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21953"></img><span style="display:none;"> 선종선명기선 제71태창호 선 적 항파나마 선박소유자용선주 J수산(주) 총 톤 수408톤 96 기관종류, 마력디이젤기관 1,100마력 수 심 인AB 직 명선 장2등항해사 해기면장어선을종 1등항해사어선을종 2등항해사 선원수첩부산제주 사고일시1983년 1월 21일 03시 00분 사고장소북위 21도 44분 36초, 동경 120도 48분 30초 손 해침 몰 원 인선위측정 및 견시소홀</span> 기선 제71태창호는 총톤수 408톤 96, 디이젤기관 1,100마력을 거치한 파나마 국적의 원양 참치 연승 어선으로서 J수산(주)에서 국적취득 조건부로 나용선하여 운용하고 있던 중 수심인 선장 A등 27명이 승선하고 1982년 7월 21일 18시 00분 부산 남항에서 떠나 8월 15일 서인도양 남위 05도 00분, 동경 050도 00분 해상에 도착 후 참치 어업에 들어가 1983년 1월 7일까지 290톤의 어획으로 만선이 되자 선수, 선미 3미터의 동흘수상태로 동일 03시 00분 북위 01도 00분, 동경 085도 00분 해상을 떠나 부산으로 향하였다.본선은 항해 중 천측과 N.N.S.S.로 선위를 측정하였으나 싱가폴을 지난 후부터는 기상이 불량하여 천측이 거의 불가능하였고 1월 19일 09시 00분경 부터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강풍과 높은 파랑이 계속되어 기관 회전수를 340에서 305의 저속으로 하고 속항하면서 주로 N.N.S.S.에 의하여 선위를 측정하였다.수심인 선장 A는 1월 20일 19시 34분 2등항해사(B) C가 N.N.S.S.에 의하여 측정한 위치가 북위 21도 10분 48초, 동경 120도 23분 24초임을 확인함과 동 위치가 원침로상에서 좌측으로 2-3마일 흘렀고 대만 남단에 위치한 CHI HSING YEN 암초군 및 해류등을 고려하여 진침로 039도에서 051도로 변침하고 속항하였으나 그 후 N.N.S.S.의 작동 통풍기 모우터 베어링 불량으로 작동이 되지 않아 역시 성능이 좋지 않는 레이다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동일 23시 00분부터 당직에 들어간 수심인 2등항해사(A) B는 갑판원 D 및 E를 견시에 임하도록 하고 자동조타기에 의하여 항해를 계속 하였던 바, 수심인 A가 계속 조타실에 있었으므로 선장지시에 의거 행동하다가 수심인 A는 1월 21일 00시 00분 수심인 B에게 철저한 견시와 기상변화 기타 이상이 있을때에는 즉시 보고토록 지시하고 잠시 휴식코자 해도실에 들어가게되자 수심인 B는 전방 해상을 견시 중 동일 00시 30분경 대만 남단의 O-LUAN PI 등대를 육안으로 희미하게 초인함과 수심인 A도 이를 시인한 후 동일 00시 50분경 레이다에 의거 상기 등대를 측정하니 좌현 전방 약 22마일로 잡았으나 영상이 선명치 못하여 자신감을 갖지 못한 상태하에서도 현재 속력 약 5.5마일로 잡아, 얼마동안은 위험권내에 들어가지 않으리라고 판단함과, 동일 03시 00분에는 1등항해사가 당직을 보게되며, 자신도 02시 50분경 승교하여 다시 선위를 내기로 계획한 후 동일 01시 40분 침실에 들어갔다.수심인 B는 동일 02시 00분경 부터는 등대의 등광이 똑똑히 보였으며, 본선의 좌현 전방에 계속 보임으로 선위 측정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동일 02시 50분 갑판원 D로 하여금 1등항해사에게 당직교대를 알리도록 지시하고 있던 중 동일 03시 00분 선저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0-LUAN PI 등대 남방 약 9.5마일에 위치한 암초(북위 21도 44분 36초, 동경 120도 48분 30초)에 좌초되었다.수심인 B는 즉시 키를 수동으로 바꾸면서 우전타 하였으나 타지시기는 돌아감에도 선수는 돌아가지 않고 이를 되풀이하던 중 충격음을 듣고 급히 승교한 수심인 A는 비상벨에 의하여 전원을 깨운 후 자력이초 가능여부를 조사중 동일 03시 08분경 기관실 후라이 휠 밑에서 대량침수가 있음을 보고 받고 사태의 위급함을 느끼고 동일 03시 13분 통신장으로 하여금 조난신호를 발신케하자 서울 무선에 수신되었고 동일 03시 37분에는 목포 무선국과 교신되었으나, 동일 03시 25분에는 우현 발전기가 동일 03시 47분에는 좌현 발전기가 침수로 인하여 정지되었다.그 후 계속되는 침수와 풍랑으로 선체동요가 심하여지면서 동일 06시 00분경 큰 파도에 의하여 선체가 자연 이초되자 기관실과 어창이 완전 침수되었으며 수심인 A는 전선원의 구명동의 착용 및 구명정하강 준비를 명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중 동일 09시 30분경 대만의 정찰기가 와서 상공을 선회하고 난 후 동일 10시 50분경 홍콩선적의 화물선 MOUNTAIN THISTLE이 접근하여 왔기에 선원들을 구명정 3대에 분승하여 동일 11시 50분까지 전원구조 되었으나 기선 제71태창호는 동일 12시 30분경 사고해역 부근에서 완전 침몰하였다.기선 MOUNTAIN THISTLE을 138,000톤의 광석 전용선으로서, 광석을 적재하고 일본국 도바다항으로의 항해중에 있어 선원들은 1월 25일 도바다항에 입항 후 1월 27일 부관 페리편으로 귀국하였다.당시의 기상은 북동풍이 초속 20-25미터로 불고 파고는 6-7미터 내외였다.
2. 원 인가. 원인판단이 건 침몰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호에 해당되며 사고의 원인을 규명한 바, 수심인 A 동 B가 선위측정 및 견시를 소홀히 함으로 선체가 계속 압류되었음을 사전에 발견치 못한 결과, 좌초 또는 침몰케 된 것이다.본선은 운항중 기상악화로 천측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N.N.S.S.에 의하여 선위를 내다가 모우터 베어링 불량으로 동 기기사용도 불가능하게되자 레이다에 의존한 바, 레이다도 성능이 좋지 않아 영상이 선명치 못한 상태였기는 하나, 그래도 작동이 가능하였고 1월 21일 00시 30분경 부터는 희미하게나마 육안으로 O-LUAN PI등대의 등광을 시인하였고, 동일 02시 00분 부터는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으나, 수시로 콤파스에 의한 방위와 레이다에 의한 방위 및 거리를 비교 분석하는등 선위 확인에 노력하였어야 됨에도 수심인 선장 A는 1월 21일 00시 50분 레이다에 의거 선위를 낸후에는 선위측정 사실이 없었고, 전기선위도 자신이 없는데다가 기상도 점차 악화되는 상태였으므로 계속적인 당직으로 피로하다 할지라도 앞으로 얼마남지 않은 암초군도 있고 하니 자신이 직접 조선에 임하여 선위측정에 노력하였더라면 사고방지도 가능하였다고 보며 결국 선장의 직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가 되었다.
한편 수심인 2등항해사 B는 선장이 하교후 사고시까지 등대의 등광만을 확인할 뿐, 선위측정은 한번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금번 좌초된 암초는 높이가 27피트였고 본선이 점차 암초가 존재하는 위험권내에 접근하고 있었으니 견시를 좀 더 철저히 하였더라면 사전에 암초 발견 내지는 부근해상의 이상을 느꼈을 것임에도 막연한 항해 당직으로 선저에 충격을 느끼고 비로서 좌초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나. 법령의 적용수심인 A 및 수심인 B의 소행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의 규정에 의거 동법 제6조 제1항 제2호를 적용 수심인 A의 어선을종 1등항해사의 업무를 2월 수심인 B의 어선을종 2등항해사 업무를 1월 정지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