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안전 특별행정심판

기선 화양호 승양(침몰)사건

핵심 요약

요지

기선 화양호는 부산시 B 소유 총톤수 260톤 71, 디이젤기관(축마력) 450마력을 거치한 항행구역 연해 구역의 강조 화물선으로써 기선 화양호는 1981년 6월 19일 16시 20분 제주항에서 잡화 약 80톤(충량)을 적재하고 (당시 흘수 선수 2.10미터 선미 2.80미터) 부산항을 목적으로 동항을 출항 항행중 6월 19일 22시 00분 항해사 부기표로부터 선장 A 항해 당직 인수하여 전속 항행하여 22시 30분 역반도를 본선 우현 약 2마일로 통과하고 본선 나침로 60도로 변침 전속 항행중 22시 50분경 안개가 끼기 시작하였으며 1981년 6월 20일 00시 30분경부터는 농무로 되어서 시정 약 100미터 정도로써 항해사 부기표로 하여금 선수에서 견시를 하도록 지시하고 속력은 반속으로 하는 일방 기관사용 준비를 명하고 조심성있게 항진중 더욱 시정이 나빠져서 시정 약30미터정도가 되어 계속 항해가 불가하여 6월 20일 02시 00분경 투묘를 하고자 측심을 한바 수심이 너무 깊어 본선 나침로 50도로 변침 미속으로 항진중 1981년 6월 20일 02시 10분 동경 127도 47분 18초 북위 34도 29분 00초 위치의 수중암에 승양되어 즉시 기관후진을 하였으나 이초가 아니되어 다음 고조시 1981년 6월 20일 10시 00분경 기관사용 및 본선 예비묘를 선미로부터 약 20미터 거리에 투하하고 위인치로 감으며 기관후진을 하였으나 이초가 아니 되었음.그후 고조에 따라 물이 상갑판상으로 올라와 선저부에 손상이 된 것을 알고 본사에서 보낸 선박 기선 영진호 기선 국진호가 적화물 구조를 시도하였으나 풍랑이 세어 이적작업을 못하고 있던중 기상이 더욱 악화되어(폭풍주의보 발령 발효중) 1981년 6월 22일 00시 30분 경 강한 풍랑으로 인하여 자연 이초되어 침몰한 사건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음.당시 기상은 맑은 날씨에 남동풍 풍력 1정도로써 조후는 낙조 중기에 속하였음.본건 해난심판법 제2조 제2조 제1호에 해당하므로 동법 제38조 및 동법시행령 제29조의 규정에 의거 심판 청구함.1981년 9월 19일주임조사관 Q

이유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10985"></img><span style="display:none;"> 선 명 기선 화양호 선 적 항부산시 선박소유자B 총 톤 수260톤71 기관종류, 마력디이젤기관 450마력 수 심 인 A 직 명선 장 해기면장 을종 2등항해사 선원수첩 목포 사고일시1981년 6월 20일 02시 10분 사고장소북위 34도 29분 00초, 동경 127도 47분 18초</span> 기선 화양호는 총톤수 260톤 71, 디이젤기관(축마력) 450마력을 거치한 연해구역의 강조 화물선으로써 1981년 6월 19일 16시 20분 제주항에서 잡화 약80톤을 적재한 후 선수 2.10미터 선미 2.80미터의 흘수로 동항을 출항 전속 9노트로 부산을 향하여 항진하던중 동일 22시 00분 항해사로 부터 당직을 인계받은 수심인 선장 A는 동일 22시 30분 역만도를 우현 약2마일 거리로 통과하고 나침로 060도로 변침 항행중 동일 22시 50분경 시정 약500미터 정도의 안개가 끼이기 시작하더니 6월 20일 00시 30분경에는 시정 약100미터로 안개가 짙어지므로 수심인 선장 A는 항해사 부기표로 하여금 선수에서 전방파수를 보도록 지시한 후 반속(약5노트)으로 감속하고 기관준비 상태에서 조심성있게 항진하였으나 동일 01시 30분 안개는 더욱 짙어져 시정 약30미터 정도가 되자 계속 항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투묘를 하고자 측심을 한바 수심이 너무 깊다고 판단 좀 더 육지쪽으로 접근할 생각으로 나침로 050도로 변침 미속(약3노트)으로 다시 감속하여 항진하던중 1981년 6월 20일 02시 10분 “덜커덕”하는 선저 저촉 충격음과 함께 기선 화양호는 북위 34도 29분 00초, 동경 127도 47분 18초의 전남 여천군 남면 심장리앞 금오도 남단 수중바위에 승양되었다.승양과 동시에 수심인 선장 A는 기관후진을 하였으나 이초가 되지 않았고 그후 저조시(04시 45분)에 선체가 승양된 상태를 조사코자 본선 비치 단정을 내려 선체주의를 조사한바 선저부 중앙부위보다 약간 앞 선저부가 수중암(평평한 암석)에 승양되었으나 선저 파손으로 인한 침수가 없었으므로 다시 이초작업을 시도코자 본선 예비묘(60키로그램)을 선미로부터 약20미터 거리에 투묘하고 고조 약1시간전인 동일 10시 00분경 기관 전속후진과 동시에 묘색을 윈치로 감았으나 이초가 안되던중 기상이 점차 악화되더니 동일 10시 40분경에는 남동 또는 남서풍이 초속 약10미터로 불었고 높이 약3미터의 너울이 일기 시작하여 갑판상으로 부터 침수가 시작되자 이초작업을 단념한 수심인 A는 기관장 황용주로 하여금 본선 단정을 이용 육지에 보내어 본사에 전화로 이러한 사실을 보고토록 한바 6월 21일 10시 00분 기선 영진호(총톤수 150톤급)와 기선 국진호(총톤수 200톤급)가 현지에 도착 적화물을 이적코자 하였으나 풍랑이 거세어 접선이 불가능하여 대기상태에 있었고 전 선원은 무사히 하선 육지로 옮겼으나 당시 해상에는 6월 21일 21시 00분을 기하여 폭풍주의보가 발효되어 (6월 22일 15시 00분에는 태풍주의보로 대체) 기상이 더욱 악화되자 1981년 6월 22일 00시 30분경 강한 풍랑으로 승양된 기선 화양호는 선저가 손상되면서 자연 이초되고 침수후 침몰되었다.승양 당시의 기상은 맑은 날씨에 남동풍이 풍력1로써 농무가 끼었고 조후는 낙조중기였다.

2. 원 인가. 원인판단이건 승양(침몰)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호에 해당되는 것으로 수심인 선장 A는 운항중 시정 30미터정도의 극히 제한된 시계에 조우되었으면 레이다아 설비도 없는 본선 현황을 감안 당초 판단대로 즉시 투묘후 일기회복을 기다렸어야 함에도 선위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모하게 전진하다가 금오도 남단 수중암에 승양되고 다시 악화된 기상에 조우 침몰을 야기시킨 것이다.수심인 선장 A는 농무에 조우된 후 투묘코자 하였으나 수심이 깊어 좀 더 육지쪽으로 접근할 생각으로 전진하다가 승양된 것으로 진술하고 있으나 해도상으로 볼때 주변의 수심은 30미터 미만이므로 본선의 묘(600키로그램 3샤클)로도 충분히 투묘 가박이 가능하였다고 판단된다.

(당시 기상은 남동풍 풍력1정도)따라서 이건 승양(침몰)은 수심인 선장 A의 전술한 바 농무중 운항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

나. 볍령의 적용수심인 A의 소행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에 의거 동법 제6조 제1항 제2호를 적용 동인이 소지한 을종 2등항해사의 업무를 1월 정지한다.당원은 수심인 A에 대하여 해난심판법 제6조 제3항에 의거 동인의 약45년간에 걸친 장기 승선 경력의 정상을 참작 그 징계량을 감하였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주문

이건 승양(침몰)은 수심인 A의 운항에 관한 직무상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A의 을종 2등항해사 업무를 1월 정지한다.

출처: 국가법령정보 공동활용(law.go.kr) 공개 결정문·재결례. 원문은 발행 기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본 문서는 참고용이며 법적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