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 실<img src="/LSA/flDownload.do?flSeq=146615189"></img><span style="display:none;"> 선종선명기선 덕양호 선 적 항부산시 선박소유자B 외 2명 총 톤 수669톤 10 기관종류, 마력디이젤기관 1,100마력 수 심 인A 해기면장을종 1등항해사 선원수첩부산 직 명선 장 사고일시1979년 8월 21일 21시 40분 사고장소북위 34도 48분 14초, 동경 126도 13분 00초 손 해선수 선저 길이 약 30센치미터 균열 및 주위에 직경 약 40센치미터 굴곡 원 인파수소홀, 무중속력 과다</span> 기선 덕양호는 총톤수 669톤 10, 디이젤기관 1,100마력을 거치한 연해구역의 유조선으로서 1979년 8월 20일 20시 00분 울산 유공에서 휘발유 3,450바렐 및 경유 4,603바렐을 적재하여 흘수 선수 4미터 20센치미터, 선미 4미터 40센치미터로 출항, 군산으로 항해중 수심인 선장 A는 8월 21일 20시 30분 시하도등대를 우현 0.3마일로 병항통과하고C.CO.005도 (M.CO.002도)로 변침 속항중 동일 20시 35분 갑자기 농무가 끼기 시작하였으므로, 즉시 기관 미속 전진으로 감속하고 갑판장 C과 같이 견시하면서 선원을 전원 부서배치하여 우현 조타실밖에 2등항해사, 좌현조타실밖에 1갑원 및 2갑원을 배치하고 1타수 D가 키를 잡고 투묘 대기할 목적으로 투묘준비를 하였으나, 그곳은 조류가 빨라서 투묘에 적합치 않다고 판단하여 시하도로부터 북쪽 8마일 위치인 역도부근 북위 34도 50분 00초, 동경 126도 13분 45초에 투묘코자 무중신호를 취명하면서 전진하던중 21시 38분 선수 전방 약 100미터 해상에 갑자기 검은 물체를 발견하고 키극우전타를 명하고 동시에 기관 전속 후진하였으나, 전진타력 및 순조에 의한 조류로 인하여 선체가 앞으로 계속 밀려 동일 21시 40분 하납덕도 바로밑 북위 34도 48분 14초, 동경 126도 13분 00초 암초에 선수가 좌초되었으며, 기관을 정지하고 선체내 침수여부를 조사한바, 선수 바라스트 탱크에 해수가 들었으나 각화물 탱크 및 기타 부분에는 이상이 없었으므로 선체주위의 수심과 저질을 측정한바, 저질은 암석이고 선수부만 승양되고 중앙부 및 선미부는 떠있었으며, 만조시를 기다려 8월 22일 01시 40분 기관을 전속 후진하여 이초하였으며, 양수기로서 배수하면서 8월 22일 15시 20분 군산에 입항하여 양하완료후 8월 23일 16시 30분 군산 출항 8월 24일 18시 50분 부산에 입항하였다.이 사고로 선수 선저에 길이 약 30센치미터가 찢어지고 주위에 직경 약 40센치미터 정도가 굴곡되었다.이건은 해난심판법 제2조 제1호에 해당되는 것으로 그 원인을 아래 제증거에 의거 규명컨대,2. 원 인가.
원인판단수심인 선장 A는 사고당시 해상에는 짙은 농무가 끼였다고 진술하였으나, 목포측후소장이 제출한 기상관측 자료에 의하면 당시 시정 거리는 16킬로미터 정도였으며, 만약 수심인 A의 진술대로 농무가 끼었고 레이다까지 고장상태였다면 더욱 쌍안경등으로 전방 파수를 강화하는 한편 안전속력으로 항해하던지 또는 투묘가박하여 기상회복을 기다렸어야 함에도 수심인 A는 순조상태에서 반속 7노트(조속 북류 2노트포함)으로 전진하다가 하납덕도를 100미터의 지근거리에서야 발견, 극우전타와 전속후진을 하였으나, 미치지 못한채 승양을 야기시킨 것이다.따라서, 이건 기선 덕양호 승양사건은 제한된 시계내에서 파수를 소홀히 하고 과다한 속력으로 항진한 수심인 선장 A의 운항에 관한 직무상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수심인 선장 A의 소행에 대하여는 해난심판법 제5조 제2항에 의거 동법 제6조 제1항 제3호를 적용 동인을 견책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재결한다.