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43611"></img><span style="display:none;"> 선종선명기선 삼은호 선 적 항파나마 선박소유자J상선(주) 총 톤 수3,032.87톤 기관종류, 마력디젤 3,500마력 선교의 위치선미부</span><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43613"></img><span style="display:none;"> 선 회 권460미터 수 심 인 A 직 명선 장 해기면장갑종 1등항해사 선원수첩부산 사고일시1981년 7월 4일 04시 05분 사고장소북위 22도 14분, 동경 114도 41분(홍콩 동남방 25마일 해상)</span> 기선 삼은호는 1968년 8월 일본국에서 건조 진수한 선령 12년 된 파나마국에 선적을 두고 근해구역에 취항하는 총톤수 3,032.87톤 디젤기관 3,500마력을 거치한 강조화물선으로 동선은 1966년에 협약된 국제 만재흘수선 증서 및 1974년에 협약된 해상인명 안전협약에 규정된 화물선 안전구조증서, 화물선 안전설비증서, 화물선 안전무선전선 증서를 수급한 감항성 내지 능파성(?波性)이 결여되여 있지 않은 상태로서 운항 중 1977년 6월 19일 한국 J상선(주)에서 국적취득조건으로 나용선하여 도입한 한국 선급협회 선급선으로 한국선원 26명이 승조하고 운항하던 중 1981년 3월 7일 동 선급협회의 제2종 중간검사에 합격된 선박으로 1981년 7월 1일 중공 황포(黃浦)항에 입항하여 중공산 석탄(분탄) 4,639K/T을 화물창 1번창에 2,150K/T 2번창에 2,489K/T씩 각각 안배하여 햇찌 빔(Hatch Beam)에서 약 60센치의 간격을 두고 평형으로 적부한 (적재능력 5,100톤, 선급 선명록 및 설계도에 명시)다음 (복원력 고려) 각 화창 창구 복개도 완전하게 밀폐작업을 완료하고 흘수선수 6.15미터, 선미 6.55미터의 양호한 상태로 1981년 7월 3일 07시 20분(중공 L.M.T)경 동항 도선사(성명미상)가 승선하여 동인의 조선지휘로 동항을 출항 황포항 외항 도선묘지 구역을 목적하고 필요에 따라 기관감속, 변침하면서 항로를 따라 항진하여 동일 14시 30분 경 도선묘지에 도착한 다음 동 도선사는 하선하고 목적지인 부산항을 향하여 속항코자 하였으나 당시 필리핀 동남방 근해해상에서 발생한 태풍 킬리(Kely)6호가 북서진하여 해남도 근해에서 정체하였다가 다시 북북서로 전환될 것이 예상된다는 홍콩방송과 북동으로 전환될 것이 예상된다는 일본 N.H.K.방송예보를 청취한 수심인 A는 동 태풍(Kely) 6호의 진행방향을 확인하기 위하여 동 도선사묘지에 투묘 가박하고 계속 기상예보를 청취하면서 대기중 동일 21시 홍콩(香港) 기상방송에 의하면 태풍 킬리6호는 서서히 서진하여 해남도로 상륙하였다는 방송을 청취하고 본선 진로와는 약 400마일 이상 거리가 있음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동일 22시 00분 경 양묘한 다음 수심인 선장 A의 조선 지휘로 동 가박지를 출항 약 10놋트 정도의 속력으로 부산항을 향하여 항로를 따라 지정된 침로 340도(T)를 확인하면서 약 15분간 북상하여 원침로 340도(T)에서 110도로 변침하고 약30분 항진하여 원침로 110(T)에서 090도(T)로 정침하고 속항하여 다음날인 동 월 4일 00시 40분(홍콩 L.M.T)경 홍콩 남단에서 동남방으로 약 3.2마일 거리에 위치한 포다이도(浦台島) 남단에 설치된 등대신호소(Signal Station L. H)를 좌현정횡 약3마일 거리로 통과하면서 원침로 090도(T)에서 087도(T)로 변침하자 해상상태는 동풍이 초속 약10미터 정도로 불고 파도방향은 동남방향으로 파고는 약 4미터 정도로서 불규칙적인 너울을 선수우현 약 30도 방향으로 받으면서 좌우로 횡요(Rolling)를 하면서 전속 11.5놋트 정도의 속력으로 속항 중, 동일 02시 55분 경 홍콩으로부터 동남동 방향으로 약 23마일 해상(북위 21도 13분 01초, 동경 114도 42분 03초)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선수우현 1번창 부위에 어떤 물체에 부딪치는 것과 같은 심한 충격을 계속해서 두 번 느낀 후부터 선체가 우현쪽으로 경사하는 것 같아서 조선 중이던 수심인 A는 기관을 반속으로 감속하고 항진하면서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동일 03시경부터 신체는 점차 우현쪽으로 경사됨으로 선수 우현쪽에서 받는 파도를 선미쪽으로 받게 하여 선체의 횡요를 완화시키고 경사원인과 경사정도를 확인하고자 원침로 87도(T)에서 340도(T)로 변침하였을 때 선체는 우현으로 약 15도 정도로 경사짐으로 하창 내 침수를 느끼고 1번창 빌지 측정을 시도하였으나 격랑이 계속적으로 경사진 우현쪽에서 갑판상으로 밀어닥쳐 갑판상 보행이 불가능하여 빌지량 측정을 포기하고 기관실에서 연락하여 1번창의 빌지배출과 선체우현 3번창 연료유를 좌현으로 이동하도록 지시하고 취침 중에 있는 전선원을 기상시켜 비상배치 시킨 다음 좌현 구명정 하강준비를 지시하고 있던 동일 03시 35분 경 선체경사는 30도까지 급경사짐으로 수심인 A는 감항능력 상실로 판단하고 통신장으로 하여금 긴급조난신호(S.O.S)를 발신하도록 한 다음 V.H.F.로 구조요청, 조난신호탄 발사를 하는 한편 발광신호로 S.O.S.를 계속하고 있을 때 선수부부터 침하되면서 선체는 약 35도 정도까지 경사됨으로 수심인 A는 동일 03시 40분 경 선체를 포기할 것을 결심하고 전 선원에게 퇴선하라고 명령하여 전 선원은 각자 구명동의를 착용 해중으로 퇴선하여 구명부환을 잡고 해상에 표류중 기선 삼은호는 동일 04시 10분 경에 북위 22도 14분, 동경 114도 14분(홍콩 동남동 25마일 해상)에서 완전 침몰되었다.당시 천후는 맑은 날씨에 남동풍이 초속 10미터로 불고 파고는 약 4미터 정도의 쓰웰이 동남방으로부터 밀려오고 있었다.퇴선한 선원들은 침몰현장 부근에서 표류 중 인근해역에 항해하던 자유중국 화물선 광다이호(光太號)가 동일 05시 30분 경 퇴선 선원들의 표류현장으로 접근하여 표류중인 선원 7명을 구조하고 본선에서 발신한 긴급 구조요청을 받은 장소미상에 있던 미국 구축함이 접근하여 11명을 구조한 후 또 미국항공모함(미드웨이함)에서 발진한 헬리콥타에 의하여 8명이 구조되어 동일 홍콩항에 도착한 후 소속회사측의 알선으로 7월 5일(K.A.L)기편으로 전원 무사히 귀국하였다.본 해난으로 선체를 포기하고 퇴선할 때 지참한 항해일지, 기관일지, 적화목록, 기타 중요한 서류는 해중에 표류 중 극심한 격랑으로 전부 분실되었음.2. 원 인가.
원인판단본 건 침몰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호에 해당하며 그 원인을 살펴본바 국제항로에 취항 중에 있던 기선 삼은호는 K.R. 선급선으로 1981년 3월 7일 동 선급협회의 제2종 중간검사에 합격된 강조화물선으로 갑항선이나 능파성(?波性)이 유지된 상태였고 또 허용적화 톤수는 K.R.선명록 및 동선의 설계도에 5,100톤에 비해 중공 황포항에서 출항당시 4,639톤을 적재하였으므로 과적이 아니었고 또 화물을 각 창별로 안배 적부하여 복원력이 양호하였으며 각 화창 창구도 완전 밀폐되었으므로 창구로부터의 침수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항해 중 선체에 충격을 받은 해역에는 암초 등이 있을 수 없던 점으로 이는 당시 동남방으로부터 밀려오는 쓰웰에 실려 부유물(표류 원목등)이 본선우현 1번창 외판에 부딪쳐 외판이 파공되어 창 내 침수에 의한 침몰로 인정된다.수심인 A의 소행은 본건 발생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