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13759"></img><span style="display:none;"> 선종선명기선 제38오양호 선 적 항부산시 선박소유자J수산주식회사 총 톤 수231톤 14 기관종류, 마력디이젤기관 750마력 수 심 인A 해기면장어선을종 1등항해사 선원수첩부산 직 명선 장 사고일시1978년 12월 30일 00시 20분 사고장소북위 36도 56분 00초, 동경 002도 11분 00초 손 해침몰 원 인운항과실</span> 기선 제38오양호는 부산시에 선적을 둔 J수산주식회사 소유선으로서 원양어업에 종사하는 총톤수 231톤 41에 디이젤기관 750마력을 거치한 강조 제3종 원양 참치연승 어선으로 1976년 5월 10일 부산항을 출항 인도양에서 1차 조업을 마치고 160톤을 어획한 후 포트루이스항에 양륙 기름과 주부식을 보급 받은 다음 브라질 리시퍼항을 기지로 부근 해역에서 약 1년간 조업을 마쳤고 이어서 1978년 1월에는 스페인령 라스팔마스에 입항하여 이후 상기항을 기지로 대서양에서 계속 조업하다가 본선의 조업 계약기간이 만료되므로 조업을 마치고 회사의 지시에 따라 부산항으로 귀항키 위하여 19명의 승조원이 약 100톤의 냉동어획물을 적재하고 선수 2.4미터, 선미 3.5미터의 흘수로 1978년 12월 25일 07시 00분 상기 라스팔마스항을 출발하여 동월 28일 07시경에는 지부로울터에 도착 침로를 진침로 084도로 정하고 항진 동월 28일 11시 15분 경에는 지부로울터 해협의 알미나 등대를 우현 정횡 약 15해리 거리로 통과한 후 동월 23일 23시경에는 지부로울터 해협중앙에 있는 알보란 등대를 통과하고 침로를 진침로 080도로 변침한 후 계속 항진하였다.당시의 기상은 시야가 불량하였으나 육안의 지상물표를 레이다로 측정 선미를 확인하면서 소정 항로에 정확히 항진중이였으며 당직은 6시간마다 선장과 1항사가 교대하면서 근무하였고 복잡한 수로 통과 시에는 선장이 직접 조선을 하였다.사고시의 당직은 사고발생 직전인 동월 29일 22시 00분 선장인 수심인 A가 1항사로부터 당직을 인수하여 실항사인 B와 갑판원 C 동 D 등 3명의 보조를 받으면서 진침로 080도로 전속 10노트로 항진 중 동월 30일 00시 05분경 조타실에서 견시 중이던 갑판원 C가 본선 선수 좌현 상대방위 약 35도, 거리 3-4해리에 4,000톤급 선박의 녹등과 백등을 확인한 후 본선은 계속 침로와 항속을 유지하면서 항진하였다.양선이 박근상태로 접근하였음에도 상대선은 하등의 피항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 전속 항진하여 옴으로 본선은 충돌의 위험을 느껴 단성 1발을 울리면서 진침로 100도로 변침하였으나 상대선은 계속 항진만 해오므로 연이어 단성 5발을 울리면서 우현전타를 하였으나 동시에 1978년 12월 30일 00시 20분 북위 36도 56분 00초, 동경 002도 11분 00초 지점에서 상대선의 선수가 본선 좌현 기관실부위에 충돌되었다.충돌과 동시에 본선은 약 30도 우현으로 경사되었으나 상대선은 계속 본선 선미를 스치면서 전속 항진 통과하였다.충돌후 상대선을 확인코저 탐조등을 켰으나 불이 켜진 순간 다시 꺼졌고 이어 기관 및 전원이 일체 차단되어 상대선을 확인치 못하고 있을 때 상대선은 그대로 전속으로 도주하였다.충돌후 본선은 선미부부터 침수 약 20분 후에는 선미부가 완전히 침몰됨으로 선체구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전선원을 집합시켜 구명대를 내리게 한 후 전원을 퇴선케하고 본선과 줄을 잡아 그곳에서 대기중 때마침 격랑으로 본선에 접촉될 우려가 있어 본선과 잡은 줄을 풀고 표류를 시작하였으며 본선은 동월 30일 02시 50분 경 완전 침몰되었다.구명대로 표류하면서 조난용 신호탄 2발을 발사한바 약 40분 후인 동월 30일 02시 20분경 부근을 항해중이던 덴마크국적선인 약 780톤급 화물선 기선 리지후렘에 의해 전원 구조되었다.구조선 기선 리지후렘은 자기 본국과 구조관계로 무전교신 후 그곳에서 지시를 대기 중 동월 30일 06시 30분경 사고지점을 출발하여 스페인국 카타제나항에 동월 31일 06시 00분경 무사히 입항 그곳에서 항공편으로 영국과 홍콩을 경유 전원이 1979년 1월 7일 무사히 귀국하였고 그후 여러방법으로 상대선 탐지에 노력하였으나 현재까지 확인치 못하고 있었다.이건 충돌로 기선 제38오양호는 완전 침몰되었으며 인명피해는 없었다.당시의 기상은 서풍이 초속 11.16미터로 불었으며 파고는 3미터 격랑이었고 하늘에는 구름이 많이 끼여 시야가 불량하였다.이건 침몰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호에 해당되며 그 원인을 규명한 바 전술한 국적 불명선이 횡단 상태에서 피항선으로서 마땅한 피항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국제해상충돌 예방규칙 제15조를 위반한 운항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수심인 A의 소행은 이건 발생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