 같은 항로를 따라 내항방파제안으로 입항하고 있던 유조선 제1유일호측이 안전속력을 준수치 않고 경계를 소홀히 하여 효과적인 피항협력동작을 취하지 못한 것도 일인이 된다역시 같은 항로를 따라 출항하고 있던 유조선 제9남성호측이 항로측면에서 대각선으로 항로내로 진입하면서 이미 항로내에 진입하여 출항하고 있는 화물선 동진호에 너무 가까운 거리로 접근한채 병항(竝航) 한 것도 일인이 된다수심인 A의 3급항해사 업무를 6월 정지한다.수심인 B의 3급항해사 업무를 4월 정지한다.수심인 C의 4급항해사 업무를 2월 정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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