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안전 특별행정심판

예인선 제303금복호의 피예인부선 남해2호ᆞ어선 대진호 충돌사건

핵심 요약

요지

조사관 김규섭이 부해심 제2005-35호 재결에 불복하고 해양사고의조사및심판에관한법률 제58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2심을 청구한 사건임.관여조사관 Q

이유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55823"></img><span style="display:none;"> 선 명 제303금복호 남해2호 대진호 선 적 항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여수시 선박소유자 B C D 총 톤 수 43톤 400톤 4.22톤</span><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55825"></img><span style="display:none;"> 기관종류.출력 디젤기관 550마력 - 디젤기관 238마력 해양사고관련자 A 직 명 선 장 면허의 종류 4급항해사 사고 일시 2004년 12월 17일 00시 07분경 사고 장소 북위 34도 49분 38초.동경 127도 48분 15초 (여수해만 제12호 등부표로부터 295도, 약 390미터 해상)</span> 제303금복호는 1976년 11월 진수한 총톤수 43톤, 길이 24.18m, 너비 5.60m, 깊이 2.30m, 디젤기관 550마력 1기로 추진하는 강조 예인선으로 항행구역이 연해구역 국내항해로 제한되어 있다.

선교에 레이더, 자기 컴퍼스, 지피에스 플로터, 초단파 무선전화가 장치되어 있으며 선교의 안고(眼高)는 4.4미터(해면~상갑판 1미터, 상갑판~선교 1.8미터, 선교~눈높이 1.6미터)이다. 남해2호는 2004년 4월 진수한 총톤수 400톤, 길이 46.1m, 너비 15.0m, 깊이 3.1m의 강조 부선이며 선박검사를 받지 아니하는 선박으로 항행구역이 평수구역으로 제한되어 있다. 선수쪽에 램프(Ramp) 시설과 기계실이 설치되어 있고 선미쪽에 거주실과 윈치 룸(Winch Room)이 설치되어 있는 평부선 구조이다.

선수 우현 앞쪽에 위치한 기계실의 높이는 4.7미터(해면~상갑판 2.1미터, 상갑판~기계실 상부 2.6미터)이다.J해양개발(주)에서 제303금복호와 남해2호를 임차(賃借)하여 부산신항 공사장에서 사석, 토사, 골재 등을 실어 나르는데 운항하여 왔다. 그러나 J해양개발(주)에서는 평수구역만 항행할 수 있는 남해2호를 여수시 율촌공단의 매립공사 현장으로 보내기 위하여 연해구역을 항행하도록 지시하였다. 여기에 응하여, 제303금복호는 2004년 12월 16일 09시 40분경 부산신항에서 선장 A과 기관장 E가 승선하고 광양항으로 향하여 출항하였다.

제303금복호는 가덕도를 벗어난 후 공선 상태의 남해2호를 길이 150미터의 예인 밧줄로 끌고 전속력 약 5노트로 항해하였다. 남해2호에는 선두 F가 승무하였고 선수의 램프 시설은 비스듬히 올린 상태이었다.선장 A는 레이더와 지피에스 플로터를 작동하고 수동으로 조타하여 항해당직을 전담(全擔)하였다. 기관장 E가 주간에 3~4시간 조타만 대신하였을 뿐, 선장 A가 장시간 혼자서 항해하여 몹시 피로하였다. 제303금복호는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으로 진입하기 전, 2004년 12월 16일 23시 00분경 대도 부근 해상에 이르러 약 6분간 정선(停船)하였다.

이때 예인줄을 거두어 들이고 앞, 뒤, 중앙에 각 1개씩의 계류줄을 매어 제303금복호의 좌현에 남해2호의 선미 우현을 결합하였다. 선장 A는 예인선과 부선을 결합한 후 혼자 키를 잡고 항해하였고 레이더를 3마일 레인지(Range)로 작동하고 눈대중으로 등부표의 불빛을 보고 진로를 분간하면서 조선(操船)하였다. 항해중 레이더는 가끔 들여다 보았고 주로 육안으로 경계하였다. 제303금복호가 마스트등 2개, 현등 및 선미등을 켰고 남해2호는 현등과 선미등을 켜야 하는데 마스트등 1개만 켰다.

기관장 E과 선두 F는 남해2호의 선미 거주실에서 같이 쉬고 있었다.제303금복호가 남해2호를 좌현에 결합하고 예인할 때는 진로를 똑바로 유지하기 위하여 침로를 우현으로 3도~5도 더 틀어야 하였고 이로 인하여 남해2호 선수 우현쪽에 위치한 기계실이 진로상에 놓여 시야를 가리게 되었다. 선장 A의 안고(眼高)보다 남해2호의 기계실이 0.3미터나 더 높아서 기계실 전방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남해2호의 선수 램프의 발판을 비스듬히 올리고 항해하였기 때문에 진로 전방은 맹목(盲目) 구간이 되었다.

따라서 제303금복호로서는 진로 전방의 선박을 경계하려면, 전적으로 레이더 관측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선장 A가 줄곧 혼자 키를 잡고 항해하여 레이더에 의한 경계를 소홀히 하였고 주로 육안으로 경계하여 대진호를 발견하지 못하였다.제303금복호는 2004년 12월 17일 00시 00분 북위 34도 48분 58초, 동경 127도 48분 27초 해상을 통과하여 침로 343도, 속력 약 6노트로 항해하였다. 출항선 1척이 내려오고 있었으며, 입항선 1척이 추월하여 앞서 가고 입항선 3-4척이 뒤따라 오고 있었다.

그러나 제303금복호는 전방의 맹목 구간 때문에 시야가 가려 대진호를 보지 못하고 진행하다가 같은 날 00시 06분경 여수해만 제12호 등부표로부터 272도 방향으로 약 350미터 떨어진 해상을 지나면서 침로를 359도로 변경하고 속력을 약 5노트로 낮추어 진행하였다. 그러나 진로 전방에 정박한 대진호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가 결국 같은 날 00시 07분경 북위 34도 49분 38초.동경 127도 48분 15초, 여수해만 제12호 등부표로부터 295도, 약 390미터 해상에서 남해2호의 선수 우현이 대진호의 선수 좌현과 충돌하였다.

충돌 후 대진호는 남해2호의 선저(船底)에 깔려 잠시 끌려가다가 침몰하였다.선장 A는 키를 잡고 항해하다가 갑자기 “꽝”하는 충돌의 충격음이 들렸음에도 진행을 멈추지 않았고 충격음이 들린 지점으로 되돌아가서 부유물이나 바다에 빠진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지 않고 파도의 충격에 의한 소리로 생각하여 항행을 계속하였다. 제303금복호는 같은 날 00시 08분경 침로를 337도로 변경하고 같은 날 00시 10분경 침로를 347도로 변경하여 항해하였다.

남해2호 선미의 거주실에 있던 선두 F도 “꽝”하는 충돌의 충격음을 들었으나 선장 A에게 보고하지 않았다.충돌 당시 날씨는 맑은 하늘에 바람이 약하게 불었고 물결이 잔잔하였으며 시계(視界)는 5마일 이상으로 좋았다. 창조류(漲潮流)가 북으로 0.8-1.0노트로 흘렀고 12월 17일 00시 25분이 고조(高潮) 시간이었다. 남해2호는 같은 날 01시 50분경 광양항 제12번 정박지에 도착하여 대기하다가 같은 날 07시 10분경 여수시 율촌공단 매립공사 현장의 물양장에 접안하였다.

제303금복호는 같은 날 07시 20분경 단독으로 광양항을 출항하여 같은 날 22시경 부산신항에 도착하였다.한편, 대진호는 1993년 5월 진수한 총톤수 4.22톤, 길이 9.60m, 너비 2.76m, 깊이 0.89m, 디젤기관 238마력 1기로 추진하는 합성수지조(FRP) 어선으로 선박검사기술협회로부터 2006년 5월 9일까지 유효한 선박검사증서를 발급받았고 2004년 6월 22일 선박검사기술협회 여수지부에서 실시한 제1종 중간검사를 받았다.

대진호는 2004년 7월 30일 G가 매입하여 부인 D 명의로 소유하고 2004년 8월 3일 여수시장으로부터 2009년 8월 2일까지 5년간 유효한 잠수기 어업허가증을 발급받은 후 잠수기 어업 협회에 가입하여 전남 연안 일원(一圓)에서 보합제(保合制) 잠수기 어업에 운항하여 왔다.대진호는 2004년 12월 16일 21시 00분경 여수시 종화동 선착장에서 선장 H, 기관장 H1, 잠수부 H2 총 3명이 승선하고 여수해만으로 출어(出漁)하였다.

같은 날 21시 30분경 경남 남해군 서면 작장리 마을 앞 해상에 도착하여 조업을 준비하였고 여수해만 제12호 등부표로부터 295도, 약 390미터 해상에서 선수를 남으로 향하여 정박하고 조업하였다. 대진호는 정박할 경우 백색 전주등 1개를 켜야 하나, 선수에 자동차 전조등(前照燈) 2개와 선미에 백색 작업등 1개를 켰다.대진호의 잠수기 조업 방식은 선장 H가 선미에서 조업을 총괄하였고 기관장 H1은 선수에서 주 기관 동력으로 공기 압축기(Air Compressor)를 작동하며 그를 보조하였다.

잠수부 H2는 스킨 스쿠버 잠수복을 착용하고 압축공기 호스 100미터를 연결한 공기조절기(Regulator)를 입에 물고 납 벨트를 허리에 차고 망태와 섹션 호스(Section Hose) 및 텐더 라인(Tender Line)를 준비하고 잠수하였다. 한번 잠수하면 보통 1시간 정도 조업하고 올라왔다. 수압의 급격한 변동을 완화하기 위하여 수심 약 30미터의 해저에서 올라오며 감압(減壓)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이 소요(所要)되었다.충돌 전 잠수부 H2가 잠수 조업을 마쳐 선미에 설치한 사다리를 타고 갑판에 올라와 있었다.

이때 선장 H도 선미 갑판에 있었고 기관장 H1은 선수 갑판에 있었는데, 아무도 제303금복호의 접근 사실을 인지(認知)하지 못하였다. 충돌 2~3초전 잠수부 H2가 헬멧을 벗고 잠수복만 입은 채 선수로 걸어 가며 기관장 H1에게 텐더 라인(Tender Line)이 빠질 것 같으니 바로 잡아 달라고 말하는 순간, 선미 갑판에서 선장 H가 “야”하고 비명을 질렀다. 이어 “꽝”하고 충돌하였다. 잠수부 H2가 선장 H의 비명 소리를 듣고 뒤돌아 보는 순간, 배가 우지직하며 우현으로 경사되므로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곧 배가 뒤집혀 그는 조타실 우현 외벽에 눌리면서 바다속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잠수부 H2가 남해2호의 선저를 밀치고 헤엄쳐 나와 보니 약 3미터 옆으로 시커먼 선박(나중에 제303금복호와 남해2호로 밝혀짐)이 지나갔다. 그는 그 선박이 광양항으로 사라지는 것을 한참 지켜 보았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고 아무런 물체도 보이지 아니하므로 가까운 해안가 작장리 마을의 민가(民家)로 1시간 이상 헤엄쳐 갔다.

주인 노인을 깨워 119 전화를 걸어 충돌 사실을 신고케 하였다. 같은 날 01시 56분경 통영해양경찰서 노량파출소에서 충돌 사실을 119로부터 연락받았다. 같은 날 02시 26분경 여수해양경찰서에서도 충돌 사실을 연락받고 경비정을 출동시켜 수색작업을 펼쳤다. 잠수부 H2는 같은 날 04시 30분경 여수 해경 경비정을 타고 여수항 해경부두에 도착하여 귀가한 후 7일간 급성 스트레스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았다.이 충돌로 남해2호는 선수와 선저 외판에 대진호의 페인트 자국들이 묻어 있었지만 손상은 없었고 대진호는 남해2호의 선저에 깔려 침수되면서 수심 31m의 해저에 가라앉아 침몰하였다.

기관장 H1은 실종되었고 선장 H는 실종되었다가 6개월 후 인근 해안가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2004년 12월 18일 10시 30분경 크레인선 여수3호가 침몰 현장에 도착한 후 같은 날 13시 10분경 대진호의 선체를 인양하였다.

2. 원 인이 충돌사건은 해양사고의조사및심판에관한법률 제2조제1호 가목과 라목에 해당한다.

가. 원인의 고찰(1) 항법의 적용예인선 제303금복호가 남해2호를 좌현에 차고 광양항 입항을 위하여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을 통과할 때, 어선 대진호가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에서 정박하고 있었다. 교통안전특정해역은 해상교통안전법 제45조(교통안전특정해역의 설정 및 관리)제1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설정되었다. 교통안전특정해역의 범위는 해상교통안전법시행령 제4조 별표 2에서 정하고 있다.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 안에서 충돌이 발생한 경우, 대진호는 해상교통안전법 제47조(어업의 제한)제1항 “교통안전특정해역에서 어로에 종사하는 선박은 그 교통안전특정해역에서 해상교통안전법 제45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항로지정방식에 따라 항행하는 다른 선박의 통항에 지장을 주어서는 아니된다.”

라는 규정이 적용된다. 제303금복호는 해상교통안전법시행규칙 제8조(항로지정방식에 의한 항행)제4항 “선장은 선박이 지정항로를 따라 항행할 때에는 별표 11에서 정하는 항법에 따라 항행하여야 한다.” 라는 규정이 적용된다.별표 11 항로지정방식이 적용되는 광양만 출입항로의 출입항법은 「1. 흘수제약선이 광양만 출입항로를 항행하고자 할 때에는 깊은 수심 항로를 따라 항행하여야 하며, 흘수제약을 받지 아니하는 선박은 깊은 수심 항로의 오른편으로 항행하거나 멀리 떨어져서 항행하여야 한다.

2. 제1호의 규정에 의한 항로지정방식에 따라 항행하는 선박이 서로 충돌의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흘수제약을 받지 아니하는 선박이 흘수제약선의 진로를 피하여야 하며, 흘수제약선끼리 서로 충돌의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입항선박이 출항선박의 진로를 피하여야 한다.

3. 위에서 정한 항법 외의 사항에 대하여는 해상교통안전법 제18조의 규정에 의한 통항분리수역에서의 항법을 준용하여야 한다.」이다.즉 대진호는 광양만 출입항로의 출입항법에 따라 항행하는 선박의 통항에 지장을 주어서는 아니된다. 그리고 제303금복호는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의 깊은 수심 항로선의 오른편으로 항행하거나 깊은 수심 항로선에서 멀리 떨어져서 항행하여야 한다. 그런데 제303금복호는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의 깊은 수심 항로선에서 멀리 떨어져서 항행하지 않았다.

대진호는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 안에서 정박하여 조업하였다. 따라서 제303금복호는 충돌의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가능하면 깊은 수심 항로선에서 멀리 떨어져서 항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대진호는 충돌의 위험이 많은교통안전특정해역 안에 무단으로 정박하여 조업하지 말아야 한다.

(2) 경계 의무선박은 주위의 상황 및 다른 선박과의 충돌의 위험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도록 시각, 청각 및 당시의 상황에 적합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에 의하여 항상 적절한 경계를 하여야 한다. 경계는 항해중이나 정박중이나 항상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시계 상태, 수역 넓이, 교통 밀도, 자선 설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경계 인원, 배치 장소, 경계 수단 등을 결정하여야 한다.레이더를 설치한 선박은 레이더의 장거리 주사(走査)와 레이더에 탐지된 물체에 대한 작도 기타 체계적인 관측을 하여야 한다.

레이더의 작동은 레이다의 특성, 사용 레인지에 따른 제약, 날씨 바다상태 또는 간섭물이 레이더 탐지에 미치는 효과, 소형선 유빙 또는 부유물이 적정 레인지의 사용으로도 탐지되지 않을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레이더를 장거리 레인지로 사용할 경우, 명확성과 식별능력이 감퇴되고 작은 물표는 영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단거리 레인지로 사용할 경우, 물표의 조기 발견이 불가능하고 수역 전반의 상황 파악이 불가능하다.그런데 제303금복호는 야간에 선박의 통항이 빈번한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을 항해하면서 경계원과 조타자를 배치하지 않고 선장 A 혼자 키를 잡고 항해하였다.

제303금복호 선교의 안고(眼高)보다 남해2호 선수의 램프시설과 기계실이 더 높았기 때문에 기계실 전방의 선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장 A는 혼자서 키를 잡고 항해하였다. 레이더를 세심하게 관측하지 아니하고 주로 육안으로 경계하였다. 더욱이 진로 전방의 선박이 보이지 아니하는 맹목 구간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상황이었음에도 레이더를 3마일 권으로 작동한 채 관측을 게을리 하여 대진호를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하였다.

대진호는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에서 무단으로 정박하여 잠수기 조업을 하였고 선원 3명이 갑판상에 나와 있었음에도 경계를 소홀히 하여 제303금복호의 접근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였다.

(3) 대진호의 등화제303금복호와 남해2호에 총 3명의 선원이 승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장 A 혼자 키를 잡고 항해하였다. 기관장 E와 선두 F는 날씨가 추워서 남해2호의 선미 거주실 안에서 쉬고 있었다. 선두 F와 선장 A가 “꽝”하는 충돌의 충격음을 들었다. 그러나 선두 F는 선장 A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선장 A는 대진호를 발견하지 못하였고 레이더로도 관측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는 파도의 충격 때문이라 생각하여 그대로 항해하였다.

사고 후 선장 A는 대진호가 등화를 켜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남해2호 선수의 램프시설과 기계실이 선장 A의 눈높이보다 더 높아서 진로 전방이 맹목 구간이었고 그래서 선장 A는 대진호의 등화를 전혀 보지 못하였으므로 당연히 그렇게 주장하였을 것이나, 그의 주장은 말뿐이었고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사고 당시 대진호에도 총 3명의 선원이 승선하고 있었다. 선장 H가 선미 갑판에 있었고 기관장 H1이 선수 갑판에 있었다.

잠수부 H2는 선미 갑판에 있다가 선수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선장 H와 기관장 H1은 이 충돌로 인하여 이미 사망하였고 잠수부 H2만 생존하였다. 사고 후 잠수부 H2는 대진호가 선수에 자동차 전조등으로 제작한 작업등 2개를 켰고 선미에 백열등 1개를 켰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잠수기 조업의 특성상 작업등은 반드시 켜야 하고 잠수부의 생명과 직결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작업등을 켜지 않고 조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양 선박 측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으나, 충돌 당시가 고조 즈음인 점으로 미루어, 대진호가 한창 조업에 임하고 있었을 시간이다.

그리고 잠수기 조업은 잠수부의 생명과 관계되는 장비를 다루어야 하므로 작업등을 켰을 개연성(蓋然性)이 더 컸다. 대진호가 무단으로 조업하는 것이 발각될 것을 두려워 하여 작업등을 켜지 않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리고 대진호의 선원 2명이 사망하고 잠수부 1명이 생존한 과정이나 대진호 인양 후 선내에 실종자들의 사체가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사고 당시 대진호 선원 3명이 갑판상에 나와 있었을 가능성이 컸고 선원들이 갑판상에 있었는데, 그들이 작업등을 켜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사고 당시 대진호는 선수와 선미에 작업등을 켰다고 판단한다.

나. 사고발생원인예인선 제303금복호가 부선 남해2호를 좌현에 결합하고 예인하여 광양항으로 입항하고자 여수구역 교통안전해역을 항행하였다. 이때 제303금복호는 광양만 출입항로의 통항분리선에 해당하는 깊은 수심 항로선상으로 항행하다가 충돌 1분전쯤 후방에서 추월해 오는 입항선과의 간격을 넓혀 주기 위하여 침로를 343도에서 359도로 변경하였다. 그러므로 제303금복호는 충돌 당시 광양만 출입항로의 통항분리선에 해당하는 깊은 수심 항로선 부근을 항행하였다.남해2호는 현등과 선미등을 켜야 하는데 마스트등 1개만 켰다.

대진호는 백색 전주등을 켜야 하는데 선수에 자동차 전조등 2개와 선미에 백열등 1개를 켰다. 그러나 당시의 기상 상황으로 볼 때, 양 선박이 등화를 밝히고 있었으므로 경계 의무만 제대로 이행하였더라면 상대선의 등화를 육안으로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고 상대선을 미리 피항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그런데 제303금복호는 선장 A가 혼자 키를 잡고 경계원이나 조타자를 배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해2호 선수의 램프 시설과 기계실이 제303금복호 선교의 안고보다 더 높아서 진로 전방이 맹목 구간이었음에도 레이더 관측을 게을리 하고 주로 육안으로 경계함으로써 대진호를 충돌에 이를 때까지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판단한다.대진호는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에서 정박하여 잠수기 조업을 하였다.

대진호가 통항이 빈번한 수역에서 정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할 위험성이 많았다. 그러므로 대진호는 정박하여 조업할 때 항상 경계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 대진호는 선원 3명이 모두 갑판상에 나와 있었음에도 제303금복호의 접근 사실을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하였다.따라서 제303금복호는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의 통항분리선에 해당하는 깊은 수심 항로선에서 멀리 떨어져서 항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해2호 선수의 램프 시설과 기계실이 시야를 가려 진로 전방이 맹목 구간이었음에도 레이더 관측을 게을리 함으로써 정박중인 대진호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대진호는 교통안전특정해역에서 정박하여 조업하면서 경계를 게을리 함으로써 제303금복호의 접근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였다고 판단한다.

3. 해양사고관련자의 행위가. 해양사고관련자 A해양사고관련자 A는 제303금복호의 선장으로서 광양항으로 입항하고자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을 통과할 때, 통항분리선에 해당하는 깊은 수심 항로선에서 가능하면 멀리 떨어져서 항행하여야 한다. 제303금복호가 좌현에 남해2호를 결합하고 예인할 때는 남해2호 선수의 램프 시설과 기계실이 제303금복호 선교의 안고보다 더 높아서 시야를 가릴 경우, 경계원과 조타자를 배치하여야 하고 레이더에 의한 경계를 철저히 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정박중인 대진호를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하였다.

그리고 해양사고관련자 A는 항해 도중 “꽝”하는 충격음을 들었을 경우, 곧 진행을 멈추어 이상 유무를 잘 살펴 보아야 하고 충격음이 발생한 지점으로 되돌아 가서 부유물이나 바다에 빠진 사람이 있는지 수색하여 신속하게 구조 작업을 실시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파도의 충격음이라고 속단하고 항해를 계속하여 대진호 선원들 구조에 소홀히 하였다. 따라서 해양사고관련자 A의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는 해양사고의조사및심판에관한법률 제5조제2항의 규정에 따라 같은 법 제6조제1항제3호를 적용하여 이 사람을 견책한다.

4. 사고방지 교훈가. 예인선과 부선이 결합하여 항해할 때는 부선의 구조물이 예인선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지 또는 진로 전방의 맹목구간 유무를 반드시 확인하고 항해하여야 한다.

나. 교통안전특정해역은 선박의 통항이 빈번하여 사고의 위험이 대단히 많은 수역이므로 무단으로 정박하여 조업하여서는 아니되며 항해중이거나 정박중이거나 항상 경계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주문

이 충돌사건은 대진호가 여수구역 교통안전특정해역에서 무단으로 정박하여 조업하고 경계를 게을리 하여 제303금복호의 접근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과, 제303금복호가 남해2호 선수의 램프시설과 기계실에 가려 진로 전방이 맹목 구간이었음에도 레이더 관측을 게을리 하여 정박중인 대진호를 발견하지 못한 것 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해양사고관련자 A를 견책한다.

출처: 국가법령정보 공동활용(law.go.kr) 공개 결정문·재결례. 원문은 발행 기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본 문서는 참고용이며 법적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