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21961"></img><span style="display:none;"> 선 명기선 제20케미케리호 선 적 항부산시 선박소유자J케미칼해운(주) 총 톤 수635톤 43 기관종류, 마력디젤기관 785마력 수 심 인AB 직 명선 장1등항해사B 면허종류을종1등항해사을종2등항해사 선원수첩목포 부산 사고일시1983년 1월 14일 00시 46분 사고장소북위33도 53분 34초, 동경132도 38분 22초 손 해우현측 선저판(K.A.B.C)등 80밀리미터-120밀리미터 굴곡, 스</span><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21963"></img><span style="display:none;"> 크류브레이드 굴곡 원 인선위측정 불이행등 당직근무 소홀</span> 기선 제20케미케리호는 총톤수 635톤 43, 디이젤기관 785마력을 거치한 항해구역이 연해구역의 L.P.G, 유조선으로서 수심인 선장 A등 12명이 승선하여 한일간의 부정기 항로에 취항하고 있던중 동선은 여수항에서 양하가 완료되자 1983년 1월 11일 20시 00분 선수 1미터 40센티미터 선미 3미터 60센티미터의 공선 흘수로서 동항을 떠나 일본국 다까사고 항으로 향하였다.동선은 검역을 받기 위하여 1월 12일 17시 30분 무쓰레 전방 해상에 투묘후 1월 13일 07시 30분 검역이 끝났으나 수심인 A는 간몽해협의 조류에 맞추어 가고저 대기하다가 동일 10시 15분 발묘와 동시 항해를 계속하여 동일 12시 15분 간몽해협을 무사히 통과하자 예정항로에 따라 속항하였다.동일 20시 00분부터 당직에 들어간 수심인 선장 A는 구루시마 해협의 통과시간을 조절하기 위하여 동일 21시 30분 기관회전수를 500으로 감속 약5노트의 반속과 자동조타기에 의하여 항진하면서 동일 23시 30분 레이다로 유리시마등대 북방 약1.5마일에 선위를 구하고 동일 24시 00분 추측위치를 북위33도 53분 23초, 동경132도 35분 08초로 정한후 자침로 73도(이하 자침로)로서 수심인 1등항해사B B에게 당직을 인계하고 잠시 조타실에 머물러 있다가 1월 14일 00시 15분경 수심인 B에게 역조류 관계로 선체가 오른쪽으로 밀리고 있으니 의심이 나면 레이다를 작동하여 선위를 확인토록 하라는 지시를 하고 하교하자 수심인 B는 조타수 C과 같이 당직에 임하였던바 계속 자동조타기에 의하여 속항하던중 선체가 우현으로 압류되는 것 같기는 하였으나 선장이 24시 00분 낸 위치로 보아 쓰루시마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통과할 것으로 판단하고 동일 00시 25분경 침로를 69도로 하고 전진중 동일 00시 40분경 쓰루시마 등대가 목전에 보이고 선수 우현 약10도 전방에 흰 파도가 치고 있음을 직감하고 조타수에게 수동조타기로 바꾸도록 지시함과 극좌전타를 명하던중 동일 00시 46분 쓰루시마등대 북단의 암초 북위33도 53분 34초, 동경132도 38분 22초에 선저가 여러차례 충격된 후 진동을 일으키면서 빠져 나갔다.수심인 선장 A는 침실에서 충격음을 듣고 즉시 선교에 올라와 사고 지점을 확인하는 동시 기관사용 준비와 전원 부서배치토록 하고 항로를 벗어나 안전지역으로 항행하면서 동일 01시 05분경 기관을 정지후 기관실 및 각 탱크의 침수여부를 조사토록 하였으나 발견되지 않기에 다시 항진을 계속하여 동일 03시 05분경 쓰루시마에서 동북방 약 11.5마일 지점 고아이지마 동쪽 2.4마일 해상에서 기관을 정지하고 재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관실에 빌지가 많이 증가되는 것이 확인 되었기에 04시 00분부터 기관을 전속으로 하고 동일 05시 15분 구루시마 해협을 벗어나자 빌지를 제2번 바라스토 탱크로 옮기면서 항진중 동일 08시 00분경에는 빌지가 400미터, 동일 12시 00분경에는 약 900미터까지 점차 증가하여 갔으며 동일 19시 50분 고오베 외항에 도착하자 V.H.F로 동경사무소와 연락을 취하여 잠수부 수배를 요청하였던바 오노미씨항에서 조사토록 하라는 지시에 의거 1월 15일 10시 55분오노미씨항으로 회항하였다.동항에서 선급협회 검사원 입회하에 잠수부에 의한 조사결과 우현측 선저판(빌지탱크, 연료탱크)이 여러곳 굴곡됨과 용골의 용접부가 균열되어 임시조치로 시멘팅을 하여 침수를 방지후 1월 16일 18시 00분 동항을 떠나 다까사고항에서 적하후 부산에 귀항하여 경남조선소에 상가한바 조사결과 주로 우현측 선저판(K.A.B.C 판)등이 80밀리미터에서 120밀리미터까지 내측으로 굴곡됨과 프로펠라 브레이드 2매가 첨단에서 약170밀리미터 굴곡되었다.당시의 기상은 흐린 날씨에 북서풍이 초속 4-5미터로 불고 조류는 남서로 약 2노트로 흐르고 있었다.
2. 원 인가. 사고발생원인이건 승양 사건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호에 해당되며 사고의 원인을 규명한바,수심인 B는 당직중 부근 등대 또는 섬등의 상호거리에 이상을 느끼고 레이다에의한 선위측정과 견시등을 철저히 하였어야됨에도 이를 태만히 하였고, 수심인 A는 선장으로서 당시의 조류 또는 풍압차를 고려하여 정확한 선위와 이에 따른 침로 조정을한 후 운항토록 인계를 하였어야 됨에도 오히려 많이 착오된 선위를 인계하는등 무책임한행동등이 복합되어 사고를 유발한 것으로 판단된다.본선은 유리시마에서 사고지점 쓰루시마까지의 항해중 약2노트의 역조와 좌현쪽으로부터의 북서풍, 구루시마해협 통과 시간의 조정을 위한 약4.5노트의 감속 운항등으로 원침로에서 계속 우현으로 압류되고 있었음에도 수심인 B는 수심인 선장 A로부터 당직을 인계 받은후 진회가 10도까지 되는 자동조타기에 의하여 운항함으로 압류현상은 더욱 심하였을 것이며 운항중 073도에서 069도로 변침하였다고는 하나 선수 부근에 쓰루시마등대를 시인하였을 것으로 당연히 레이다등에 의한 선위를 수시 측정하여 침로 조정을 하였어야 됨에도 선장의 인계시의 항로상의 위치를 과신하였음인지 사고 위험권내에 들어갔을때에는 쓰루시마등대가 목전에 보였을 것임에도 암초 부근의 파도에 의하여 위험을 느끼고 극좌전타를 취한 조치등을 볼 때 견시등 당직을 태만이 한 것으로 판단된다.한편 수심인 선장 A는 승선 경력이 2개월도 안되는 수심인 1등항해사B B에게 당직을 인계함에 있어 당시의 풍조류등을 고려하여 정확한 선위측정과 이를 근거로한 충분한 침로조정을 하고 주의하여 항행토록 지시 인계를 하였어야 됨에도 오히려 실제 위치보다 약 0.9마일이나 북방으로 선위를 냄과 현위치가 원침로상에 있는 것으로 기입함으로서 다음 당직자에게 착오를 일으킬 요소가 되었고 또한 쓰루시마는 상하행선의 왕래가 빈번하고 모든 선박의 변침지점이니 수심인 A는 이러한 점에서도 각별한 신경을 썼어야 됨에도 자신이나 항해사등이 계속 진회가 심한 자동조타기에 의하여 항행을 하는등 선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소행도 사고발생의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나. 법령의 적용수심인 B 및 수심인 A의 소행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의 규정에 의거 동법 제6조 제1항 제2호를 적용 수심인 B의 을종 2등항해사 업무를 2월, 수심인 A의 을종 1등항해사 업무를 1월 각각 정지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