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요지수심인 A, B 등이 인해심 제96-68호의 재결에 불복, 해난 심판법 제58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2심을 청구함. 관여조사관 Q
수심인 A, B 등이 인해심 제96-68호의 재결에 불복, 해난 심판법 제58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2심을 청구함. 관여조사관 Q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7379"></img><span style="display:none;"> 선 명팬 그레이스호메린다 리 총 톤 수15,742톤14톤급 기관종류, 출력디젤기관 7,400마력보조기관 1대 진수년월1986.61984. 선 질강G.R.P 용 도산적화물 겸 원목선 요트</span><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7381"></img><span style="display:none;"> 선 적 항인천광역시Portland, Oregon U.S.A 소 유 자J산업리스(주)(용선주 : J상선)M 수 심 인AB 직 명선 장2등항해사 면허종류1급항해사 3급항해사 사고일시1995년 11월 24일 02시 12분(추정, 뉴질랜드 현지시간) 사고장소남위 34도 48분 00초, 동경 174도 23분 48초(뉴질랜드 Cape Brett 북방 약 23마일 해상)</span> 팬 그레이스호는 J산업리수(주) 소유선이나 K상선주식회사에서 용선.운항하고 있는 총톤수 15,742톤, 디젤기관 7,400마력, 선령 약 10년의 강조화물선으로 산적화물 겸 원목운반 전용선이다.이 선박은 1995년 10월 11일 N조선소에서 간단한 정비를 마치고 출항하여 중국의 대련(Dalian)항 등을 경유, 같은 해 11월 10일 뉴질랜드의 타우랑가(Tauranga)항에 도착, 양하를 마치고 다시 뉴질랜드의 Lyttelton Dunedin과 Tauranga항등을 차례로 기항하여 원목 총25,927톤을 적재하고 같은해 11월 23일 09시 15분경 (뉴질랜드 현지시각, 이하같음)Tauranga항을 출항, 인천항으로 향하였다.수심인 선장 A 등 선원 21명이 승무하고 있는 이 선박은 갑판상 높이 8-9m에 이르도록 원목을 만재, 전부홀수 9.60미터, 후부 홀수 10.01미터를 유지한 채 현지 도선사의 도선으로 Tauranga항을 출항하여 같은날 09시 55분경 도선 구역을 빠져나와 도선사가 하선하고 잠시후인 10시 20분경 12.9노트 상당의 전속 항주에 들어갔다.풍력계급 3-4정도의 동북동풍이 불고 흐린 날씨였으나 비교적 평온한 가운데 정상 운항하여 같은날 15시 00분경 Red Mercury Is.를 좌현 약5마일 거리로 지나며 진침로 322도로 정침하고 자동조타장치에 의하여 항진하고 있던 이 선박은 같은날 16시경부터 기상이 점차 악화되기 시작하여 23시 00분경에는 풍력이 6-7정도로 강해지고 해면은 백파가 일기 시작하여 속력이 9.5노트 내외로 떨어지고 보침상태가 고르지 못하자 자동조타에서 수동조타로 전환하였다.수심인 2등항해사 B는 이날 23시 45분경 조타수 C와 같이 승교하여 10여분동안 주변상황을 파악하는 등 당직준비를 마친데 이어 곧 항해당직을 인수받아 직접 조선지휘에 들어갔다.진침로 322도로 전속항주 상태였으나 풍력이 6-7정도로 거친 날씨였으므로 대지속력 9.5노트 내외였으며 짙은 구름에 가는 비가 간헐적으로 내리고 있어 시정은 다소 불량하였고 수심인 B가 주레이다를 작동시키며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다른 선박은 보이지 않았다.이와 같은 상황에서 침로와 속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속항하고 있던중 다음날인 11월 24일 01시 55분경으로 추정될 무렵 남위 34도 48분 00초.동경 174도 23분 48초(개위)에 이르러 키를 잡고 있던 조타수 C가 선수우현측에 홍등이 하나 보인다고 수심인 B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수심인 B가 직접 확인한바 시계 1시 내지 1시 30분 방향(선수우현 30도-45도)에 홍등 하나가 희미하게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 하여 그 거리를 확인해 보려고 레이다를 6마일, 3마일, 12마일 레인지로 바꿔가며, 그리고 해면반사 제어장치(STC), 우설영향 제어장치(FTC) 등을 정밀 조정하며 관측해 보았으나 그 홍등의 물체는 레이다 스코프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수심인 B는 쌍안경과 육안으로 그 홍등을 주시한 결과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 하여 그 거리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으나 특별한 방향변화 없이 접근되고 있고 자선이 피항선의 위치라고 판단되었으며 또한 그 홍등의 불빛이 희미한 것으로 보아 충분한 거리의 여유가 있다고 판단되었으므로 상대선의 후방으로 피항할 생각으로 02시 12분경으로 추정될 무렵 조타수에게 타각 우현 10도를 명하여 서서히 우회두시켰다.
이렇게 하여 30도 내외 우회두중 곧 그 홍등이 선수부에 이르면서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수심인 B는 그 홍등의 선박이 무사히 선수부를 지나간 것으로 단정하고 선수가 50도정도 우회두되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좌현15도 전타를 명하여 원침로로 복귀를 시도하였으나 우회두 타력과 풍파의 영향으로 곧 좌회두되지 아니하고 거의 90도 가까이 우회두된 뒤에야 서서히 좌회두 되기 시작하여 약 15분후 원침로 322도에 복귀.정침할 수 있었다.
이 선박이 원침로에 다시 정침할 무렵인 02시 30분경 자신의 침실에서 기상 변화 추이에 유의하고 있던 수심인 선장 A가 선체가 갑자기 10도 내외로 서너차례 경사됨을 느끼고 기상이 악화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추측하고 곧 승교하여 풍파를 정횡으로 받지 않도록 침로를 322도에서 350도로 조정해 주었다.수심인 B는 이때 선장이 승교 했음에도 잠시전 홍등을 피항한 사실을 보고하지 않아 수심인 A를 이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 채 속항하였고 이후 이 선박은 기상이 점차 호전되어 예정대로 정상 운항하여 같은 해 12월 11일 12시 30분경 인천항 B-10묘지에 도착.묘박 대기하고 있다가 12월 13일 인천항 연안 부두에 접안하였다.이와 같이 이 선박은 뉴질랜드 부근 해상에서 홍등의 선박과 충돌한 사실을 모른채 인천항에 입항했으나 사실은 당시 홍등의 선박은 요트 메린다 리로 팬 그레이스호와 충돌하여 선체는 파손.침몰되고 승선원 4명중 3명이 사망.실종 되었으며 1명이 살아남아 사고 사실을 신고함에 따라 뉴질랜드 해사안전국 주관으로 조사가 착수되었다.뉴질랜드 해사안전국이 미국 해안경비대(USCG)의 협조를 받아 추적한 결과 사고 일시에 사고 지점을 통과한 것으로 밝혀진 이 선박 팬 그레이스호가 가해선으로 추정되게 되었다.따라서 이 선박이 인천항에 도착함과 동시 미리 뉴질랜드 정부의 의뢰를 받은 인천해양경찰서의 수사와 P지방해난심판원의 조사가 시작되었다.우선 이 선박의 선체를 검사하고 선장 등 해난관계인을 조사한 바 선수 정면 수선상부에 지름 50㎝정도의 상흔을 비롯, 선수 약간 우현 측 앵카홀 전단으로 몇군데가 긁히는등 충돌의 흔적이 역역하고 이질의 선체도장이 채취되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감식한 결과 상대선 메린다 리의 선체도장과 같은 성분의 도료로 판명되었으며 이와 같은 근거를 배경으로 충돌사실을 추궁하자 수심인 2등항해사 B가 비로소 11월 24일 02시 00분에서 02시 30분사이 뉴질랜드 부근 해상을 지나며 홍등을 피항한 사실을 시인하고 따라서 충돌의 개연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충돌사실이 입증됨에 따라 수심인 B과 김홍모 등이 형사입건되고 해난관계인으로 지정되어 해난심판청구되었다.이 선박 팬 그레이스호는 1986년 6월 일본국 D조선소에서 건조된 선령 약 10년의 강조, 산적화물 겸 원목전용선으로 전장 167.20m(수선간장 16.00m)×너비 26.00m×깊이 13.30m이고 시운전 최대속력 14.5노트이다.또한 시운전 성적표에 의하면 정상 적재시의 최단정지거리 약 2,100m, 소요시간 약 7.5분이며 만재상태 10.3노트 정도에서 최대타각에 의한 종거 약 427m, 횡거 약 530m정도이다.사고당시 현지 기상은 초속 15m내외의 동북동풍에 파고 4-5m 정도에 이따금 강한 돌풍과 높은 너울이 몰려 왔으며 구름이 짙게 낀 가운데 가는비가 단속적으로 내리고 있어 시정은 불량했으나 가시거리는 3마일 이상으로 항해에는 특별한 지장이 없는 정도였다.한편 상대선 메린다 리(Melinda Lee)는 198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 프로빈스(Cape Province)에서 건조한 총톤수 14톤급 G.R.P(Glass Reinforced Plastic)조 요트로 미국 오래곤주 포트랜드에 선적을 두고 있으며 1993년 3월이래 소유자 E일가족4명이 함께 타고 칼리브해 일원과 남태평양 일원을 해상여행중에 있는 선박이다.이 요트 메린다 리는 길이 46.8피트(14.27m)×너비 13.8피트(4.21m)×흘수 6피트(1.83m)로 3개의 돛(Main Sail, Fore Sail, Stay Sail)을 장치하고 있는 하나의 마스트와 1대의 보조기관이 거치되어 있어 주추진 수단은 돛이고 풍력이 약할 때는 보조기관을 추진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주요 항해계기로는 검파기(Detector)부 16마일 레인지의 레이다 1대, 1개의 이동식(Hand Held)을 포함 위성항법장치(GPS)2대, 그리고 SSB라디오 및 VHF 각1대, 자기 나침의와 자동조타장치가 되어 있으며 갑판상 높이 약 48피트의 마스트 정부에 홍.녹.백3색 항해등이 설비되어 있다.또한 주요 구명설비는 6인승 구명뗏목 1개, 11피트 ABS 팽창식 뗏목 1개, 7피트 AVON형 팽창식 뗏목1개, 유리섬유제 8피트 소형정 1개, 그리고 소형고무보트 1개가 탑재되어 있고 각자의 구명동의도 준비되어 있었다.E(43세, 이하 MS라함), 그의 처 F(JS, 42세), 9세 아들 G(BBS) 그리고 7세 딸 H(ARS)등 일가족 4명이 함께 타고 있는 이 선박 Melinda Lee는 1993년 3월 이후 미국 서해안으로부터 항해를 시작하여 카리브해 일원을 경유, 1995년 9월 초경 남태평양에 있는 통가(Tonga)의 누쿠아로파(Nukua Lofa)항에 기항하였다.누쿠아로파항에 정박한 채 필요한 시설물 정비등 항해준비를 하며 여가를 보내고 있던 이들은 같은해 11월 16일 12시 00분경(뉴질랜드 지방표준시, 이하같음)이 항구를 출항, 뉴질랜드의 베이 오브 아이랜드(Bay of Island)로 향하였다.누쿠아로파항으로부터 미네르바 암초(Minerva Reef) 서방 약 20마일 지점을 거쳐 다시 Bay of Islands에 있는 Waitangi등대에 연한 침로를 설정하고 이에 따라 주로 풍력에 의하여 5.5-6.0노트 정도의 속력으로 항해하고 있던 이 선박은 출항 4-5일째 될 무렵 등화전원용 배터리 충전용 교류발전기에 고장이 발생되어 정상 작동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였으나 운항에는 특별한 지장이 없었으므로 전원 소모를 가급적 억제해 가며 속항하여 출항 8일째인 11월 24일 01시 00분경 Bay of Islands동안의 Cape Brett북방 30여마일 거리에 이르고 있었다.11월 24일 01시경 지금까지 조타실에서 항해당직을 보고 있던 남편 MS는 그의 침실에서 자고 있던 부인 JS를 불러 당직을 보게하고 자신은 잠자리에 들어갔다.
따라서 이때부터 JS가 항해당직을 보기 시작한 바 JS는 조타실에 오기 직전 조타실 뒤 한계단 아래 해도실에서 GPS로 선위를 측정.기록한 후 01시 00분경부터 당직에 임하였다.이때 침로는 진침로 213도에 상응한 나침의 침로 195도였고 1개의 지삭범(Stay Sail)에의하여 5.5노트 내지 6.0노트 정도의 속력으로 항해하고 있었으며 기상 상태는 초속 12m내외의 동북동풍을 선미 좌현측으로 받는 상황에서 구름이 짙게 끼고 가는비가 단속적으로 오다그쳤다 하고 있어 시정은 다소 불량했으나 수평선이 희미하게 보일정도여서 항해에는 특별한 지장이 없었다.레이다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으며 선박은 풍력에 의한 Wind Vane에 의하여 조종되고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JS는 갑판상의 조타실에 있다가 02시 00분경을 전후하여 2분이상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된 것이 없어 조타실 뒤 한층 아래에 있는 자신의 침실로 내려가 양말과 바지 그리고 방한복과 구명동의 등을 입고 멜빵을 멘후 02시 12분경으로 추정될 무렵 조타실로 돌아오며 방수 자켙의 지퍼를 올리는 순간 쾅하는 요란한 소리와 충격이 따랐다.
이 충격에 JS는 선체 중앙으로부터 좌현측으로 내동댕이쳐짐과 동시에 거대한 물체가 요트의 갑판을 타고 지나가며 JS는 오른쪽 귀 뒤쪽 머리에 타격 받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요트는 해수와 기름으로 넘쳤다. JS가 간신히 갑판으로 기어 올라와 보니 거대한 선박이 3열의 거주구역 불빛을 보이며 지나가고 있었고 남편MS와 딸 ARS가 갑판상으로 나와 있었다. 구명뗏목을 타려고 살펴보니 6인승 Good Year뗏목과 7피트, 8피트짜리 뗏목 등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고 11피트 ABS뗏목은 여전히 선체에 묶어져 있는 상태로 수중에 잠겨 있었으며 단지 소형 고무보트가 선체 우현측에 전복된 채 떠 있었다.남편 MS는 이때 여전히 갑판하 우현측 선실내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아들 BSS를 구조하기 위하여 선실내로 들어 가겠다고 하였으나 JS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만류하여 곧 BSS 구조를 단념한 후 세사람은 전복된 고무보트를 바로 세우고 올라탔다.
이때 선체가 급격히 침하되면서 보트가 딸려 들어가다가 선체에 묶여있던 줄이 떨어져 분리됨과 동시 보트가 다시 물위로 올라왔다. 이 들은 보트안에서 BSS에 관한 것과 가해선에 관한것, 그리고 충돌시간 등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02시 20분경으로 추정될 무렵 높은 파도에 의하여 보트가 두차례나 전복되어 겨우 바로 세우고 다시 타고 있는데 갑자기 가해선으로 보이는 선박이 50-100피트 정도의 가까운 거리로 지나고 있었고 가로로 상하 3열의 흰 불빛, 거주구역 창문으로 보이는 불빛이 보였다.
이때 세사람은 일어서서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으나 그 선박은 그대로 우선회하면서 지나가 버리고 보트는 다시 네 번째 전복되었다.이때는 또다시 전복될 것 같아 곧 바로 세우지 않고 전복된 보트위에 의지한채 그대로 표류하고 있다가 한동안이 경과된 뒤 바로 세우고 보트를 다시 타고 의식을 잃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며 표류하기 시작하였다.이렇게 표류하고 있는 동안 아침이 되어 날이 밝자 멀리 육지가 보였다. 육지가 보이자 JS와 딸 ARS는 환호하였으나 내의와 T셔츠 정도로 옷을 조금입은 MS는 이미 탈진상태가 되어 말할 기력도 없어 보였다.
두 모녀는 MS에게 될 수 있는데로 말을 하도록 하기 위해 대화를 했다. 그러나 10시 25분에서 10시 45분경으로 추정될 무렵 갑자기 큰 파도가 덮치면서 세사람은 보트로부터 밖으로 튕겨져 나와 헤어지게 되었다.이때 JS는 가까스로 보트를 다시 잡아 탈 수 있었으나 MS는 다른쪽으로 떠내려가는 딸을 구하려다 강한 조류에 밀려 두사람 다 곧 익사하고 JS부인은 고무보트에 의존한채 표류하여 다음날인 11월 26일 08시 15분경 마침내 육지(Cape Brett 부근의 Deep Water Cove해안)에 도착하여 같은날 17시경 수색중이던 수상비행기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다.당시 메린다 리에는 해기사 등 선박조종에 관한 자격증 소지자가 없었다.
2. 원 인이 충돌사건은 해난심판법 제2조제1항제1호 및 제2호의 규정에 해당되며 발생원인은 다음과 같다.
가. 사고발생원인이 충돌사건은 피항선인 팬 그레이스호측이 시정이 불량하고 상대선 홍등의 광력이 약한 탓으로 그 정확한 진로와 거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상대선이 오고 있는 방향으로 전타.피항을 시도함으로써 발생된 것이나 요트 메린다 리 측이 항해등의 광력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로 항해하면서 항해당직자가 십수분 동안이나 조타실을 비워둔채 무인상태로 방치한 것도 원인이 된다.팬 그레이스호측은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상 횡단상태의 항법관계에서 피항선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비록 시계가 다소 불량하고 상대선 등화의 광력이 약하여 착오를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는 점은 참작되나 충분한 시간과 거리의 여유를 두고 피항해야 되고 피항에 있어서도 대각도 변침등 적극적인 동작을 취해야 됨에도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소각도 변침으로 일관함으로써 충돌케 하였으며 이에 메린다 리 또한 비록 유지선의 위치에 있었다고는 하나 무릇 해상에서 모든 선박은 여하한 경우에 있어서도 경계를 철저히 해야됨은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제2조)상 항해자의 기초적인 책무인데도 이를 태만히하여 15,742톤급에 25,927톤이나 되는 원목을 갑판상 8-9m에 이르도록 만재한 거대한 선박이 접근하는데도 충돌 불과 십수분전 사방이 수평선까지 확인하면서 이를 발견하지 못하였고 시정이 나쁜 상황에서 검파기까지 부설된 레이다를 설비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용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특히 상대선이 착오를 일으키게 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항해등의 광력도 약한 상태에서 무려 12분여 동안이나 조타실을 비워두고 무인상태로 방치한 것도 같은 원인이 된다.
나. 해난관계인의 행위(1) 수심인 팬 그레이스호 2등항해사 B는 비록 상대선의 등화가 약했다 하더라도 피항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거리의 여유를 두고 이를 처음 발견했으므로 당시의 불량한 시정상태와 갑판상까지 만재한 자선의 적재상태 등을 감안해서라도 좀더 세밀히 관측하여 미리 피항동작을 취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까운 거리에 이르러서야 피항동작을 취한데다 특히 피항동작에 있어서도 정확한 거리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선이 오고 있는 방향으로 피항을 시도하였고 또한 피항하려면 대각도 타각으로 신속하게 피해야 됨에도 겨우 우현 10도 타각의 소각도로 완만히 피항을 시도함으로써 충돌을 자초하였으며 이에 일단 피항을 했으면 양 선박이 안전하게 교행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상식에 가까운 항법이라 할 것인바 이때 상대선의 홍등이 선수에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면 당연히 충돌의 개연성을 의심하여 즉시 정선과 동시 선장에게 보고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원침로상에 복귀한 채 속항하면서 곧이어 승교한 선장에게 피항사실조차 보고하지 아니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이다.수심인 B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선박운항에 관한 직무상 과실로 곧 이 사건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조할수 있는 기회마저 차단시킨 것으로 응분의 처분을 받아 마땅하다고 판단되므로 해난심판법 제5조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같은 법 제6조제1항제2호의 규정을 작용하여 이 사람의 3급항해사 업무를 3월 정지한다.
(2) 수심인 팬 그레이스호 선장 A는 수심인 B 등 당직자들이 홍등을 피항한 사실조차 보고하지 않아 충돌사실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던 점은 이해할 수 있으나 수심인 B가 자선에 승선한지 불과 1개월여 밖에 되지 않아 그의 기능과 능력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점, 또한 자선이 과도히 갑판적한 만재상태에 기상 상태마저 악화되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직접 조선지휘하거나 아니면 의심스러울 경우 자신에게 즉시 보고하도록 운항감독을 철저히 해야됨에도 불구하고 수심인 B의 일련의 행위로 볼 때 이러한 선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되므로 해난심판법 제5조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같은 법 제6조제1항제3호의 규정을 적용하여 이사람을 견책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이 충돌사건은 피항선인 팬 그레이스호측이 시정이 불량하고 상대선 등화의 광력이 약한 탓으로 그 진로와 거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상대선이 오고 있는 방향으로 전타, 피항을 시도함으로써 발생된 것이나. 요트 메린다 리 측이 항해등의 광력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로 항해하면서 항해당직자가 조타실을 비워둔 채 무인상태로 방치한 것도 같은 원인이 된다.수심인 B의 3급항해사 업무를 3월 정지한다.수심인 A를 견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