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44423"></img><span style="display:none;"> 선종선명기선 영일호기선AMRTA-V 선 적 항부산직할시인도네시아 국적 선박소유자J해운 주식회사 총 톤 수2,101톤 04약 5,000톤 기관종류, 마력디젤기관 2,000마력 수 심 인A 직 명선 장 면허종류3급 항해사(을종선장) 선원수첩 사고일시1984년 12월 24일 06시 57분 사고장소북위 33도 57분 54초, 동경 130도 53분 06초 손 해영일호 선수재 굴곡 원 인 AMRTA호 측의 조선 잘못</span> 영일호는 1962년 8월 진수된 총톤수 2,101톤 04, 디젤기관 2,000마력을 거치한 항행구역 근해인 부산직할시 선적의 강조 화물선으로서, 수심인 선장 A 이하 선원 22명이 승선하고 1984년 12월 22일 20시 40분경 공선 상태(흘수 선수 1.50미터, 선미 4.80미터)로 울산항에서 출항하여 화물 적재차 일본국 우베항으로 향하였다.예정 항로를 따라 항해 중 일본 후다이섬 서쪽 약 10마일 해상에 이른 같은 달 23일 04시경 기관의 축 카플링 보울트(COUPLING BOLT)가 손상되어 이를 수리코자 묘지해상 보안청의 허가를 받은 후 같은 날 16시 20분, 북위 33도 57분 54초, 동경 130도 53분06초 위치(TAKENOKO섬의 KITASAKI 북쪽 약1,500미터)에 좌현 4절.
우현 3절 길이의 묘쇄를 내어 쌍묘박 상태로 정박하였다.수심인 영일호 선장 A는 정박 중 해상 상태가 악화되고 있었으므로 정박 당직을 보강 배치(당시 1등 항행사 B)한 상태에서 기관 수리를 계속 진행 중 자신의 침실에서 휴식하고 있었다.다음 날인 같은 달 24일 06시 50분경 기상한 수심인 선장 A는 점검차 선내를 순시하고 있을 때인 같은 날 06시 54분경 갑자기 선교에서 난타하는 호종 소리가 들리므로급히 선교로 올라가 전방을 바라보니, 무쯔레 외항으로부터 입항하여 자선의 좌현 약 50미터 위치에 대기중인 도선선으로 향하여 항진하던 인도네시아 국적선 AMRTA-V호(약 5,000톤급, 이하 상대선이라 한다)가 북동풍에 의한 풍파에 압류되어 우현 약 15도, 약 30미터 거리에서 선수 쪽으로 접근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계속 호종을 난타(당시 기관 수리 중으로 기적 사용을 할 수 없었음)하여 주위 환기 신호를 보냈으나 같은 날 06시 57분 같은 위치에서 박근 상태에 이른 상대선의 선미 좌현 외판 부위가 영일호 선수부에 거의90도 각도로 충돌되었다.이때 날씨는 흐리고 북서풍이 초속 11 내지 13미터로 불어, 파고는 약 3미터였다.이 충돌로 인하여 영일호는 선주재 부분이 경미하게 내측 굴곡 되었으나 수심인 선장A는 운항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대리점에 사고 발생 사실을 통보한 후 기관 수리 작업이 완료된 다음 날 16시 00분, 정박 해상을 떠나 목적항인 우베항에 기항, 예정대로 화물을 적재하고 울산항으로 귀항하여 손상 부위를 수리(수리비 소요액 약 110만원)하였다.한편, 상대선인 AMRTA-V호 선장(성명 미상)은 이 충돌이 전적으로 자선의 책임임을 시인하였다.
2. 원 인가. 원인판단이 충돌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호의 규정에 해당되며 그 원인을 규명한바기선 AMRTA-V호는 투묘 정박 중인 영일호의 선수쪽 전방을 횡단할 때 당시 북서풍 초속 약 13미터에, 약 3미터의 파도가 같은 방향에서 밀려오고 있었으므로 풍압과 유압을 감안하여 충분한 거리를 두고 항과 하였어야 하는데도, 영일호 선수 앞 불과 30미터 접근된 거리에서 횡단 항진하므로서 좌현 쪽으로 압류되었으나 이를 지지하지 못하고 충돌케 한 AMRTA-V호 측의 조선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한편 당시 해상 상태를 감안하여 정박 당직을 보강 수행케 한 수심인 영일호 선장 A는, 당직자가 상대선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박근 상태에 이르러 비로소 주의 환기 신호를 보내는 등 감시를 소홀히 한 아쉬움이 있으나 동인은 이 건 충돌의 원인이 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