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안전 특별행정심판

유조선 제1유일호 침몰사건

핵심 요약

요지

지정해난관계인 B가 부해심 제96-50호 재결에 불복, 해난심판법 제58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2심을 청구한 사건임.관여조사관 Q

이유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7217"></img><span style="display:none;"> 선 명제1유일호 선 적 항울산시 선박소유자J해운(주) 총 톤 수1,591.13톤</span><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7219"></img><span style="display:none;"> 기관종류, 출력디젤기관 1,800마력 진수년월1980. 12. 선 질강 용 도유조선 수 심 인A B 직 명선 장 선진202호 항해사 면허종류3급항해사3급항해사 지정해난관계인 C 직 명 창원함 함장 사고일시1995년 9월 21일 11시 50분경 사고장소북위 34도 54분 37초, 동경 128도 58분 29초(남형제도 북동방 약 1.8마일 해상)</span> 제1유일호는 총톤수 1,591.13톤, 디젤기관 1,800마력, 선령 약 15년의 강조 유조선으로 1995년 9월 20일 23시 40분경 벙커씨유 2,870K/L(중량 약 2,669톤)를 적재, 전.후부흘수 5.30미터 정도의 만재상태로 울산항을 출항하여 광양항으로 향하였다.수심인 선장 A의 조선지휘로 울산항을 출항한 이 선박은 다음날인 9월 21일 00시 30분경 8.6노트 상당의 전속으로 울산항 항계선을 벗어나며 2등항해사 D에게 항해당직을 인계하고 선장 A는 조타실을 떠나 자신의 침실로 내려가 휴식에 들어가고 이때부터 2등항해사 D이 항해당직을 전담, 예정항로를 따라 속항하여 같은 날 03시 32분경 태종대등대를 우현 약 2마일 거리로 통과하면서 진침로 225도로 변침한 바 수심인 D는 이 때 해도상에 태종대 변침점으로부터의 다음 침로가 228도로 표시되어 있는데도 선위를 확인하니 예정침로에서 약간 우현측으로 나타나자 3도의 풍압차를 가감, 진침로 225도에 맞추어 자이로 침로 225도로 변침, 속항하고 있다가 잠시 후인 03시 45분경 다음 당직자 1등항해사 E에게 항해당직을 인계하였다.수심인 1등항해사 E는 이 날 03시 40분경 조타수 김재돌과 같이 승교하여 5분여 동안 침로와 속력 및 주변상황파악 등 당직준비를 마친데 이어 03시 45분경부터 항해당직을 전담하기 시작하였다.수심인 E는 이 때 해도에 침로가 진침로 228도로 그어져 있었고 이 침로를 정확히 따라 진행할 경우 남북형제도를 좌우 대각선으로 지나게 되어 우현측으로는 북형제도를 0.6-0.7마일 거리로, 좌현측으로는 남형제도를 0.5마일 내외의 거리로 지나게 되어 있고 만일 자이로 콤파스에 오차가 있거나 풍압차에 오차가 있을 경우 해도에 표시된 원침로 자체에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이제 당시의 시침로인 자이로침로 225도는 남형제도 북안을 정면으로 향하는 침로였음에도 단순히 전 당직자가 측정, 해도에 표시한 선위를 확인해 보았을 뿐 자신이 직접 선위를 측정해 보지도 아니하고 막연히 육감에 의존한 채 8.6노트 상당의 전속에 자이로 침로 225도를 그대로 유지, 속항하고 있었다.수심인 E는 일기 청명하여 시정도 정상이고 레이다까지 작동하고 있으면서도 1시간 이상이 경과하는 동안 단 한번도 선위를 측정해 보거나 그렇다고 경계를 철저히 하지도 않은 채 막연히 속항하고 있다가 이날 04시 54분경으로 추정될 무렵 진로전방 약 300미터 거리에 거무스레한 작은 점이 나타나자 비로소 남북형제도 부근에 이른 것을 직감하고 침로를 225도에서 245도로 변침, 잠시 진행하고 있는 동안 선수선저부가 수중암초에 접촉되는 듯 쿵하는 충격이 있어 황급히 극우전타 했으나 곧이어 04시 55분경 선수가 우회두 되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선미좌현측에서 쿵하는 강한 충격이 따르며 선체 진행이 멈췄다.수심인 E는 이 때야 좌초임을 직감하고 기관을 정지시켰다.이 때 조타실 바로 아래층 자신의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던 수심인 선장 A가 즉시 승교하여 확인해 보니 남형제도 북안의 남북으로 연해 있는 작은 돌섬의 수중암초에 선미좌현측이 좌초되어 있었고 선수방위는 진방위 10도 내외였다.그리하여 기관을 시동하여 몇차례 전후진을 반복하며 이초를 시도해 보았으나 잘 되지 않아 곧 중단하고 전원 비상소집을 하여 침수상황 및 유류 유출여부를 조사시키는 한편 부산해운항만청 관제실(이하 “항무부산” 이라함)을 불러 좌초사실을 통보, 관계기관에 연락하여 구조에 임해 주도록 부탁함과 동시 화물유 이적용 유류부선과 고출력 예인선을 긴급 수배해 주도록 요청하고 곧이어 선사측에도 같은 요청을 했다.이에 따라 항무부산에서는 지체없이 부산해양경찰서와 제3함대 사령부에 이 사실을 통보, 구조에 임해주도록 요청하는 한편 고출력 예인선을 수배한 결과 사고현장에서 가까운 거리인 감천항에 예인선 선진202호(총톤수 153톤, 디젤기관 1,300마력 × 2기, 이하 선진호라 함)가 대기중에 있음을 확인하고 이 선박이 긴급 출동해 주도록 요청하였다.항무부산의 출동요청을 받은 선진호는 당시 선장과 기관장이 상륙하여 부재중이었으나 3급항해사 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항해사 B와 기관사 F 등 선원 3명이 재선중에 있었으므로 항무부산의 긴급출동 요청을 곧 해운항만청의 지시로 받아들이고 항해사 B의 조선지휘로 05시 51분경 감천항을 출항하여 같은 날 07시 25분경 남형제도 사고현장에 도착하였다.선진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제1유일호는 좌초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선수부는 좌우 상하로 동요되고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선진호가 도착되자 수심인 선장 A는 선진호측에 선체 선수부가 동요되어 좌현측 암반에 접촉되고 있으니 선수우현측에 예인삭을 잡아 우현측으로 적당히 잡아당겨 장력을 유지해 달라고 부탁하였고 선진호 항해사 B는 07시 30분경 선장의 요청대로 선수에 예인삭을 연결하여 70여미터 길이로 거의 우현 직각 방향으로 가볍게 끌었다.

그러자 선체가 우회두와 동시 약 2-3미터 정도 가볍게 딸려나오는 듯 했다. 그리하여 수심인 A가 선진호측에 장력을 늦춰주도록 요청하였고 이에따라 선진호측에서 예인삭의 장력을 늦춰주자 좌초선은 북동방향의 풍파의 영향으로 다시 원위치에 정지되었다.이 무렵 좌초선 제1유일호는 기관실 하부와 좌현측 4번 유조창 선저부가 파공된 듯 기관실 내부로 해수가 침투되고 소량의 유류가 유출되면서 수면위로 확산되고 있었고 침수와 유류유출 정도는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따라서 선내에 비치된 오일펜스를 선체주변에 응급 설치했으나 풍파가 거칠어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이 무렵 인근에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해양경찰청소속 제1005호 경비정 등에서 확성기를 사용하여 선원들에게 구명동의를 입고 유조창 등의 공기공(Air Vent)을 폐쇄하도록 통보해옴에 따라 선원 12명 모두 구명동의를 입고 선장과 2등항해사 겸 통신장은 교대로 선교에서 육상과 구조선 등 외부와의 교신을 맡고 다른 선원들은 유조창의 공기공을 폐쇄시키는 등 피해확산방지 작업에 주력하고 있었으나 기관실 등의 침수는 가속되면서 선체 침하도 계속되고 있었다.그 동안 부산소재 선주측에서는 구난업체인 K살베지사측과 협의, 화물유 이적용 유류부선과 예인선을 수배하는 등 구조대책을 강구하는 한편 좌초중인 제1유일호에는 구조팀이 도착할때까지 절대로 이초시키지 말고 현상을 유지하고 있도록 통보(07시 40분경 통보)해 놓고 이날 08시 16분경 2,400톤급 유조부선 천유호가 수배되자 우선 이 사실을 사고선에 알려주고 계속 예인선을 수배하여 이날 09시 30분경 이들 예.부선의 출발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즉시 이 사실도 알려준 다음 선주측 대표, 구난업체 K살베지사 대표 및 잠수부 등 구조팀 일행은 구조 예인선 진일호에 승선, 09시 40분경 부산항을 출항하면서 역시 좌초선에 대하여 구조팀의 출발 사실과 가능하면 선수에 닻을 놓고 움직이지 말 것 등 응급조치 요령까지 다시한번 강조하였다.한편 해군소속 구난함인 창원함(배수톤수 1,800톤, 예인장비완비, 150톤급 인양장비 2대 구비)은 같은 날 07시 40분경 작전사령부의 출동지시를 받고 진해항을 출항하여 10시 00분경 남형제도 사고현장 부근에 도착하면서 좌초선 제1유일호와 교신, 그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제1유일호는 벌써 기관실내 90%정도가 침수된 채 침수.침하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창원함에서는 이 좌초선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해 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으므로 VHF로 선박상태를 확인하면서 “지금 이초시키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니 수심인 선장 A는 “이미 기관실내 90%정도가 침수되고 있어 이초시키면 침몰위험이 있으니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그러나 창원함 함장 C는 제1유일호의 선수부에 예인삭을 잡고 있는 선진호에게 “좌초선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고 묻고 이에 선진호 항해사 B가 “끌어낼 수는 있으나 끌어내면 침몰될 것 같다”고 하니 다시 “500야드정도 끌어내는데 몇분이 소요되겠느냐”고 묻고 선진호측에서 “5-10분정도 소요될 것 같다”고 하자 다시 제1유일호측에 톤수와 길이 등 선박제원을 확인한 다음 “지금도 계속 침몰되고 있는데 지금 그대로 있으면 암반에 접촉, 파공이 확대되어 오염피해가 확산될 것 같으니 이초시켜 창원함이 옆에 차면 침몰을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며 이초를 권유하자 마침내 제1유일호측에서도 “그러면 그렇게 해 봅시다”하고 동의하였다.

이에 이와 같은 교신내용을 듣고 있던 선진호측에서 제1유일호측에 최종확인한 바 500야드만 끌어내 달라고 하여 10시 50분경 마침내 가변핏치인 스크류 각도를 45도로 미속전진한데 이어 90도로 변경하자 좌초선은 원위치로부터 그대로 딸려나왔다. 사실은 이 때 제1유일호는 암반위에 완전히 좌초되어 있지 않고 단순히 암반의 가장자리에 기대인 채 부상, 유동상태에 있었기 때문데 간단히 딸려나왔던 것 같다. 이렇게 하여 선진호에서 약 500야드 끌고나와 창원함의 좌현측에 접현 시키려 했으나 선미부가 잘 붙지 않아 이날 10시 20분경 부근에 와있던 M중공업(주) 소속 예인선 옥포3호로 하여금 제1유일호 선미좌현측을 밀게하여 11시 00분경 창원함의 좌현에 붙게 되자 함수와 함미에 수개의 계류삭을 잡아 밀착 계류시키고 이때부터 창원함이 부산 감천항 방향으로 예인하기 시작하였다.이 때 제1유일호는 이미 선미부 갑판은 물론 선체중앙부 갑판선까지 수면하에 거의 잠길 정도로 침하되고 있었다.이러한 상태로 창원함이 20여분 동안 예인해 보았으나 풍파로 인하여 두 선박의 접촉이 심하고 함미 계류삭이 절단되는 등 더 이상 예인이 불가하게 되자 11시 20분경 창원함에서 선진호에게 다시 예인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 요청에 따라 선진호가 제1유일호 선수에 다시 예인삭을 잡아 11시 30분경부터 후진상태로 예인을 계속하고 창원함은 나머지 계류삭을 절단, 제1유일호로부터 이탈하였다.

그러나 11시 40분경부터 제1유일호의 선미부가 급격히 침하되고 있어 선미부 갑판상에 있던 선원 8명은 인근에 있던 다른 예인선 진일호에 의하여 긴급 구조되고 잠시 후 선미부가 완전 침하되어 선수부 3미터 정도만 노출된 채 선체는 직립상태가 되었다.이 때 선수부에 있던 선장 A 등 선원 4명은 우선 물에 뛰어 들었다가 해경정에 의하여 모두 구조되고 예인선 선진호도 신속하게 예인삭을 절단하고 이탈하였다.이후 이 선박은 선수 끝부분만 노출된 채 떠 있다가 같은 날 16시경 남형제도 북동방 약 1.8마일 해상인 북위 34도 54분 37초, 동경 128도 58분 29초의 위치에 완전 침몰되었다.이 선박은 1980년 12월 진수된 선령 약 15년의 강조유조선으로 총톤수 1,591.13톤, 길이 74.75m×너비 12.00m×깊이 6.10m이며 만재상태의 최대흘수 5.316m, 재화중량톤수 2,727.93톤, 액체화물적재용적 3,501㎥로 만재시의 배수량은 약 3,632톤이다.또한 이 선박은 선수 최전단으로부터 선수수창(72.13㎥), 디프탱크(152.60㎥)에 이어 좌.우현 각 4개창 등 모두 8개의 화물유조창(각창 용적 411.70-451.60㎥)이 설비되어 있는 단저구조선으로 사고당시는 이들 각 유조창에 총 2,870K/L(중량 약 2,669톤)의 벙커씨유를 분적(290K/L-390K/L), 전.후부 평균흘수 5.30m정도였으며 좌초시 파공된 것으로 알려진 좌현 제4번 창에는 약 390K/L 벙커씨유가 적재되어 있었다.이 밖에 주요 적재물로는 연료유 약 20톤, 청수 약 20톤이 적재되어 있었다.따라서 정확한 수량과 피해정도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좌초시부터 침몰 이후 상당기간 동안 이 선박으로부터 좌현 제4번창 화물유와 연료유 일부가 유출되어 주변해역을 크게 오염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좌초장소인 남형제도는 북형제도 남남서쪽 약 2.5마일 거리에 위치한 돌섬으로 높이 25m의 3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주위는 험준하며 이 섬의 북안에는 남북방향으로 2개의 작은 바위가 있고 그 서쪽으로는 초맥이 널리 퍼져 있어 위험한 수역이다.

또한 남북형제도는 한국해군과 해경에서 수시로 사격훈련을 실시하는 구역이다.이 선박은 이 남형제도의 북안에 남북으로 이어진 작은 바위의 수중암초(북위 34도 53분 01초, 동경 128도 57분 17초)에 좌초된 것이다.사고당시 현지 기상상태를 살펴보면 사고 2일전인 9월 19일 15시 00분을 기하여 관련해역인 남해동부 먼바다에 폭풍주의보가 발효되어 사고당일인 9월 21일 09시 00분에 일단 해제된 바 있으나 곧이어 다음날인 9월 22일 12시 00분을 기하여 다시 먼바다에 폭풍주의보가 발효되었다가 같은날 21시 00분에 앞바다에까지 확대됨과 동시 태풍주의보로 대치된 후 2일 후인 9월 24일 11시 00분에 해제된 바 있다.따라서 사고당시는 폭풍주의보 상태로 초속 14m내외의 북동풍이 불고 파고 1.5-2.0m정도였으나 좌초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악화되고 있었으며 태풍 라이언(RYAON)의 북상이 예보되고 있었다.또한 이 선박이 좌초된 시각은 04시 55분경으로 만조시 06시 24분경 보다 약 1시간 29분전이었으며 창원함이 예인하기 위하여 처음 좌초된 장소로부터 끌어낸 시각은 같은 날 10시 50분경으로 만조시각으로부터 약 4시간 반이 경과되고 있었으므로 수위가 만조시보다 60-70㎝정도 낮아지고 있었다.

2. 원 인이 침몰사건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항 제1호의 규정에 해당되며 발생원인은 다음과 같다.

가. 사고발생원인이 침몰사건은 당초 예정침로 자체를 남형제도와 북형제도 사이 좁은 수역을 대각선으로 지나도록 위험하게 선정한데다 실제 운항에 들어가서는 이에 불필요한 풍압차까지 가감하여 좌초 장소인 남형제도 북안의 작은 돌섬을 향하여 직진하도록 항해하면서 선위도 확인하지 아니하고 경계마저 태만히 하여 좌초케 하였고 좌초장소가 경사진 사면으로 선체가 안정적으로 좌초되지 못한 상태에 좌초시 단저 구조인 선수미 선저외판이 크게 파공되어 과도히 침수됨으로써 발생된 것이다.

나. 해난관계인의 행위(1) 수심인 선장 A는 위험물인 유류를 만재하고 야간에 연안항해를 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당연히 안전항로를 선정함은 물론 안전운항이 확보되도록 운항감독을 철저히 해야됨에도 처음 예정침로를 선정함에 있어 그 남북으로 아무런 제약없이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는 넓은 수역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등대도 없는 작은 돌섬으로 되어 있고 이 사이를 대각선으로 비스듬이 지날 경우 불과 0.5마일 내외의 가까운 거리로 지나게 되어 있는 남북형제도 사이로 예정침로 자체를 위험하게 선정함으로써 당직항해사가 이 예정침로에 3도의 풍압차까지 주어 좌초장소인 돌섬을 향하여 직진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당직자들이 선위도 확인해 보지 아니하고 경계마저 태만히 한 채 진로전방의 돌섬을 향하여 직진, 좌초케 하였다는 것은 평상시 위험물을 운반하는 유조선인 이 선박의 운항상태를 짐작케 하는 것으로 결코 책임있는 선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것으로 볼 수 없다.다만 좌초 이후의 조치에 있어서는 정확한 손상부위, 손상정도 및 침수정도를 파악하지 못함은 물론 좌초상태조차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침몰을 지연시킬 수 있는 응급조치를 강구해 보는 등 보다 침착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점 등은 인정되나 이 때는 이미 단저구조선인데다 좌초 초기 선수미 선저 외판이 크게 손상되어 선내침수가 과다한 반면 선체가 암반에 안정적으로 고정상태로 좌초되지 아니하고 암반의 가장자리 경사면을 따라 시시각각 침하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상상태마저 태풍의 북상이 예보되어 있는 가운데 악화일로에 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 선박이 침몰에 이르게 된 것은 거의 불가항력적 상황이 아니었나 인정된다.

따라서 좌초 이후의 상황에 대하여는 사실상 불가항력적이었다고 인정되고 침로선정 잘못 등 좌초에 이르기까지의 선박운항에 관한 직무상 과실에 대하여는 1등항해사 E와 같이 동일 사건이면서도 별개의 사건으로 청구된 이 선박 좌초사건과 관련하여 적정한 징계를 하였으므로 이 사건에서는 징계하지 않는다.

(2) 지정해난관계인 C는 구조 지원차 출동한 해구 군난함 창원함 함장으로 당시 좌초선 부근에는 이미 제1005호 경비정을 비롯 여러척의 해양경찰청소속 경비정들이 도착해 있었으므로 당연히 해양경찰청의 구조계획과 의견을 확인한 다음 필요한 지원과 구조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정상이고 순서임에도 단순히 이들 경비정과 직접 교신이 불가하다는 이유만으로 좌초선과 전문가도 아닌 민간 예인선들과 협의하며 마치 창원함이 구조임무를 주도하듯이 전면에 나선것도 납득할 수 없으며 비록 기상상태가 태풍의 북상이 예보되고 있는 가운데 더욱 악화되고 있었고 좌초선은 구조작업이 전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시시각각 침하, 침몰되고 있어 그대로 방치될 경우 암반에 파선되어 오염피해가 크게 확산될 것으로 보여 최후수단으로 예인을 시도해 보았다는 점은 참작되나 좌초선은 정상상태의 배수량만 하더라도 3,632톤이 넘는 상태에 침수가 과다하여 이미 갑판선까지 수면에 잠길 정도로 침하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배수량 1,800톤에 불과한 창원함에 계류, 예인해 보겠다는 시도는 자함의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는 행위로 한마디로 무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또한 지정해난관계인 C는 비록 자신의 주장대로 이 선박을 구조해야 될 책임있는 위치에 있지도 아니하고 지시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하더라도 군에 대한 위상과 권위를 신뢰하고 있는 민간인으로서는 마치 지시 명령이라도 받은양 오인할 수 있도록 구조임무를 주도하듯 애매한 태도를 취한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이 사람의 일련의 행위는 오로지 오염피해를 최소화해야 된다는 순수한 군인정신에 따른 것으로 단순히 침몰중에 있는 선박을 당해 선장의 동의하에 그 장소를 이동시킨데 불과하다고 인정되며 침몰장소의 이동에 따른 피해의 경중은 가늠하기 어려움으로 권고할 수 없다.

(3) 수심인 B는 예인선 선진202호의 항해사로 감독관청인 해운항만청의 긴급 출동 요청을 받고 좌초선의 구조에 협력하기 위하여 사고현장에 임하여 좌초선 선장의 요청과 창원함의 요청에 따라 협력한 것 뿐이므로 비록 좌초선을 창원함이 예인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침몰중에 있는 선박을 최후로 예인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의에 의한 것도 아니며 이 사건 원인과도 무관하다. 따라서 이 사람의 행위는 징계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주문

이 침몰사건은 당초 예정침로 자체를 남형제도와 북형제도 사이 좁은 수역을 대각선으로 지나도록 위험하게 선정한데다 실제 운항중에는 이 예정침로에 불필요한 풍압차까지 가감하여 좌초장소인 남형제도 북안의 작은 돌섬을 향하여 직진하도록 항해하면서 선위확인도 하지 않고 경계마저 태만히 하여 좌초케 하였고 좌초시 단저구조인 선저외판이 크게 파공되어 많은 양의 해수가 유입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출처: 국가법령정보 공동활용(law.go.kr) 공개 결정문·재결례. 원문은 발행 기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본 문서는 참고용이며 법적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