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22245"></img><span style="display:none;"> 선종선명기선 한성호 선 적 항부산시 선박소유자J해운(주) 총 톤 수1,257톤 28 기관종류, 마력디이젤기관 1,800마력 수 심 인A 직 명선 장 해기면장을종선장 선원수첩부산 사고일시1983년 3월 17일 16시 40분 사고장소북위 37도 07분 00초, 동경 136도 42분 32초 손 해좌우현묘쇄 절단 유실 원 인피박지 선정잘못, 가박중 주묘에 따른 무리한조선</span> 기선 한성호는 J해운(주) 소유의 총톤수 1,257톤 28, 디이젤기관 1,800마력을 거치한 항해구역 근해구역의 강조 화물선으로, 1983년 3월 14일 10시 30분 여수항에서 화강석 1,350톤을 적재하고 선수 3.70미터, 선미 5.00미터의 흘수로 출항하여 일본국 북해도 도마꼬마이항으로 향하였다.수심인 A는 예정항로를 따라 대마도 북단 오끼해협을 지나 일본 서해안을 따라 노도반도 근해를 항해하던 중, 일본 N.H.K 기상방송을 청취한바 동년 3월 17일 06시 00분에 동해 중부 해상에 폭풍주의보가 발표되었으며 바람은 남서풍에서 서풍-북서-북-북동풍으로 변하면서 강하게 불 것이라는 예보였으므로 노도반도(能登半島) 서쪽 마쓰가시다만에서 피항할 것을 결심하였다.동월 17일 08시 00분경 부터는 남서풍이 불기 시작하여 초속 4-5미터정도 되었으므로, 동 수심인은 투묘 준비를 하면서 묘지로 접근하여 동일 08시 50분 선수를 북동으로 향하게 한 후 기관정지하였다.동일 08시 55분에 전진 타력으로 좌현묘를 투하, 4절에서 고정하고 후진기관을 사용하여 타력을 멈추게한 다음 기관을 정지하였고, 선수가 회두되어 풍향으로 향하였을시 키우현 10도, 기관 미속전진으로 적당한 위치까지 갔을 때 기관정지하고 우현묘를 투하, 양현묘쇄를 각각 7절까지 선출하여 쌍묘박 하였으며 이때 양묘쇄의 각도는 30도-40도, 위치는 북위 37도 07분 00초, 동경 136도 42분 32도였다.투묘후, 남서풍은 점점 강해져 동일 12시 00분에는 초속 14-16미터로 불어 파고 5-6미터의 풍랑이 일고 있었으며, 동일 16시 00분에는 폭풍주의보가 폭풍경보와 파랑경보로 대치 되었으므로, 동 수심인은 1항사, 2항사, 갑판장등을 선교에 근무하도록 지시하고 레이다를 작동하여 선위변화를 체크하도록 한바, 선미측에 어장이 가까워졌으므로, 동일 16시 25분 양현묘를 인양한 후 본래의 위치로 복귀하여 다시 양현 묘쇄를 7절씩 신출하여 재투묘 하고 대피중, 동일 16시 40분경 선수 방향으로부터 종류미상(확인하지 못함)의 큰물체 2개가 풍랑과 함께 덮쳐와 그 중 1개가 묘쇄에 부딪혔고 이로 인하여 선수가 좌현측으로 선회되어 현측에서 파도를 받게되자 선체가 심한 로링을 하게 되었다.동 수심인은 즉시 기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 동일 16시 50분부터 기관을 사용, 선수를 파도 방향으로 향하게 하면서 묘쇄에 장력이 많이 미치지 않도록 하고 있었으나 심한 풍랑 때문에 선수에 묘박 당직을 배치하지 못하였다.이와같이 기관을 사용하여 선수를 풍상으로 유지하면서 있던중, 선위가 다소 변한 것을 확인한 동 수심인은, 동일 19시 40분 1항사 B, 갑판장 등을 선수에 보내어 묘쇄의 이상유무를 확인하고 양묘기를 감아 보게한 바, 우현묘쇄는 7절로부터 약 5미터 정도에서, 좌현묘쇄는 7절로부터 약 7미터 정도에서 각각 절단되어 있었다.묘쇄절단을 확인한 후에도 동 수심인은 계속 기관을 사용하여 대기하다가 동월 18일 07시 00분에 후시끼 해상 보안청에 연락하고 동일 10시 45분 가네자와항 부두에 우현 접안하였으며, 이곳에서 남은 묘쇄를 연결하여 예비묘를 달고 출항, 무사히 도마꼬마이항에서 하역을 마치고 부산으로 귀항하여 묘와 묘쇄를 새로 달았다.당시 기상도에 의하면 동해 중심부에 위치한 996밀리바아의 저기압이 발달하면서 전선을 동반하고 있었으며 본선은 온난전선과 한냉전선의 사이에 위치하게 되어 계속 강한 남서풍을 받다가 서풍-북서풍을 받게 되었다.기선 한성호의 묘쇄직경은 38밀리미터로서 1980년 1월 6일 한국선급협회 검사보고에 의하면 마모율은 좌현묘쇄가 평균 0.94% 우현 묘쇄가 0.92%였다.
2. 원 인가. 원인판단이건 조난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호에 해당되며, 수심인 A는 피박중 2개의 큰 물체가 풍랑에 밀려와 그중 1개가 묘쇄에 접촉되어 절단되었다고 주장하나, 묘쇄에 부유물이 접촉되었다는 시간은 사고 당일 16시 40분이며 묘쇄가 절단된 것을 인지한 것은 3시간후인 동일 19시 40분에 양묘기를 감아올려 확인한 후였다는 점, 아무리 황천중이라 하더라도 선교에서 선수까지 50미터 정도밖에 되지않고 더구나 주간에 선장, 항해사 2명, 갑판장등 수명이 선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유물을 확인할수 있었다는 점, 또 부유물이 묘쇄에 부딪혔다고 가정하더라도 한 개의 부유물에 접촉되어 약 30-40도 각도로 나가있는 양현 묘쇄가 동시에 절단될 수 있을까 하는 점등을 분석하여 볼 때 동 수심인의 주장은 그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따라서 그 원인을 규명하건데, 동해중부해상에 전선을 동반한 996밀리바 저기압이 확장되면서 북동으로 이동중, 기상이 악화되어 푹풍주의보가 발효되었고, 이때 노도반도를 포함하여 일본 서해안 일대는 온난, 한냉 두 전선 사이에 놓여 전선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었다.이러한 기상조건 하에서는 한냉전선이 통과 할 때까지 계속 남서풍이 강하게 불다가 전선 통과 후, 서내지 서북풍으로 풍향이 전환되어 약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기상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수심인 A는 막연히 풍향이 남서에서 서쪽으로 돌아 북동으로 변한다고 예보한 N.H.K 기상방송을 듣고 남서 내지 서풍에 완전히 노출된 노도반도 서쪽 마쓰가시다만에 피박 하므로서 초속 14-16미터의 남서풍과 파고 4-5미터의 풍랑을 직접받아 선체가 심하게 동요하고 주묘 되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선수를 풍향으로 유지하면서 묘쇄의 장력을 감소 시키려고 기관을 사용 하던중, 묘쇄에 장력조정이 잘못되어 이건 조난이 발생된 것으로 판단된다.수심인 A는 마쓰가시다만에서 피박 할 것이 아니라 이곳으로부터 약 65마일 떨어져 있으며, 남서 내지 서북풍을 막아줄 수 있는 아다만에서 대피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피항지 선택이라고 보며, 황천대피시에는 묘박한 상태로 주묘방지와 묘쇄장력을 감소 시키려고 기관을 사용 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양묘한 후 저속으로 HEAVE TO하면서 대처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 이었다고 판단된다.
나. 법령의 적용수심인 A의 소행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 규정에 의거 동법 제6조 제1항 제2호 규정을 적용 동인의 을종 선장 업무를 1월 정지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