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요지해난심판법 제38조의 규정에 의하여 심판청구한 사건임.관여조사관 Q
해난심판법 제38조의 규정에 의하여 심판청구한 사건임.관여조사관 Q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62597"></img><span style="display:none;"> 선 명범일호경북호 총 톤 수6,589.00톤191.00톤 기관종류, 출력디젤기관 5400마력디젤기관 650마력 진수년월1970. 10.1977. 12. 선 질강강</span><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62599"></img><span style="display:none;"> 용 도유조선화물선 선 적 항부산직할시충무시 선박소유자J유조선(주)C 수 심 인AB 직 명선 장1등항해사 면허종류1급항해사5급항해사 지정해난관계인 C 직 명 소유자 사고일시1994년 1월 23일 05시 30분경 사고장소북위 34도 15분 51초, 동경 126도 31분 42초 (개위, 흑일도 서남단으로부터 남서방 약 0.9마일 해상)</span> 범일호는 총톤수 6,589톤, 디젤기관 5400마력의 강조 연해구역 취항 유조선으로 1994년 1월 22일 06시 30분경 방카-C유 62,000배럴(약 9,877K/L)을 적재, 선수흘수 7.10미터, 선미흘수 8.40미터의 만재 상태로 인천항 경인에너지 부두를 이안하여 부산항으로 향하였다.인천항을 출항한 이 선박은 평균항해속력 11노트 내외의 전속으로 칠발도, 경치수도, 장죽수도를 예정대로 정상 경유하여 다음 날인 1월 23일 04시 25분경 진도 동남안의 구자도 등대를 좌현 약 1.0마일로 정횡하여 진침로 087도에서 다음 침로인 어룡도 등대 북안을 향하여 091도로 변침하였다.수심인 1등항해사 B는 이 선박이 구자도 등대를 통과하기 약 45분전인 03시 40분경 승교하여 5분여 동안 당직준비를 한데이어 03시 45분경부터 2등항해사 D로부터 당직을 인수받아 조타수 E와 같이 선교 당직에 임하였다.수심인 B는 약간의 순조를 받는 상황에서 11.2노트 내외의 전속을 그대로 유지, 속항하여 같은 날 04시 25분경 진침로 087도에서 구자도 등대를 좌현 약 1.0마일 거리로 정횡하면서 다음 변침점인 어륭도 등대 북안을 향하여 091도로 변침하였다.조타수 E로 하여금 손으로 키를 잡게 하고 수심인 B 자신은 레이다를 3마일과 6마일 레인지 스케일로 사용해 가며 경계를 하고 있던 중 04시 55분경으로 추정될 무렵 어룡도로부터 약 3마일 거리에 이르고 있을 때 흑일도 서방에서 3000톤급으로 보이는 유조선 1척이 북서진하여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선박과 통화하기 위하여 VHF로 수회 호출해 보았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대로 항주하여 05시 10분 조금 미치지 못한 이 선박과 좌현대 좌현으로 교행하고 나서 곧 05시 10분경 어륭도 등대를 우현 약 1.0마일 거리로 정횡하면서 횡간수도에 이르는 다음 침로인 진침로 130도로 변침하였다.이 선박은 이로부터 약 20분이 경과된 05시 30분경 충돌된 바 충돌경위에 대하여 수심인 B는 전술한 바의 3,000톤급 유조선과 좌현 대 좌현으로 교행하고 난 다음 상대선 경북호를 선수좌현 30-40도 방향에 그 녹등을 확인하고 발광신호를 계속 보냈으나 상대방위의 변화없이 여전히 녹등을 보이며 접근되고 있어 충돌 3분전인 05시 27분경 105도로 우변침했다가 다시 130도까지 변침했으나 상대선이 자선의 진로를 가로질러 들어옴으로써 05시 30분경 충돌되었다고 진술(조사관 질문조서)했다가 다시 심리과정에서는 이를 번복, 상대선이 자선의 진로를 횡단하여 우전함으로써 자선도 이를 피하기 위하여 우전타했음에도 05시 10분경 충돌되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마지막 심리과정에서는 이것마저 번복하고 05시 08분 내지 09분경 어륭도의 변침점에 약 0.3마일 미치지 못한 위치에서 충돌되었다고 주장하는 등, 신뢰성도 합리성도 없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그러나 실제 상황은 이와 전혀 다르다.
실제 이 선박은 05시 10분경 어룡도 등대에서 변침하기 약 15분전인 04시 55분경 그러니까 수심인 B가 제3의 선박 3,000톤급 유조선을 초인할 무렵 상대선 경북호는 이 선박 범일호 선수 좌현 약 22도 방향, 거리 약 2.2마일 정도에 이르고 있었고 이때 경북호는 이미 진침로 130도에 상응한 침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선박 범일호측에서는 상대선 경북호의 선미등만 볼 수 있는 여건이었다.따라서 이 두 선박은 이때 벌써 추월선과 피추월선 관계로 접어 들고 있었다.다만, 이 무렵에는 경북호의 보침상태 여하에 따라 간혹 그 우현 녹등과 장등도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추월선 관계로 보기에는 의문의 여지도 있을 수 있었으나 05시 00분 이후부터는 상대선이 선수 좌현 12도 이내의 방향으로 변화된 채 시시각각 선수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완전한 추월 형태를 이루다가 05시 10분경 이 선박이 어룡도 등대를 우현 약 1.0마일로 정횡하여 130도로 변침을 단행했을 때는 완전히 동일 침로상의 추월관계로 변화되었고 초기 양선의 거리는 약 0.85마일 정도였다.다만, 이때 상대선 경북호는 동일 침로이기는 했으나 이 선박의 선수 약간 좌현측에서 진행하고 있었고 양선의 속력차는 3.0-3.5노트 정도였다.상황이 이러한데도 수심인 범일호 당직항해사 B는 어룡도 등대에서 변침하기 이전에는 제3의 선박 3000톤급 유조선과의 교행에만 주의력을 집중한 나머지 상대선 경북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그 관계를 간과하고 있었고, 어룡도 등대 북방 약 1.0마일 거리에서 130도로 변침한 이후에는 반대방향에서 접근하고 있는 또 다른 제3의 선박 1000톤급의 유조선에만 주의력을 집중한 채 침로와 속력을 그대로 유지, 속항하고 있던 중 같은 날 05시 30분경 흑일도 남서방 약 0.9마일 거리인 북위 34도 15분 51초, 동경 126도 31분 42초(개위)에 이르러 앞서가던 경북호가 반대방향에서 접근해 오는 전기의 1000톤급 유조선을 피하기 위하여 우전, 그 녹등을 보이면서 자선의 진로 전방 가까이 접근되자 이를 피하기 위하여 급히 우전타했으나 결국 충돌케 된 것으로 판단된다.처음에는 범일호의 정선수 좌현측이 경북호 선미우현 기관실 전단에 예각으로 접촉되자 상호작용과 접촉의 반동으로 경북호 선수가 급우선회되면서 양선 선미교각 60도 이상의 대각도 다시 강하게 충돌되었다.충돌시 범일호는 만재상태에 11노트 이상의 전속인데다 60도 이상의 큰 교각을 이룬 채 측면으로 충돌되었을 뿐만 아니라 범일호의 선수재가 구형 형태로 되어 있어 상대선 경북호의 우현 수면하 만복부위에 접촉되어 크게 파공됨과 동시 경북호는 순간적으로 좌현측으로 전복되었다.이와 같이 충돌되었음에도 수심인 B는 충돌 사실을 반신반의하며 기관을 정지하지도 아니하고 일시 우전타했던 침로를 곧 원침로로 복귀하면서 선장을 부르게 하고 2-3분여만에 선장이 승교하자 “선수좌현측에 소형어선 1척이 녹등을 보이며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 녹등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충돌되었는지도 모르겠다”하고 애매모호하게 보고하였다.이에 수심인 선장 A는 전날 20시 00분부터 24시 00분까지의 자신의 당직을 마치고 선교갑판하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통신장의 연락을 받고 급히 승교하면서 선수좌현측으로 그 홍등을 보이며 교행하고 있는 1000톤급 유조선을 목격하고 조타실에 들어서 보니 여전히 전속 항주 상태였고, 침로는 130도 내외였다.그리하여 무슨일인가 하고 물으니 당직항해사 B가 전술한 바와 같이 애매모호하게 보고하면서 충돌되었는지도 모르니 회선하여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곧 침로를 반대방향으로 회두케 하여 탐조등을 비추며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수색해 보았으나 보이는 것이 없자 그대로 속항하여 같은 날 20시 30분경 목적지 부산항에 입항하였다.이 선박은 부산항에서 양하 완료한 다음 다시 울산항으로 이동하여 쌍용정유 A-1터미널에 계류하고 있던 중 1월 26일 야간에 K해양경찰대 소속 수사관의 추적수사를 받고야 수심인 B, A 등은 몰론 대부분의 선원들이 비로소 충돌 사실을 시인하였다.이 충돌로 이 선박은 구형선수재 정면과 좌현측이 충돌의 흔적을 알아 볼수 있을 정도로 약간 굴곡되었을 뿐 특별한 손상은 없었다.사고당시 현지 기상은 폭풍주의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초속 14미터 내외의 북서풍에 파고 1.5-2.0미터 정도의 거친 날씨였으며 시정은 다소 불량했으나 항행에는 지장이 없는 정도였다.한편, 경북호는 총톤수 191톤, 디젤기관 650마력, 선령 약 16년의 강조 모래운반 전용선으로 1994년 1월 22일 08시경 선원 7명이 승선하고 경남 통영군 욕지도를 공선으로 출항하여 같은 날 22시 20분경 시아바다 시하도 남방 약 1마일 거리에 이르러 모래채취 적재 작업을 시작하였다.이로부터 약 3시 20분 동안 적재를 계속하여 모래 약 364.5입방미터를 적재한 이 선박은 다음 날인 1월 23일 01시 40분경 작업현장을 출발하여 광양항으로 향하였다.이와 같이 현지를 출발한 이 선박은 진도수도와 마로해로를 경유하여 횡간 수도로 진입하던 중 이 충돌사고를 당하게 된바, 이 충돌 사고로 선장 등 항해당직자들이 모두 사망 또는 실종되어 구체적인 운항경위 등은 확인할 수 없으나 유일한 생존자인 증인 F의 진술에 따르면, 이 선박은 같은 날 03시경을 전후하여 벽파진 앞을 통과하여 삼마도 서안과 해남반도 서안, 진도 동안 일원의 해태양식장 사이 중앙부의 좁은 수로를 따라 남하한 후 이날 04시 35분경으로 추정될 무렵 어장 사이 좁은 수로를 다 빠져나와 어불도 서방 약 1.6마일 거리인 북위 34도 19분 57초, 동경 126도 26분 12초의 위치에 이르러 어룡도 동안을 거쳐 흑일도 서남단 변침점에 이르는 진침로 130도에 상응한 침로로 정침한 것으로 분석되고, 이 130도 침로에서 같은 날 05시 10분경 어룡도 등대를 우현 0.6마일 내외의 거리를 유지한 채 횡간수도를 향하여 남동진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이와 같이 판단하는 근거는 비록 생존자 F가 선교당직자 아닌 조기장으로 시하도 출발시간과 출발장소 등이 다소 불확실한 면이 없지 않으나 이 선박이 벽파진을 통과한 시각과 어룡도를 통과한 시간은 비교적 소상하여 신뢰성이 인정되고 항로여건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즉, 조기장 F는 1년여 동안 이 선박 경북호에 승선하여 같은 항로에 취항해 오고 있어 주요항로의 주변여건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자로 매 2시간마다 기관실에 들어가 약 7분 동안 주기와 보기를 점검, 주유하고 있었으며 이날도 03시 00분경 이와 같은 작업을 마치고 갑판상으로 나와보니 벽파진앞을 통과하고 있었고, 다시 약 2시간 후인 05시 00분경부터 약 7분 동안 기관실 내에서 같은 작업을 마치고, 05시 07분경 우현측 갑판상으로 나오니 우현측으로 어룡도 등대가 보이다가 05시 10분경 어룡도 마을 민가의 등화가 우현 정횡으로 보였다고 비교적 소상히 진술하고 있다.이에 벽파진 이후의 삼마도 부근으로부터 어룡도에 이르는 항로여건을 보면 삼마도를 중심으로 해남반도와 진도 동안 일원에는 해태양식장 등이 밀집 설치되어 있어 그 중앙부에는 좁은 곳은 300미터 내외, 넓은 곳은 500미터 내외에 불과할 정도로 양식장 사이에 좁은 수로가 형성되어 있고, 이러한 수로는 어불도 서방에 이르러 비교적 넓은 수역이 시작된다.따라서 어느 선박이나 이 수로를 따라 남하할 경우는 어불도 서방 약 1.6마일 정도에서 좀더 정확히는 북위 34도 19분 57초, 동경 126도 26분 12초 부근에서 진침로 130도에 상응한 침로로 정침하게 되어있고, 130도로 진행할 경우는 어룡도 등대를 우현 0.5-0.6마일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남동진하여 횡간수도에 이르는 흑일도 서남안의 변침점에 이르게 되어 있다.따라서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분석해 볼 때 이 선박은 7.8노트 내외의 전속으로 이날 04시 35분경 어불도 서방 약 1.6마일 지점인 북위 34도 19분 57초, 동경 126도 26분 12초 부근에 이르러 횡간수도에 이르는 직항 침로인 진침로 130도에 상응한 침로로 정침한 것으로 판단되고, 같은 침로상에서 05시 10분경 어룡도 등대를 우현 약 0.6마일 거리로 정횡 항과하여 이로부터 약 20분이 경과된 05시 30분경 흑일도 서남안에 이르면서 반대방향으로 횡간수도에서부터 우변침, 북동진하여 갑자기 접근해 오는 전술한 바의 제3의 1000톤급 유조선을 피하기 위하여 침로를 우현측으로 조정하던 중 전기와 같이 충돌된 것으로 판단된다.충돌과 동시 전복되자 기관실에 있던 조기장 F는 기관실 내에 갇히게 되고, 선장등 여타 선원들은 선외로 탈출했거나 물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으나 겨울철로 기상이 거친데다 상대선에서 정밀 수색하지도 않고 구조요청도 하지 않아 기관장 G 등 3명은 사망하고, 선장 H 등 3명은 행방불명되었다.이때 기관실에 갇혀있던 조기장 F는 이 선박이 전복된 채 북서방향으로 표류하여 어불도 남서방 약 1마일 거리에 이르고 있는 것을 같은 날 07시경 인근 주민들이 발견하고 구조에 임하여 이날 09시경 수면상에 노출되어 있는 기관실 선저외판을 절취한 다음 구조하였다.이 선박은 조기장 F를 구조하고 난 다음 선저외판의 파공으로 곧 그 자리에 침몰되었다가 약 1주 후인 11월 30일 M해양경찰서 관계관의 입회하에 인양하여 상가, 조사하여 보니 선미우현측 수면하 만곡부 외판이 범일호 구형선수재에 받힌 모양 그대로 Λ형태로 크게 파공되고 그 상부 현측외판이 크게 굴곡 또는 파열되어 있었으며 주기 및 보기, 크레인 등이 극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2. 원 인이 충돌사건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항 제1호 및 제2호의 규정에 해당되며 이건 발생 원인은 다음과 같다.
가. 사고발생원인이 충돌사건은 추월선 범일호측이 앞서가던 경북호의 침로 조정을 예측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로 추월하던 중 접근하는 제3의 선박을 피하기 위하여 우전하는 피추월선 경북호의 진로를 피하지 못하여 발생된 것이다.이에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된 것은 겨울철에 순간적으로 전복된데다 구조의무가 있는 범일호측이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는 것도 일인이 된다.
나. 해난관계인의 행위(1) 수심인 범일호 1등항해사 B는 이 선박이 어룡도등대 변침점에 3마일 이내로 접근되면서부터 벌써 상대선과의 추월선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고, 05시 10분경 어룡도등대를 우현 약 1.0마일 거리로 정횡하여 진침로 130도로 정침하면서부터는 거의 동일 침로선상의 완전한 추월관계에 자선이 상대선을 약 0.85마일 앞에 두고 3.0-3.5노트 정도의 속력차로 추월하고 있었음에도 시정이 다소 불량하여 상대선의 선미등을 식별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진로전방의 반대방향에서 접근하는 제3의 1000톤급 유조선에 주의력을 집중한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피추월선인 상대선의 동정을 크게 경계하지 않은 채 침로와 속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중 05시 30분경 상대선이 접근하는 제3의 선박을 피하기 위하여 우전하여 자선의 진로전방으로 횡단하는 자세로 들어오자 이를 예측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로 추월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피하지 못하고 충돌케 한 것이다.수심인 B는 마치 당시의 상황이 추월관계가 아니었던 것처럼 시간과 장소를 수시로 번복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어룡도 등대에서 일단 진침로 130도로 정침한 연후에 충돌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으므로 정침한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되었느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이는 일단 추월관계가 조성되고 난 연후 충돌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즉 어룡도등대 북방에서 변침직후 충돌이 발생되었다하더라도 피항의무는 전적으로 추월선인 범일호측에 있는 것이므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 항로와 같은 좁은 수로내에서 다른 선박을 추월할 경우는 피추월선의 감속 또는 변침 등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까지 감안하여 가능한한 멀리 떨어져 운항하면서 그 동정을 예의주시해야 되고 근접추월이 불가피한 상황이면 추월의 의사를 분명히 하여 그 동의를 받아야 되는 것임에도 수심인 B는 이러한 대응조치를 전혀 하지 않음은 물론 경계마저 태만히하여 충돌케 하였으며 이에 충돌이후의 조치에 있어서도 충돌장면을 직접 목격했고 설사 정확히는 목격하지 못했다 가정하더라도 중량물인 모래를 만재한 191톤급 선박을 11노트 이상의 전속으로 더욱이 60도 이상의 대각도로 충돌하였으므로 그 충격만으로도 대형 사고임을 직감할 수 있었을것임에도 즉시 기관을 정지하여 구조에 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만연히 침로와 속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선장을 불러오게 하고 선장이 선교에 왔는데도 사태를 정확히 보고하지 아니하고 “어선의 녹등이 좌현선수측으로 스치고 지나갔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 등화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충돌한 것 같다”는 등,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여 선장으로 하여금 대형사고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함으로써 형식적이고 소극적으로 대처하게 한 결과 귀중한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케 하였으며, 자신의 당직시간에 자신의 과실로 발생된 중대한 사건임에도 항해일지에 일체 기록하지 않는 등 사고 자체를 은폐하려 하였을뿐만 아니라 사고발생 수일 후 수사기관의 추적 수사 결과 충돌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충돌시각과 장소 등을 허위로 진술하는 등 불성실로 일관하고 있다.이러한 사고전후의 일련의 정황으로 볼 때 수심인 B는 해기사로서의 그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의당 면허 취소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되나 젊은 사람의 전도를 감안하여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같은 법 제6조 제1항 제2호의 규정을 적용하여 이 사람의 5급항해사 업무를 24월 정지한다.
(2) 수심인 A는 유조선 범일호의 선장으로서 비록 당직항해사가 전술한 바와 같이 사고내용을 애매모호하게 보고하였다 하더라도 조타수 E는 충돌되었다고 보고하였고, 또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중대사고임을 직감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즉시 관계기관에 신고, 구조요청 함과 동시 적극적인 수색작업에 임해야 되는 것임에도 반신반의하며 관계기관에 신고도 하지 않음은 물론 형식적으로 주변을 한번 둘러보는 정도에 그침으로써 귀중한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케 한바 이 또한 결코 가벼운 과실이라 할 수 없다.더욱이 사고 이후의 신고의무와 구조활동 의무는 전적으로 선장의 책무라 할 것인바 수심인 A의 이러한 선박운항에 관한 직무상 과실 행위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같은 법 제6조 제1항 제2호의 규정을 적용하여 이 사람의 1급항해사 업무를 15월 정지한다.
(3) 지정해난관계인 경북호 소유자 C의 행위는 이 사건원인과 무관하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이 충돌사건은 추월선인 범일호측이 앞서가던 경북호측의 침로 조정을 예측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로 추월하던 중 피추월선인 경북호의 진로를 피하지 못하여 발생된 것이다.이에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된 것은 겨울철에 순간적으로 전복된데다 범일호측이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은 것도 일인이 된다.수심인 B의 5급항해사 업무를 24월 정지한다.수심인 A의 1급항해사 업무를 15월 정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