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안전 특별행정심판

기선 청룡3호(부선 대양4호) 조난사건

이유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13799"></img><span style="display:none;"> 선종선명기선 청룡3호 선 적 항울산시 선박소유자J건설주식회사 총 톤 수1,486톤 14 기관종류, 마력디이젤기관 6,000마력 2기 수 심 인A 해기면장갑종1등항해사 직 명선 장 사고일시1978년 9월 23일 00시 45분 사고장소북위 15도 15분 00초, 동경 115도 08분 00초 손 해예선1척 행방불명 선원 4명 실종 원 인황 천</span> 기선 청룡3호는 J건설주식회사 소속의 총톤수 1,486톤 14디이젤기관 6,000마력 2기를 거치한 원양구역의 예선겸 해난구조 작업선으로서 J건설주식회사의 중동지역 항만건설용 철재 구조물을 적재한 철부선을 예인하여 울산항과 중동지역사이에 취항하고 있었으며 수심인 선장 A는 1978년 8월 31일 23시 00분 3차 복항하기 위하여 공선인 철부선 대양4호 총톤수 4,527톤 79, 대양1호 총톤수 12,077톤 47 및 대양5호 총톤수 4,527톤 79, 3척을 예인하여 사우디아라비아의 쥬바일항을 떠나 울산항으로 향하였다.수심인 선장 A는 3척의 철부인을 예인함에 있어 직경 70밀리미터의 예인용 와이어 로우프를 사용하였으며 대양4호를 우현 바우드럼원치에서 500미터의 길이로 연결하는 한편 대양5호는 대양1호를 좌현 스틴드럼원치에서 725미터의 길이로 연결하는 한편 대양5호는 대양1호를 연결한 예인색 700미터 부위에서 연결 장치를 통하여 425미터의 길이로 연결하였다.

기선 청룡3호는 9월 18일 06시 00분경에는 싱가폴 전방 해상을 통과하여 남지나 해상으로 항진중 9월 22일 21시 00분경부터 북동풍이 강하게 불며 파고도 높아지자 수심인 선장 A는 그간에 평균 기관회전수 470 속력 약 9해리로 항해하던 것을 기관회전수 455로 낮추었으며 동월 23일 00시 00분경부터는 북위 15도 30분 00초, 동경 120도 00분 00초 지점 해상에 발달한 태풍 20호의 영향권내에 들어가 폭우를 동반한 풍력7의 북동풍이 불어오자 기관 회전수를 낮추어 420으로 23일 00시 25분에는 400, 동일 00시 25분에는 다시 370 속력 약 5해리로 낮추어 감속하면서 속항하였다.동일 00시 45분경 북위 15도 15분 00초, 동경 115도 08분 00초 지점에 이르렀을 때 기관실로부터 약간의 진동이 있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한편 레이다로 피예인중인 철부선의 상태를 주시하고 있던 2등항해사 이상래로부터 대양4호의 거리가 본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보고가 있어 선미부에 가서 조사하게 한바 예인색의 팽창도가 풀려서 늘어져 있고 레이다상으로도 대양4호의 거리가 멀어져가고 있었으므로 예인색이 절단된 것임을 알았다.

수심인 선장 A는 본선 단독으로 대양4호를 구조하는 것을 검토하였으나 당시의 기상으로 미루어 도저히 불가능하므로 즉시 서울 무선국을 통하여 본사에 사고 사실을 보고하고 구조선의 조속 파견을 요청하였던바 동일 13시 15분 서울 본사로부터 마닐라에서 구조선이 갈것이라는 연락이 있었으나 구조선이 오지 아니하였으며 9월 25일 13시 00분경 마닐라 K회사로부터 예선을 파견한다는 연락이 있었으므로 본선은 계속 대양4호를 감시하면서 그 주위를 항해중에 있었다.9월 27일 07시 25분 마닐라에서 파견한 600톤급 1,800마력의 예선 바이킹이 사고 현장에 도착하여 본선 우현에 계류하고 대양4호 연결작업에 필요한 인원으로 본선 선원 1등항해사 이하 4명이 바이킹에 이승하여 연결작업에 착수하였다.

당시 기상은 태풍 20호는 이미 통과하고 태풍21호가 마닐라 지방해상에서 북북서로 진행중에 있었는바 당초 대양4호를 본선에 연결하기로 하였었으나 태풍21호의 영향을 받아 해상에 높은 파랑이 일고 있기 때문에 연결작업이 위험하므로 대양4호를 직접 바이킹에 연결시키고 바이킹에 이선중인 본선 선원 4명은 본선으로 귀선케 하도록 바이킹 선장에 요청하였으나 양선 접선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바이킹 선장은 이를 거부하였으므로 바이킹은 대양4호를 대만 가오승으로 예인하고 본선도 가오숭으로 가서 서로 만나기로 하였다.

9월 27일 14시 15분 본선과 대양4호를 연결한 바이킹은 현장을 떠나 나란히 항해하였으며 그간 본선은 선원 4명의 귀선 조치를 취하고저 하였으나 그때마다 높은 파도로 접선이 위험하여 바이킹의 협조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현장서의 귀선조치를 포기하고 9월 27일 18시 00분경부터 속력을 내서 앞질러 항행하기 시작하였다.수심인 선장 A는 항해를 계속하면서 매4시간마다 V.H.F로 바이킹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으나 29일 05시 00분경 바이킹과 통신할 때 바이킹측에서는 풍랑이 심하여 더 이상 대양4호를 예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29일 02시 00분경에 대양4호의 예인색을 절단 포기하고 청룡3호 선원 4명을 탑승시킨채 마닐라로 향한다는 통신연락을 하는중 통신이 두절되었으므로 무전 통신기를 24시간 개방하는 한편 본사에 이 사실을 보고하고 바이킹의 소속 회사가 있는 마닐라에 연락하여 바이킹의 동정을 알려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본선이 직접 마닐라의 바이킹 소속 회사에 연락한 결과 9월 29일 06시 00분 현재의 바이킹의 위치와 기관실에 침수중이라는 연락이 있은 후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9월 29일 06시 00분 현재 바이킹의 위치는 북위 16도 20분 00초, 동경 116도 10분 00초이며 청룡3호는 태풍 21호의 중심권내에 있어 바이킹의 항로를 추적할 수 없으므로 태풍 통과시까지 계속 근처 해상에 있다가 9월 30일 12시 35분 본사의 지시에 따라 속력을 올리고 울산항으로 향하였으며 10월 5일 16시 00분에 울산항에 입항하였다.이에 앞서 9월 29일 16시 00분 바이킹의 기관실에 침수중이라는 연락이 있은 뒤 통신이 두절된후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점과 당시 21호 태풍의 영향으로 기상이 극히 나빴다는 점등으로 미루어 보아 바이킹은 침몰되고 이에 탑승하고 있던 청룡3호의 선원 4명도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이 사고로 인하여 부선 1척이 행방불명이 되고 선원 4명이 실종되었다.이건 조난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호 및 제2호에 해당되며 수심인 선장 A의 해난보고서, 조사관의 질문조서 기재 및 당심판원 심판정에서의 진술등에 의해서 그 원인을 살피건대 대양4호를 연결한 예인색이 절단된 것은 풍랑이 심한 황천하에서 예인색이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졌다하는 상태를 거듭하다 갑작스런 힘을 받아 절단된 것으로 보며 예인용으로 사용한 와이어 로우프의 규격이나 장력등에는 하자를 발견할 수 없으므로 수심인 A의 소행은 이건 발생에 원인이 되지 않는다.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주문

이건 조난은 황천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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