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요지이 사건은 부산지방해난심판원 조사관 Q, 수심인 A, 수심인 B 및 지정해난관계인 G가 부해심 제1987-008호의 재결에 불복하여 해난심판법 제58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2심의 청구를 한것입니다.1987년 6월 15일 주임조사관 R
이 사건은 부산지방해난심판원 조사관 Q, 수심인 A, 수심인 B 및 지정해난관계인 G가 부해심 제1987-008호의 재결에 불복하여 해난심판법 제58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2심의 청구를 한것입니다.1987년 6월 15일 주임조사관 R
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6829"></img><span style="display:none;"> 선종선명기선 제1옥광호기선 오리엔트.토파즈호 선 적 항부산직할시부산직할시 선박소유자HJ선박주식회사 총 톤 수28톤 79580톤 35 기관 종류, 출력디이젤기관 150마력디이젤기관 1,200마력 진수년월인1959년 7월1971년 수 심 인DA BC 직 명선 장선 장1등항해사2등항해사 해기사면허증6급항해사 4급항해사(을종1등항해사) 4급항해사(을종1등항해사)5급항해사 선원수첩없 음 지정해난관계인FEG 직 명화 장기관원J 선박(주) 대표이사 사고일시1986년 8월 28일 16시 사고장소북위 35도 02분 57초, 동경 128도 59분 44초 손 해제1옥광호 : 전손, 선원 4명 사망 원 인태풍(베라호)대피 묘박중 오리엔트.토파즈호의 투묘과실 및 선미계선기 로우프.드럼의 클러치 하자</span>가.
기선 오리엔트.토파즈호는 서울특별시 J선박주식회사 소유의 근해구역 취항 강조 케미칼.탱카로서 (길이 63.23미터 선미선교형선 묘쇄 좌현 8절, 우현 7절 보유) 선장 수심인 A의 선원 9명이 승선하고 1986년 8월 25일 13시 30분경 일본국 고베항을 공선으로 출항하여 같은 달 27일 00시 15분경 감래포 외항에 도착 가박후 같은 날 06시 40분경 감래포K-5묘지에 투묘하고 입항 절차를 기다렸다. 이시각에는 우리나라 남해동부 일대에 태풍(베라호)주의보가 발효중이었다.기상대 발표에 따르면 1986년 8월 26일 09시에 남해동부해상에 태풍주의보, 같은 달 27일 22시부터 29일 03시까지 태풍경보가 발효중이었다.수심인 선장 A는 감래포 묘지에서 입항절차를 기다리던 중, 같은 날(8월 27일) 08시경 회사 부산사무소 소장 S로부터 다음 날(28일) 08시에 다대포소재 K조선소에 수리차 상가예정이니 M조선소앞에 이동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고 태풍주의보하에서 다대포만은 피항지로 부적당한 곳이라는 점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회사(선주)에서는 태풍이와도 본선을 상가할 것이니 반드시 다대포만에 대기토록 하라는 강력한 지시를 하였으므로 수심인 A는 회사의 명령에 더 거역할 수 없어서 본선 입항절차가 끝난 후 8월 27일 18시 00분경 감래포를 떠나 같은 날 18시 50분경 다대포 만내부 추정위치 북위 35도 03분 17초, 동경 128도 59분 08초 지점에 양현묘쇄 각 6절씩 신출하여 쌍묘박하고 상가 수리를 대기하게 되었다.
나. 한편, 기선 제1옥광호는 부산직할시 H소유의 길이 18.34미터, 종업제한 제1종의 상어유자망 어업에 종사하는 목조어선으로서 수심인 선장 D 이하 선원 8명이 승선하고 1986년 8월 22일 11시 00분경 다대포항을 출항 다대포외항에서 가박하였다가 갑판장 (고)T와 기관원 E를 추가로 승선시킨후 같은 달 23일 12시 00분경 출항조업지로 향하였다.같은 날 17시 00분경 이 배는 목도 남동쪽 약 5해리 해상에 도착하여 조업을 하던 중 같은 달 26일 12시 00분경 수심인 D는 태풍 베라호가 북상중이라는 라디오 보도를 듣고 그 동안 어획한 상어 약 5,000키로그램을 적재한 상태로 조업을 중단하고 귀항, 같은 날 16시 00분경 부산 태종대 북서 약 4해리 지점에 가박하여 태풍동향을 살피었다.다음날인 27일 11시 00분경 기관장 V가 갑자기 심한 복통으로 신음하므로 이를 병원에 이송하기 위하여 이 배는 가박지를 떠나 16시 30분경 감래표 N조선소 안벽에 접안하였다.수심인 선장 D는 환자를 급히 병원에 이송하여야 하겠기에 갑판장 T에게 자신이 귀선할때까지 접안 대기할 것을 지시하고 갑판원 U과 함께 환자(V)를 데리고 P 병원으로 향하였다.수심인 D는 태풍 내습의 염려도 하였으나 자신이 귀선할때까지는 태풍내습의 시간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한편 급환으로 신음하는 환자의 입원처리가 더욱 급하다고 생각하고 직접 자신이 환자 이송의 일을 실행하였다.수심인 D는 기관장 V가 부산시 W의원에서 급성 충수염으로 진단되었으므로 큰병원에 옮기고자 환자를 JK의료원에 이송, 입원 절차를 마치고 다음날인 28일 00시 15분경 제1옥광호를 접안 대기케하였던 N조선소 안벽에 돌아와 보니 본선은 약 100미터 떨어진 해상에 묘박하고 있어서 그 시각에 통선등 교통수단을 얻지 못하여 승선하지 못하고 귀가하였다.당시 바람은 없고 바다는 잔잔하였으나 안벽에는 너울이 밀려와 출렁이는 상태였다.수심인 D는 일단 귀가하여 휴식한 후 아침 06시 50분경 안벽에 다시 돌아와 본즉 본선은 그곳에 보이지 아니하여 다대포만에 귀항한 것으로 알고 곧 다대포만에 돌아갔다.다대포만에 도착한 수심인 D는 제1옥광호가 다대포만 깊숙히 묘박하여 선수를 남으로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제1옥광호는 이날 아침인 28일 06시 20분경 갑판장 (고)T의 지휘로 태풍을 대피하기 위하여 감래포로부터 다대포만에 돌아와 만안쪽에 묘박하였으나 풍파가 거세어지자 그날 12시경 만의 바깥쪽으로 이동하여 우현 선수료(무게 130키로그램, 유간묘)를 투묘하고 묘삭인 지름 34밀리미터의 폴리프로필렌.로우프 약 250미터를 신출하고 피박하였다.이때의 개략위치는 북위 35도 02분 48초, 동경 128도 59분 21초로 추정된다.
다. 양 선박이 가박하게 된 다대포만은 입구가 남남서를 향하여 열려있고, 만입구 너비 약 700미터 만의 길이 약 1,500미터로 만의 동쪽 두송반도 연안을 따라 수산물양식장이 약 1,300미터 길이로 설치되어 있어서 황천시에 어선들의 피박지로는 적합하나 이건에 있어서와 같이 만이 태풍의 우반원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상선의 피박지로서는 부적합한 곳이다.8월 27일 18시 50분경 다대포만 내부에 쌍묘박한 기선 오리엔트.토파즈호 선장 수심인 A는 다음날인 28일 08시 00분경 상가 예정이던 K조선소에 VHF로 상가 여부를 문의한바 태풍으로 상가 불가능하다는 회답을 받았다.수심인 A는 다대포만이 피박지로 적합치 못하여 진해만등 안전자대로 대피할 것을 생각하였으나 그때는 이미 태풍 영향권에 들어있어 강풍과 격랑으로 안전항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같은 날 10시경까지 4개의 화물창에 약 800톤 2중저 바라스트탱크에 약 150톤의 해수 바라스트를 채우고 선수 4.0미터, 선미 4.2미터의 흘수로 태풍 피항 태세를 갖추었다.같은 날 10시 30분경 풍력이 강해지면서 본선이 주묘되므로 수심인 A는 11시 15분경 양현묘를 양묘하여 남동쪽으로 약 370미터 이동하여 (추정위치 북위 35도 03분 09초, 동경 128도 59분 19초) 양현묘 6절씩 신출하여 쌍묘박하였다.같은 날 15시 00경 초속 20미터의 강풍이 불자 다시 주묘되기 시작하므로 15시 30분경 수심인 A는 전선원 부서 배치하고 양묘하여 15시 50분경 기관을 미속 전진등 적절히 사용하여 너울을 정선수에 받고 남서풍을 우현 선수에 받는 태세로 남진하여 전방에 묘박중인 제11삼행호를 지나 16시 00분경 역시 전방에 묘박중인 제1옥광호 선수를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미 좌현 약 50미터로 보는 지점에서 자선의 우현묘를 투하하였다.이 때 기선 제1옥광호는 약 250미터의 묘삭을 신출하여 단묘박하고 있어서 선수가 풍향인 남서를 향하여 묘를 중심으로 좌우추운동(요오잉 YAWING)을 하고 있었고 기선 오리엔트.토파즈호는 너울 방향인 남쪽을 향하여 전진하여 왔으므로 양 선박의 선수 미선 교각은 30도 내지 40도로 교차되는 태세로서 기선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수가 기선 제1옥광호의 묘삭선을 지난 지점에서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우현묘가 투하된 것이었다.이때의 양 선박의 수심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양 선박의 관계위치를 해도상에 작도하면 제1옥광호는 북위 35도 02분 55초, 동경 128도 59분 27초의 위치이고 오리엔트.토파즈호는 북위 35도 02분 52초, 동경 128도 59분 25초의 위치라고 추정된다.
양 선박의 이 위치와 상관방위를 기초로 보면 오리엔트.토파즈호는 선미정횡거리 50미터에 제1옥광호 선수를 보고 제1옥광호는 자선 선수 거리 80내지 90미터에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수를 보게된다. 당시 제1옥광호의 묘삭은 가벼운 폴리프로필렌.로우프이므로 묘를 중심으로 한 좌우 추운동거리(진회거리)는 적어도 70내지 80미터 내외 (2πγ×20/360)가 된다고 시산된다.수심인 A는 자선의 안전한 전묘만을 생각한 나머지 제1옥광호의 묘삭선과 동선의 이러한 운동 태세에 대한 고려없이 제1옥광호의 묘삭선을 지난 지점에서 우현묘를 투하하고 3절을 신출 후방 이동을 하면서보니 후방에 있던 제11삼행호와 너무 접근되고 제1옥광호는 동선 선미가 자선의 선수 좌현 정횡 50-60미터 거리에 있어서 묘쇄 6절을 신출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투묘지를 변경하고자 우현묘신출의 중지를 선수에 있는 수심인 1항사 B에게 지시하였다.
이때는 이미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우현묘가 주묘하면서 요오잉 운동중에 있던 제1옥광호의 닻줄에 걸려 동선의 묘삭을 끌면서 주묘하게 되었다.수심인 A는 자선묘가 제1옥광호의 묘삭을 끌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재투묘하고자 양묘를 지시한 것이었다. 오리엔트.토파즈호가 주묘되면서 양묘하자 제1옥광호는 묘삭에 장력이 걸리면서 선수가 오리엔트.토파즈호측에 급히 회두하며 동선에 접근되었다.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수에서 작업지시를 하던 수심인 1항사 B는 제1옥광호가 선수를 향하여 접근하므로 접근하지 말라는 손짓을 하였고, 이러한 태세가 된 제1옥광호측에서는 양선박이 충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기관을 전진으로 사용하면서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수를 좌현에서 우현으로 통과하였다.
라. 한편, 제1옥광호에서는 강풍과 주묘에 대비하고 있던 중 15시 50분경 우현 선미 4시방향에서 오리엔트.토파즈호가 접근하여 오므로 갑판장 (고)T는 즉시 비상벨을 울려 선원들을 부서 배치하고 “큰 배가 우리배 닻줄 위로 가면 큰일이다. 우리배 앞에 멀리 닻을 놓으면 바람을 막아 좋겠다.”고 하면서 살피고 있었다. 16시경 제1옥광호의 우현을 통과하여 선수 전방으로 진출한 오리엔트.토파즈호는 제1옥광호의 느슨해진 묘삭을 지나 멈추어 후진하며 우현묘를 투하하자 제1옥광호 감판장 (고)T가 “탱카선이 우리배 닻줄을 쳤다”고 고함을 쳤다.
이 고함소리는 강풍에 날려 오리엔트.토파즈호 선수에서는 듣지 못하고 자선의 기관원 E가 듣고 있었다.오리엔트.토파즈호가 묘쇄를 신출하여 후진하다 멈추자 강풍에 좌우진회 운동중이던 제1옥광호 선수가 자선 묘삭에 당겨져 오리엔트.토파즈호 선수쪽을 향하여 접근하므로 제1옥광호는 충돌을 피하고자 기관을 전진으로 사용하여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수를 좌현에서 우현으로 통과하고 기관을 멈추었다. 이리하여 제1옥광호 묘삭이 오리엔트.토파즈호의 묘쇄를 완전히 한바퀴 감게 되었다.
마. 양 선박이 이렇게 된 상태에서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수심인 A나 수심인 B는 제1옥광호의 동향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한채 재투묘하고자 우현묘쇄를 감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자선 묘쇄에는 이미 제1옥광호의 닻줄이 한바퀴 감긴 상태로 따라 올라오므로 양묘를 중지하고 수심인 1항사 B는 수심인 선장 A에게 양묘 불가능함을 알리자 수심인 A는 좌현묘 투하를 지시하였으나 수심인 B는 이 지시를 우현묘 신출 지시로 오인하여 우현묘를 다시 신출하였다.오리엔트.토파즈호와의 충돌을 피하고자 동선의 선수를 횡단한 제1옥광호는 이때 가벼워서 수면에 뜨는 자선의 묘삭을 끌고 항진하는 과정에서 자선 묘삭이 추진기에 감기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기관이 정지된 후,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우현을 풍압에 밀려 동선 선미좌현 7시방향까지 표류하여 운전불능상태가 되었다.제1옥광호의 묘삭은 이 과정에서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우현 2번창 선저에서 좌현 4번창 선저를 지나 수면에 떠올라왔다.
수심인 B가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수에서 수면에 떠 올라온 제1옥광호 묘삭을 보자 갑판장 Y에게 이를 건져 올리도록 지시하고 갑판장 Y는 이를 건져 몇 바퀴 사려서 갑판원 Z의 보조를 받아 선미 빗트에 두 번 감아매었다.제1옥광호에서는 기관이 정지되고 운전불가능 상태가 되어 다시 표류하자 갑판원 박호열이 선미에서 묘삭을 건저올려 선수 빗트에 매었다.오리엔트.토파즈호에서는 수심인 선장 A가 제1옥광호 선수에 있던 선원들의 손짓에 의한 신호로 제1옥광호가 운전부자유한 상태가 되었음을 알고 “저 배를 구조하라.
히빙라인(던짐줄)을 쳐라”하고 지시하였다.이 지시에 따라 갑판장 Y가 선미에서 히빙라인을 던졌으나 거리가 멀어 미달되므로 선장에게 후진할 것을 요청하고 제1옥광호 닻줄은 자선이 기관사용하면 추진기에 감길 것을 염려하여 빗트에서 풀어버렸다.오리엔트.토파즈호가 기관후진과 묘쇄신출(우현묘쇄 약 7절이 나감)을 하자 제1옥광호의 거리가 15미터정도로 가까워졌으므로 갑판장 Y가 히빙라인을 던져주고 그 줄에 본선 선미 갑판후부에 설치되어 있는 계선기(Mooring Winch)의 우현쪽 드럼에 감겨있는 지름 45미리미터 길이 약 100미터인 나일론 로우프를 연결하여 내어주었다.제1옥광호에서는 이 구조삭을 끌어당겨 선수 빗트에 맨후 안심하고 자선추진기에 감긴 묘삭이 조선에 방해가 되지 아니하도록 이 묘삭을 갑판원 박호열이 칼로 절단하였다.
이렇게 하여 제1옥광호는 자선 묘삭이 추진기에 감겨 운전불능상태가 된 채 묘삭을 절단하고 오리엔트.토파즈호의 구조삭에 메인 상태가 되었다.
바. 제1옥광호에 구조삭을 내어 연결한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미계 선기는 1971년 일본국 제조의 전동 계선기로서 그 구조는 중앙에 선미묘삭드럼(Kedge anchor chain drum)과 좌우현에 각 1개씩의 계선삭.드럼(Rope drum)이 있고 동력은 중앙에 자기브레이크(magnetic brake)가 부착된 전동모우터(electric induction motor 11Kw, 220V, 40A, 60Hz)에 의하여 작동하게 되어있다.로우프.드럼(Rope drum)은 좌우로 28미리미터 움직이는 클러치.기어가 있어서 이 기어을 손잡이(Hand lever)에 의하여 좌우로 이동시키므로써 동력축과 로우프.드럼의 기어(gear)날이 물리게하여 동력을 전달받도록 되어있다.
우현 로우프.드럼은 손잡이를 우현쪽으로 당기면 클러치 기어가 로우프.드럼 기어에서 빠져 로우프.드럼은 공회전하여 예인삭을 신출하고 반대로 하면 클러치 기어가 맞물려 드럼이 동력축에 연결되어 로우프를 감아드리게 작동한다.제1옥광호에서 구조삭을 선수에 고박한 것을 보고 오리엔트.토파즈호 갑판장 Y가 신출된 구조삭을 우현측 로우프.드럼으로 감아드리기 시작하였다. 구조삭을 수회전 감아드리는 사이 제1옥광호는 풍압에 밀려 급히 표류하다 구조삭이 긴장되고 강한 장력이 걸린 순간 로우프.드럼이 갑자기 공회전되면서 드럼에 감겨있던 구조삭이 순식간에 풀려나가 구조삭 끝과 드럼을 연결한 세삭이 절단되어 제1옥광호와 오리엔트.토파즈호는 분리되었다.
강한 장력이 구조삭에 걸린 순간 로우프.드럼의 기어가 빠져 드럼이 공회전 한 것이었다. 이 로우프.드럼에는 장기간 사용에 의하여 좌우로 16미리미터 이동하는 간극이 생겨 있어서 돌연 강한 하중이 걸리면 동력을 연결하는 클러치 기어가 빠져 드럼이 공회전하는 결함을 갖고 있었다. 이 사건 이전에 대만에 입항하여 접안 작업 중에도 로우프.드럼의 기어가 빠져서 계선삭이 난간(Hand rail)을 쳐서 난간이 파손된 사고를 당한일이 있었다.
수심인 선장 A는 이 사고후 부산에 입항하였을 때에 회사의 부산사무소장 S에게 구두로 이 사실을 알리고 수리요청을 한 사실이 있고 부산소장 S는 수리업자에게 계선기의 점검을 의뢰하였으나 그 결함을 수리한 사실은 없다.제1옥광호에 연결한 구조삭이 풀려나간 사고는 잠간 사이에 돌발한 사태라 선미에 있던 선원들이 다른 조치를 취할 겨를도 없었고, 선교에서 지휘하던 수심인 선장 A는 이 돌발사태를 알지 못하다가 제1옥광호가 표류하는 것을 보고 사태를 알았으나 당시 상황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구조삭이 풀려나가자 제1옥광호는 강풍과 격랑에 밀려 16시 50분경 연안양식장 너머 두송반도 안쪽 해안에 좌초하였다.제1옥광호가 좌초하자 선원 7명은 바다에 뛰어 내렸으나 높은 파도에 밀려 갑판장 T, 갑판원 BA, DC, SJ 등은 익사하고 나머지 3명만 육지에 밀려 생환하였다.한편, 28일 아침 다대포에 돌아와 자선의 피박중임을 확인한 제1옥광호 선장 D는 같은 날 14시경부터 다대포만 서쪽 KM목재 앞 방파제 옆에서 자선의 태풍대비 태세를 지켜보고 있었다.
푹풍우속에 16시경부터 오리엔트.토파즈가 자선 근방에 이동하더니 한동안 머뭇거리다 16시 50분경 제1옥광호가 표류하여 좌초되는 상황을 폭우속에서 목격하였다. 이를 목격한 수심인 D는 곧 선주집에 가서 조난사실을 알리고 선주와 함께 다대포만에 나와 자신은 본선이 좌초된 지점을 향하여 생존 선원들을 찾기 위하여 갔으나 높은 파도 때문에 현장에 접근치 못하다가 어두어진 후에 군부대의 보호를 받다 다대포에 생환한 선원 3명과 만나게 되었다.
2. 원 인가. 원인판단이 좌초사건은 해난심판법 제2조제1호 및 제2호의 규정에 해당되며 그 원인을 살펴본다.
(1) 오리엔트.토파즈호 선장 수심인 A는 15시경 자선이 주묘되므로 다른 위치로 전묘하기 위하여 15시 50분경 정남방향에 진행하여 앞에 묘박중이던 제11삼행호를 지나 제1옥광호 선수를 자선 선미좌현 50미터로 보는 지점에 우현묘를 투하하였다. 이 투묘지점은 앞에 언급한바와 같이 요오잉운동으로 느슨해진 제1옥광호의 묘삭을 지나 교차한 상태가 되는 지점으로써, 투묘한 후 묘쇄를 3절 신출하다가 선미가 제11삼행호에 접근하자 수심인 A는 재투묘하기 위하여 묘쇄를 다시 감아드리도록 지시하였고, 묘쇄를 감아드리던 중 오리엔트.토파즈호는 선체가 풍하에 밀리므로 제1옥광호의 묘삭을 우현묘가 걸고 끌어당기게 되자 제1옥광호 선수가 오리엔트.토파즈호를 향하여 접근하게 되었다.
제1옥광호는 충돌을 피하고자 기관을 전진으로 사용하여 오리엔트.토파즈호 선수를 좌현에서 우현으로 횡단하고 이 과정에서 느슨해져서 수면에 떠있는 자선의 묘삭이 추진기에 감기게 되어 운전부자유 상태가 되었다.제1옥광호가 기관이 정지되고 운전부자유 상태가 되자 선체는 강풍에 밀려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우현을 표류하여 동선의 선미를 돌아 좌현방향까지 표류하였다. 제1옥광호가 운전부자유 상태가 된 사실을 알게된 수심인 A는 이 배를 구조하기 위하여 이 배에 구조삭을 잡게 하고 구조삭을 잡은 제1옥광호에서는 추진기에 감긴 자선의 묘삭이 양선의 조선에 방해가 되리라 생각하여 묘삭을 절단하였다.제1옥광호에서 구조삭을 선수에 고박한 것을 보고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미에서는 이 구조삭을 자선에 고박하기 위하여 선미계선기로 감아드리기 시작하였다.
구조삭에 큰 장력이 걸리자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미계선기의 로우프.드럼의 클러치가 빠져 로우프.드럼이 공회전하면서 구조삭이 다 풀려나가고 양 선박은 분리되었다.운전불능상태로 묘삭도 절단하고 구조삭도 절단된 제1옥광호는 다른 조치를 취할 방도가 없었고, 오리엔트.토파즈호도 이미 양식장 부근까지 밀려갔고 자선과 멀어져 해안에 표류하고 있는 제1옥광호를 달리 구조할 방법이 없어서 결국 제1옥광호는 그대로 강풍에 밀려 풍하측 해안에 좌초하였다.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이 좌초사건은 오리엔트.토파즈호의 투묘지점 선정상의 과실로 인하여 제1옥광호의 묘삭과 엉켜 끌게된 요인과 그로인하여 제1옥광호는 선체가 오리엔트.토파즈호에 끌리게 되고 충돌을 피하고자 기관전진중 자선 묘삭이 추진기에 감겨 운전부자유상태가 된 요인과 구조삭을 제1옥광호에 잡았으나 구조삭을 감아드리는 순간 로우프.드럼의 클러치가 빠져 로우프.드럼이 공회전하므로써 구조삭도 절단된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미계선기의 결함의 세가지 요인이 중복하여 그 원인을 이루고 있다.
(2) 이 좌초 사건의 상기 원인에 해난관계인들의 행위가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가) 8월 27일 08시경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주 J선박(주)(대표 G)은 선장 A에게 다음날 다대포소재 K조선소에 상가 수리하기 위하여 다대포만에 회항할 것을 지시하였다.선장 A는 다대포만이 태풍피박지로는 부적당한 곳이므로 안전항에 피항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회사의 강력한 지시 때문에 같은 날 18시경 다대포만에 회항 대기하였다. 제1심에서는 선주 지정해난관계인 G가 태풍영양하에 있는 다대포만에 대기 지시를 한 것은 안전관리의 소홀이라 하여 이것도 이 사건의 일인을 이룬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지정해난관계인 G가 다대포 대기를 지시하였다 하더라도 그 지시가 곧 제1옥광호의 좌초를 초래하게 한 원인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고, 태풍 피박지로서 부적합한 곳에 대기토록 한 것은 선박의 안전확보와 견지에서는 소홀한 점이 없지 아니하나 그것을 곧 과실로 볼 수 없으므로 지정해난관계인 G의 다대포 회항 지시는 이 사건의 원인과 관계가 없다.(나) 오리엔트.토파즈호 선장 수심인 A는 사건당일 16시경 전묘하고자 제1옥광호의 선수를 자선의 선미 좌현 50미터로 보는 지점에서 우현묘를 투하하였다.이때 제1옥광호 선수는 풍상쪽인 남서쪽을 향하고 오리엔트.토파즈호는 남진하고 있었으므로 양선의 선수미선은 30도 내지 40도의 교각을 이룬다.
오리엔트.토파즈호의 길이가 약 70미터이므로 이를 작도하면 제1옥광호 묘삭선 너머에 투묘하게 되어 양선의 묘쇄는 반드시 엉키게 된다.더구나 제1옥광호는 강풍으로 인하여 상당한 거리의 요오잉운동을 하고 있으므로 양선의 묘쇄가 엉키지 아니하게 투묘하기 위하여서는 제1옥광호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두고 투묘하였어야 한다.수심인 A는 우현묘 투묘당시 제1옥광호의 투묘위치를 추정하여 위와 같이 양선 묘쇄가 엉키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 자선의 투묘위치를 결정하였어야 함에도 우선 강풍속에 자선의 안전에만 정신을 써서 타선의 투묘위치나 묘삭방향에 대하여 주의하지 아니하고 투묘하므로써 제1옥광호 묘삭과 자선의 묘가 엉키게 한 과실을 범하였고, 이 과실이 제1옥광호가 운전부자유가 된 원인을 조성하였다.
이와 같이 수심인 A의 투묘상의 과실이 제1옥광호 좌초의 주인을 이루고 있다. 당시 다대포만은 태풍 베라(Vera)호의 영향권에 들어 남서풍이 초속 20미터로 불고 있어서 전묘작업이 매우 어려운 사정에 있었음은 인정이 되나 폭풍우속의 전묘작업이라하여 선장의 투묘상의 주의의무가 경감되는 것은 아니며 타선의 묘삭에 자선의 닻을 엉키게 한 투묘상의 과실은 비난을 면할 수 없다.(다) 오리엔트.토파즈호 1항사 수심인 B는 사고당일 15시 30분경 자선이 주묘되어 전원 부서 배치하자 자선의 부서인 선수부에서 선원들을 지휘하였다.
16시경 제1옥광호와의 관계위치가 앞에 기술한 바와 같은 지점에 자선이 도달한때 선장 A의 우현묘 투하 지시에 따라 투묘하였다. 선장의 지시에 따라 묘쇄를 1절정도 감아올리다 제1옥광호 묘삭과 자선의 묘가 걸려있음을 알고 이를 선교에 알렸고, 선장 A는 좌현묘 투하 지시를 하였으나 폭풍우의 장애 때문에 우현묘 신출 지시로 오인하고 우현묘쇄를 다시 신출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제1옥광호가 자선 선수부를 향하여 전진하여 오므로 수심인 B는 호각을 불며 접근치 말라는 신호를 하였으나 제1옥광호는 선수를 횡단, 우현을 선미쪽으로 표류한 후 자선 좌현 4번창 수면에 옥광호 묘삭이 수면에 떠올라 왔으므로 갑판장 Y에게 이 묘삭을 자선 빗트에 고박하도록 지시하였다.그 이후 이 묘삭을 풀고 제1옥광호에 구조삭을 연결하고 구조삭 절단으로 제1옥광호가 좌초하는 일련의 사건이 진행되었으나 수심인 B는 이 일련의 사건에 개입되어 있지 아니하고 이 사건 진행중 1항사로서 선수부서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다만, 수심인 선장 A이 16시경 우현묘 투묘 지시를 할 때 선수부서장인 1항사로서 선수에서 본 제1옥광호의 묘삭의 선을 선장에게 알리므로써 선장의 투묘지점 선정의 잘못이 생기지 아니하도록 조언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수심인 B는 이를 이행치 아니하였다. 그러나 1항사의 선수 위치에서 본 자선의 태세에 대한 조언은 선장의 투묘위치 선정의 고유업무를 위한 보조적인 주의의무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조언이 없었다는 것이 곧 1항사의 직무상의 과실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더욱이 폭풍우속에서 선수와 선교사이의 적절한 통신수단이 없는 본선의 형편을 볼 때 이 사건에 있어서 수심인 B의 조언 유무가 사고원인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없다.그 후 선장의 좌현묘 투하지시를 폭풍우의 장애로 인하여 우현묘 신출지시로 오인하여 우현묘를 신출하였으나 이 우현묘 신출도 제1옥광호 좌초와는 관계가 없다.
수심인 B는 선수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진전에는 관련된 바 없다.(라) 수심인 2항사 C는 15시 30분 전원부서 배치후 선교에서 선장의 지시에 따랐고 간간히 선미작업을 보며 선장의 지시를 전달하는 것 외에는 이 사건의 진전에 관여된바 없다.(마) 제1옥광호 선장 수심인 D는 기관장 V의 급환으로 가박지점을 떠나 8월 27일 16시 30분경 감천항 N조선소 안벽에 착부하고 선원 1명과 함께 환자를 데리고 부산시 W병원과 고신의료원에 가서 입원을 마치고 8월 28일 00시 25분경 감천항 안벽에 돌아왔다.그 시간에 제1옥광호는 안벽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해상에 정박중이었으나 당시 안벽에는 너울이 울렁거리고 통선편을 구할 수 없어서 귀가 휴식 후 아침 06시 50분경 귀선하고자 감래포 안벽에 돌아왔으나 자선이 보이지 아니하여 다대포만에 귀항한 것으로 알고 곧 다대포만에 돌아가 자선이 묘박중임을 발견하였다.수심인 D는 폭풍으로 인하여 통선편을 구할 수 없어 다대포 서안 KM목재앞 방파제에 가서 자선을 지켜보고 있었고, 같은 날 16시경 폭풍우 속에서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움직임과 제1옥광호의 표류 좌초의 모습을 목격하였다.이와 같이 수심인 D는 이 사건의 진전과정에 본선에 승선치 못하고 육지에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의 원인조성에 그의 행위가 관여될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선장이 태풍주의보하에서 자선을 비워두고 육지에 있었던 사실은 비록 제1옥광호가 28톤의 소형어선이라 선원법 적용이 배제되어 선장의 재선의무나 직접 지휘의무가 적용될 수 없다하더라도 한 선박의 선장으로서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그러나, 한편 수심인 D가 선내에 긴급 환자가 발생하여 가박지에서 감천항 부두에 착부하여 환자를 이송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는 불가피한 사유 때문에 상륙하였다는 사실, 소형어선에서는 선내에 현금을 보관하지 아니하여 긴급환자의 입원을 위하여서는 선장 자신이 현금 마련등의 업무를 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어선 운항의 실태, 상륙할 때 갑판장 T에게 감천항부두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하고 환자 입원 조치후 감래포에 돌아와 보니 그때는 이미 너울이 높아져서 자선은 부두에서 해상 묘지로 이동하고 통선편이 없어서 귀선하지 못하였다는 사실, 그 후 다대포항에서는 폭풍이 거세어져 귀선 불가능하였다는 사실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건에 있어서 선장 D가 상륙, 귀선치 못하였다는 행위의 비난 가능성도 불가피한 사유 때문에 경감될 수 밖에 없다.(바) 오리엔트.토파즈호에서 제1옥광호에 구조삭을 연결하고 이 구조삭을 선미 계선기 우현 로우프.드럼으로 감아드리다가 구조삭에 장력이 걸리자 로우프.드럼의 클러치 기어가 빠져 구조삭이 신출, 절단된 것이 제1옥광호 표류 좌초의 마지막 원인이 되었다.이 사건 이전에 대만 입항시 계선작업중 이 로우프.드럼의 클러치가 빠져 계선삭이 핸드.레일을 파손한 사고가 있었고, 부산 귀항후 선장 A는 이 사실을 구두로 회사에 보고하였고, 부산사무소장은 수리업자에게 동 로우프.드럼의 점검을 의뢰하였으나 수리업자가 이상없다는 보고를 하여 수리한 사실은 없다.이 로우프.드럼에는 장기간 사용으로 인하여 좌우로 16미리미터 움직이는 간극이 생겨서 드럼의 고착상태에 결함이 있었다.본선 선주인 J선박(주)은 본선이 대만에서 부산에 귀항하여 선장의 사고 보고를 받았으면 자격있는 검사원 또는 수리업자에게 의뢰하여 로우프.드럼의 결함을 발견 수리하였어야 함에도 그러한 주의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이있다.J선박(주)은 수리업자에게 점검을 의뢰하였으나 부주의한 수리업자는 외관상 이상없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 결함은 드럼을 밀어보거나 하중시험으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어서 선주가 상당한 주의를 다하였다면 이 결함은 쉽게 수리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한 주의를 하였다면 결정적인 시기에 로우프.드럼이 공회전하는 사고도 발생하지 아니하였을 것이고, 이 사건도 발생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이 점에 있어서 지정해난관계인 G의 주의 해태가 이 사건 발생의 일인을 이루고 있다.(사) 다른 지정해난관계인인 제1옥광호 기관원 E, 갑판원 F는 갑판장 (고)T의 지휘에 따라 행동하였을 뿐 이 사건의 원인에 관여된 바 없다.
4. 법령의 적용수심인 A의 행위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의 규정에 의거 동법 제6조 제1항 제2호 규정을 적용하여 A의 4급 항해사 업무를 1월 정지한다.수심인 D의 행위에 대하여는 동법 제5조 제2항의 규정에 의거 제6조 제1항 제3호의 규정을 적용하여 견책하여야 할 것이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동법 제6조 제3항의 규정을 적용하여 D를 견책하지 아니한다.지정해난관계인 G의 행위에 대하여는 동법 제5조 제3항의 규정을 적용하여 권고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
이 좌초사건은 태풍영양하에 오리엔트.토파즈호 선장 수심인 A가 전묘중 투묘과실로 인하여 피박중인 제1옥광호 묘삭과 엉키게 하므로써 발생한 것으로 오리엔트.토파즈호의 선미계선기의 결함도 그 일인이 되었다.A의 4급항해사 업무를 1월 정지한다.G를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