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05095"></img><span style="display:none;"> 선종선명기선 신신호 선 적 항부산시 총 톤 수315톤 85 선박소유자C 기관종류, 마력기관230마력 수 심 인AB 해기면장을종1등항해사 선원수첩부산 직 명선 장 사고일시1970년 9월 27일 17시 00분 사고장소홍도남방 22마일 해상 손 해선체 침몰, 적화전량유실 원 인선체 노후 기상악화</span> 기선 신신호는 항로 정한 연해구역의 강조화물선인바 주로 한일간의 정기 화물수송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본선은 정확한 선령을 잘 알 수 없는 노후선으로 전반적으로 선체가 낡아빠졌으며 특히 기관실 수선하부 선저 외판등은 부분적으로 크게 좋지 못한 상태로 평상시에도 화물을 적재시에는 계속 비루치 펌푸를 가동하는 실정에 있었다.수심인 A는 1970년 3월 9일에 본선 선장으로 승선하였으나 외관상 특기할만한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채 운항하고 있던 중 주석 550톤을(흘수 선수, 미 다같이 3.17미터) 적재하였으나 본선은 4미터69, 5미터19, 이분 킬(EVEN KEEL)로 9월 26일 18시 00분 여수를 출항 목적지인 일본국 사세보(佐世保)를 향하여 매시 8노트의 전속력으로 항행하였다.동일 21시 00분경 욕지등대를 통과하였으나 동일 22시 00분 일본 NHK 방송을 통하여 기상이 악화된다는 것을 알았고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점차 기상이 악화 선체의 동요가 심하여 속항에 위험을 느낀 수심인 A는 일단 되돌아가 욕지도에 피항할 것을 결정하고 동일 23시 00분경 선수를 회두 다음날인 27일 01시 00분경 욕지도에 입항 기상회복을 기다리고 있었다.동일 09시 15분 일본방송을 통하여 점차 기상이 회복될 것이 예상된다는 발표가 있기에 09시 30분 동지를 떠나 침로를 140도(자침방위 이하 같음)로 정침 쓰시마(對馬島)남단을 통과할 목적으로 속항하였다.동일 13시 00분 J방송을 통하여 북동풍이 강하게 불 것이라는 기상 통보를 듣고 기상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우려 속항하였으나 점차 기상은 악화 북동풍이 세어지면서 거센 파도가 일어나 선체의 동요가 심하여 난항이 예상되므로 쓰시마 남단에 있는 안전지대 스즈완(豆酸灣)에 피항할 것을 결정 동일 14시 00분경 침로를 동만 입구로 향한 120도로 변침 속항 중 동일 15시 00분경 수심인 B로부터 기관실내에 침수가 심하다는 보고를 듣고 즉시 선내 전원을 총동원 선내에 비치한 센튜리-휴-갈 펌프 2대를 가동 배수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침수개소를 조사하였으나 기관실 밑에서 침수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 정확한 침수개소를 찾을 수 없는데다가 침수량은 점점 불어나 기관실에 가득 차게 되자 동일 16시경 기관은 자연 정지되고 풍하로 표류하기 시작하므로 SOS 구난 신호를 발신하였고 동일 17시 00분경 홍도 등대에서 진방위 188도 22마일 지점해상에 완전 침몰 적화 전량 유실하였다.당시의 기상은 맑고 흐린날씨에 북동풍 12미터 동지 해상에는 약 3미터의 파고가 있었다.침몰결과 수심인 A등 14명중 6명은 구명정에 이승하였고 나머지 8명은 구명동의를 착용 바다에 뛰어들었으나 때마침 급보에 점하고 내도한 일본 K 소속 PM 11함에 의하여 17시 15분경 전원 구출 쓰시마 이즈하라(嚴原)에 상륙하였다가 동월 28일 03시 00분 우리 해양경비대 682정에 인계되어 전원 귀국하였다.이건 침몰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호에 해당되는바 신신호가 선령미상의 노후선으로 심한 풍랑을 만나 선체에 많은 충격을 받게되자 기관실 선저 외판이 낡아빠진 부분에 파공이 생기므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나 수심인 A가 노후선에다 중량화물을 과적하여 선체에 무리를 일으키게 한 동인의 운항에 관한 직무상 과실도 그 일인이 되는 것이다.수심인 A의 소행에 대하여서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의 규정에 따라 동법 제6조 제1항 제3호를 적용 동인을 견책한다.수심인 B의 소행은 이건 발생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